힘 과시 러·힘 못쓴 미… 동서 ‘신냉전 시대’ 오나

2014.03.19 22:16 입력 2014.03.19 22:39 수정
구정은 기자

서방, 크림 합병 제지 못해

충돌 없는 긴장 장기화 예고

미 신보수 냉전논리 부추겨

‘신냉전’의 시대가 오는 것일까. 러시아의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끝내 우크라이나의 크림자치공화국을 합병하기로 결정하자 미국과 유럽은 경악했다. 크림반도의 분리 움직임을 배후에서 조종하며 향후 정국의 지렛대로 활용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었지만 푸틴은 예상을 뒤집었다. 푸틴은 18일 “미국 등 서방은 자신들이 세계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으며 선택받은 존재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맹비난한 뒤 서방에 맞선 ‘승리’를 선언했다.

그 직후 크림반도의 러시아군과 우크라이나군 간에 총격전이 벌어져 우크라이나 장교가 숨졌다. 존 케리 미국 국무장관은 러시아가 유럽을 2차 세계대전 직전의 ‘민족주의적 열기’로 몰아가고 있다고 비난했다. 크림반도를 놓고 서방과 러시아가 물리적 대결로 갈 가능성은 크지 않지만, 양측은 신냉전을 방불케 하는 수사를 주고받으며 대립하고 있다. 이번 긴장 국면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어느 정도로 장기화될지는 예측이 엇갈린다. 하지만 러시아의 행보를 막을 ‘서방’의 현실적인 힘이 없어졌고 미국은 무기력하며, 냉전 종식 뒤의 ‘팍스 아메리카나’ 체제는 완전히 종지부를 찍었음을 이번 사태는 보여줬다.

영국 BBC방송은 서방과 러시아의 관계에 터닝포인트(전환점)가 될 것이라 내다봤다. 조지 W 부시 미 행정부 때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지낸 스티븐 해들리는 “푸틴은 옛 소련 붕괴 뒤 만들어진 국제질서를 거부했으며 역사를 다시 쓰려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푸틴의 행보에 아무도 제동을 걸지 못했다는 사실, 국제체제가 무력함을 노출했다는 사실은 그 자체로 불안요인이다. 또한 이번 사태는 한물간 듯했던 동서 냉전의 진영논리를 다시 국제무대에 끄집어냈다. 미국에서는 대테러전 실패 뒤 숨죽였던 ‘네오콘(신보수주의자)’들이 새삼 냉전적 사고를 부추기며 신냉전을 운운하고 있다. 서방은 러시아와의 대립선이 유럽의 어디에 그어질지 예측하지 못한 채 불안감을 표하고 있다. 크림 사태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의 동진에는 제동이 걸릴 것이며, 푸틴의 옛 소련권 규합은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북핵과 이란 핵문제, 시리아 사태 등 주요 현안에 대한 논의는 모두 교착될 위기에 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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