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장성택 ‘실각’

김정은 체제 ‘후견인’ 역할해와… 정치국 위원 서열 1순위

2013.12.03 21:45 입력 2013.12.03 21:54 수정

장성택 부위원장은 누구

북한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은 김정은 체제 ‘후견인’으로 통했다. 박봉주 내각총리, 김양건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 권력의 핵심 인물들도 장 위원장의 사람으로 분류된다.

장 부위원장은 1946년 1월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났다. 김일성종합대학 정치경제학부를 졸업했으며, 1969년 러시아 모스크바대학에 유학했다. 1972년 대학 동급생이던 김정일 국방위원장 여동생 김경희(현 노동당 비서)와 결혼하면서 최고 권력층에 편입된다. 1988년 노동당 중앙청소년사업부 부장으로 승진했다. 1989년에는 노동영웅 칭호를 받고 당 중앙후보위원에 뽑혔으며 당 중앙청년 및 3대혁명소조부 부장에 올랐다. 1992년 김일성 훈장을 받고 당 중앙위원에 선출됐으며, 1995년 당 중앙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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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 위원장 시절에는 부침(浮沈)을 겪었다. 노동당 외교부 담당 과장 때 외화벌이 임무를 담당했던 그는 김 위원장에게 개혁·개방을 건의하고, 2002년 신의주 경제특구 사업을 진두지휘했다. 하지만 초대 특구 행정장관으로 내정된 네덜란드 화교 출신 양빈이 탈세 혐의로 중국 당국에 구속되면서 사업이 중단됐다. 같은 해 횡령 혐의로 사회안정국 처벌을 받았고, 2004년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 때는 ‘권력욕에 의한 분파행위’를 이유로 업무정지 처벌을 받았다. 당시 전문가들은 이를 김 위원장의 ‘견제’로도 해석했다. 호탕함과 친화력을 갖춰 따르는 사람이 많았던 장 위원장이 ‘딴마음’을 먹을 가능성을 차단하려는 의도가 있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장 부위원장은 2년여 만에 노동당 근로단체 및 수도건설부 제1부부장으로 복귀한 데 이어 당 행정부장으로 임명되면서 ‘권력 2인자’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2009년에는 김 위원장에게 셋째 아들인 김정은의 후계자 내정을 건의한 것으로 전해진다. 2009년 4월 국방위 위원이 됐다가 1년2개월 만인 2010년 6월 최고인민회의 제12기 제3차 회의에서 국방위 부위원장이 됐다. 2012년 김정일 훈장을 받았다.

실각설 이전까지는 아내 김경희 노동당 비서, 인민군 차수 리영호 등과 함께 체제를 유지하는 핵심으로 꼽혔다. 통일부는 ‘2013년판 북한 권력기구도’에서 장 부위원장을 정치국 위원 서열 1순위로 등재하는 등 그가 북한 권력 ‘넘버 2’가 됐음을 인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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