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남은 왜 시장주의자가 됐을까

[이범의 불편한 진실] 이대남은 왜 시장주의자가 됐을까

최근 KBS의 세대인식 집중조사가 화제였다. 이대남(20대 남성)은 환경보다 개발이 중요하고, 비정규직 문제는 기업 자율에 맡겨야 하며, 출신대학에 따른 임금 격차는 공정하다고 강하게 믿는다. 50대 남성·여성뿐만 아니라 20대 여성과도 엄청난 차이가 난다. 이대남은 왜 도드라진 시장주의자가 되었을까?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이범 교육평론가·<문재인 이후의 교육> 저자

한국은 대학입시와 노동시장에서 몇 등을 하느냐에 따른 보상의 차이가 매우 크다. 자연히 경쟁이 치열하고 공정함에 대한 요구도 높다. 여기서 말하는 공정함은 스포츠적 의미, 즉 성취도에 비례하여 지위를 배분하는 것이다. 물론 샌델이 지적하듯 금메달은 부모와 코치가 도와준 결과일 것이다. 하지만 이를 보정하려고 자꾸 가점제와 할당제를 도입하면, 제로섬 경쟁에 나선 선수들 입장에서는 짜증이 나게 된다.

사회심리학자 하이트는 공정함이 ‘비례성’으로 이해되기도 하고 ‘형평성’으로 이해되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그런데 대입과 채용에서는 비례성(능력주의)이 기본이고 형평성(가점제·할당제)은 보조일 수밖에 없다. 기업과 대학들이 능력 있는 인재를 뽑기 위해 경쟁하기 때문이다. 완전한 형평, 즉 능력에 관계없이 동일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은 대입에서는 부분적으로만 가능하고(일례로 독일) 노동시장에서는 전혀 불가능하다.

그래서 공정(비례성)이 중요하다는 것, 여기까지는 이대남과 이대녀가 다르지 않다. 유독 이대남을 시장주의자로 만든 것은 페미니즘으로 인한 트라우마다. 남성이 가해자로 지목되면 ‘유죄 추정’ 원칙이 적용된다는 공포가 시발점이었다. 곰탕집, 홍대 스튜디오, 이수역 주점, 박진성 시인 사건 등이 남초 커뮤니티에 실시간 중계되면서 핵인싸에서 찐따까지 대동단결이 이루어졌다. 2018년 남성 누드모델 불법촬영 사건이 분수령이었다. 가해자가 여성이고 피해자가 남성인데도 페미니스트들은 편파수사를 규탄하는 집회를 열었고 여성가족부 장관은 이에 호응하는 성명을 냈다.

때로는 트라우마가 사상을 이끈다. ‘공정한 사법’을 기대하기 어려워진 이대남에게 사상적 버팀목은 ‘공정한 시장’이었다. 예컨대 남녀 간 임금 격차는 여성에 대한 차별이 아니라 능력에 따른 차이이며, 이것은 시장원리에 의해 입증된다는 것이다. 여성에게 적은 임금으로 남성과 동일한 노동을 시킬 수 있다면, 기업은 오히려 여성을 선호할 테니까. ‘시장의 자유’는 남녀 간 임금 차이, 여성 가점제·할당제 폐지, 메갈리아 티셔츠를 입은 성우의 해고, 페미니스트를 채용하지 않겠다는 편의점주를 모두 정당화해 주었다. 집값 폭등이 시장원리를 무시한 정책 때문이라는 인식도 더해졌다. 시장주의로의 ‘셀프 의식화’가 커뮤니티들에서 폭풍처럼 일어났다.

나는 페미니즘 운동을 지지하는 칼럼을 쓰기도 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의 페미니즘을 실명 비판한 적이 두 번 있다. 첫번째는 성폭력범으로 무고를 당해도 상대를 고소할 수 없게끔 만드는 법안이 제출되었을 때였다. ‘실질적 평등’을 위해 ‘형식적 평등’을 보류하자는 발상인데, 국가정치를 사회운동과 혼동한 소치다. 두번째는 한 기초의원이 ‘성매매 여성을 세금으로 지원하는 것은 부당하다’고 주장하다가 제명될 때였다. 피케티의 표현을 빌리자면 ‘브라만 좌파’ 이외의 목소리가 금지된 것이다.

민주당은 오히려 ‘형식적 평등’에 주목해야 한다. 여대의 약대·로스쿨 정원에 상응하는 남성 쿼터를 설정하고, 여성 경찰·소방관 채용 시 체력 기준을 높여야 한다. 병역제도 변화(여성복무·모병제)와 여성가족부 존폐에 대한 공론화 과정을 마련해야 한다. 궁극적으로 노동 및 대학 개혁을 통해 격차를 줄임으로써 경쟁의 강도를 낮춰야 하는데 아, 이건 언감생심인가.

이대남의 심리는 PC(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감과 시장주의가 결합했다는 점에서 트럼프 지지자들과 유사하다. 하지만 나는 이대남에 대한 꼰대스러운 비판에 가담할 생각이 없다. 그들에게는 그럴 만한 나름의 사정이 있었던 것이다. 다만 청년세대 앞에 가로놓인 최고의 난제인 ‘저출산으로 인한 극단적 인구구조’가 시장주의로 해결될지 의문이다. 저출산 대책은 결국 ‘과감한 사회혁신’ 아니면 ‘이민 대폭 유입’이다. 이준석 국민의힘 대표의 저서를 보니 그는 두번째 입장인 듯하다. 이대남이 이를 수용할 수 있는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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