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초기 국군은 북한군 전차 및 자주포에 대적할 수 있는 효과적인 방어 무기가 없었기 때문에 과거 일본군이 운용하던 육탄 공격을 선택했다고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는 소개했다.
군사편찬연구소에 따르면 육탄 공격은 주로 수류탄 2발과 안전핀을 제거한 60㎜나 81㎜ 박격포탄 1발, 그리고 화염병을 휴대한 특공조에 의해 이뤄졌다.
국군의 대전차 육탄공격 방법은 먼저 엔진부분에 화염병을 던져 전차를 정지시킨 후 해치(출입구 덮게)를 열고 수류탄을 던져 넣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후 60㎜ 포탄의 안전핀을 제거해 전차 안에 다시 던져 넣고, 그 직후 화염병과 휘발유를 쏟아 넣어 그 열기에 의해 포탄이 터지게 하는 방식이었다는 것이다.
국방부 고 심일소령 공적확인위원회는 지난 1월 공청회에서 1950년 6월 25일 옥산포 전투 당시 심일 소령을 비롯한 대전차포중대 제2소대원들의 육탄공격도 57㎜ 대전차포로 북한군 자주포의 궤도를 공격하여 기동을 중지시킨 후 소대원들이 해치를 열고 수류탄과 휘발유병을 투척하여 파괴한 것으로 참전자의 증언을 통해 확인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공청회에서 심일 소령이 파괴한 적의 자주포는 신형이라며 해치가 있는 SU-76M형을 파괴한 기록이 있다고 소개했다. 공적확인위원회 관계자는 “SU-76 M형 자주포는 내부가 개방된 초기 모델인 SU-76 I형 자주포와 달리 밀폐형”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육군 군사연구소측은 실제로는 SU-76M이 해치가 없고, 구형인 SU-76I가 해치가 있다고 반박했다. 소련군 군사고문 라주바예프의 6·25전쟁 보고서를 보면 T-70 전차를 기반으로 만들어진 SU-76 자주포는 전투시에 가스가 차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어 1943년부터는 해치를 제거한 신형 SU-76M을 생산했다는 것이다.
육군 군사연구소는 “공적확인위원회의 주장대로라면 심일 소령은 M형에는 있지도 않은 해치를 열고 수류탄과 화염병을 던져 파괴한 꼴이 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