포용사회를 향한 페미니즘

2019.11.15 20:28 입력 2019.11.15 20:38 수정

반백년 역사를 가진 페미니즘 운동은 이제 한국 사회에서도 쉽게 접할 수 있다. 페미니즘 운동에 대한 우리의 이해도는 얼마나 무르익은 것일까. 무턱대고 페미니즘에 대해 묻는다면, 젠더 정체성에 의거한 자동적인 성 대결구도가 떠오른다. 맨 먼저 가부장제도에 저항하는 과격한 여성상을 떠올릴지 모른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지영의 언니 은영의 모습이 이런 여성상에 가깝다. 지영이 가려는 미국보다 여성인권이 높은 덴마크로 여행가고 싶어 하던 은영은 결국 지영과는 달리 독신으로 씩씩하게 살아간다.

[사유와 성찰]포용사회를 향한 페미니즘

하지만 이 정도 이해만 갖고 있다면 페미니즘 이론의 목차도 제대로 읽지 못한 꼴이다. 자칫 우리는 페미니즘을 남성위주 사회에 대항하는 여성만을 위한 학문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일찍이 미국의 흑인 여성 문화비평가 글로리아 왓킨스는 페미니즘을 성적 차별과 억압을 종식시키기 위한 하나의 과격한 정치운동으로 이해하는 일반론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녀에게 페미니즘의 최종 목표는 결코 여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다. 페미니즘은 남성과 여성, 그리고 우리 사회를 살고 있는 모든 구성원들의 삶을 의미 있게 변혁시킬 수 있는 힘을 갖고 있다고 주장했다.

뉴욕시립대학 영문과 교수였던 왓킨스는 벨 훅스(bell hooks)라는 소문자 필명으로 활동했다. 변변한 이름도 없이 노예로 살아야 했던 자신의 할머니와 어머니의 별칭이었다. 노예제가 폐지된 현대 사회에서 굳이 아픈 가족사의 수치스러운 이름을 내세운 이유는 뭘까. 그녀는 중산층 백인 여성들이 단순히 자신의 평등권을 주장하기 위해 페미니즘 이론으로 무장하는 것을 경계하고자 했다. 최소한의 능력이 전제돼야 한다면 배움의 기회마저 박탈된 저소득층 흑인 여성의 경우엔 어쩌랴. 같은 여성이어도 유색인종이 미국 사회에서 겪는 아픔의 현실은 자연스레 묻히고 만다. 어쩌면 그녀가 소망하는 페미니즘 운동은 남녀평등과 고용평등, 그리고 여성들을 위한 평등한 기회부여 차원 이상의 것일지 모른다. 인간을 성적 차이나 계급, 인종, 그리고 나이 등의 이유로 차별하는 사회구조나 이데올로기 전반에 대한 비판적인 성찰과 분석이 페미니즘 운동의 근본적인 목적이다.

시카고대학 정치학과 교수 아이리스 영도 유사한 주장을 폈다. 그녀는 페미니즘 운동을 두 가지로 분류했다. 첫 번째 운동은 ‘자유주의(liberal)’ 페미니즘이라 불렀다. 평등한 사회참여를 민주주의 이상으로 삼는 미국에서 1960년대 후반부터 시작된 여성인권 신장 운동을 예로 들었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보면 여전히 한국 사회는 중산층 여성들의 기본적인 평등권도 희생되는 사회다. 일을 아무리 잘해도 곧 아이를 가질 직장여성은 중요한 일감에서 제외된다. 남편이 아내와 육아를 분담하기 위해 육아휴직을 신청하려 해도 부모의 눈총, 직장에서의 압박감은 결국 여성의 평등권을 희생하도록 만든다. 자유주의 페미니즘의 관점으로 보면 최소한의 학력과 능력을 겸비한 중산층 여성이어야 그나마 평등권을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아이리스 영은 수많은 유색인종 여성, 노동자 계층의 여성, 사회참여 능력이 결여된 주부들은 오히려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의해 소외됐다고 지적한다. 그는 두 번째 페미니즘 운동을 ‘여성중심(gynocentric)’ 페미니즘이라 불렀다. 적절한 능력이나 계급이라는 조건을 갖춘 여성만을 위한 운동이기를 거부한다는 의미다. 저학력과 비정규직으로, 그리고 이주가정에서 인종적으로도 차별받는 열악한 조건에서 사회적 약자로 사는 여성들이 수없이 많다. 아이리스 영은 어느 사회든 여성중심 페미니즘으로 진보되어야만 젠더를 초월하여 사회 전반의 갖가지 차별을 경험하는 이들을 이해하고 연대하면서 포용하는 운동으로 발전할 수 있다고 보았다.

진정한 포용사회를 원한다면, 진보된 페미니즘이 필요하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을 향해 많은 젊은 남성들이 혹평하고, 심지어 배우들에게까지 악플 세례를 퍼부었다. 남성이 가진 모든 권리를 빼앗길 것 같은 막연한 두려움을 드러내는, 자유주의 페미니즘에 대한 초기 반응이다. 여성중심 페미니즘은 우리가 응당 당연하다고 여겼던 인식이 얼마나 많은 이들을 아프게 했는지 숨겨진 사회의 차별구조를 면밀히 성찰하게 만든다. 영화 <82년생 김지영>에서 마음 여린 지영은 그 구조적 차별의 무게를 견디지 못하고 다중인격 장애를 겪는다. 엄마의 희생적인 생을 아파했던 딸은 결국 자신의 연민을 무의식 깊이 내면화시켰을지 모른다. 영화를 보고 자신도 모르게 희생된 주변 가족과 소외시켰던 약자들을 떠올려 미안해하며 눈물짓는 관객들이 많다. 그런 페미니스트로 인해 포용사회를 향한 한국 사회는 여전히 작은 희망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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