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심 못 얻은 미국, 20년 아프간전쟁 ‘굴욕적 실패’

2021.08.16 20:50 입력 2021.08.16 22:44 수정

<b>필사의 탈출</b>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국외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16일 카불국제공항에 몰려들어 비행기 탑승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트위터 캡처

필사의 탈출 이슬람 무장조직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을 장악하면서 국외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16일 카불국제공항에 몰려들어 비행기 탑승구에 필사적으로 매달리고 있다. 트위터 캡처

탈레반, 대통령궁 입성…권력 장악
시민들 탈출 행렬에 공항 아수라장

미 대사관 성조기 내리고 전원 철수
2500조원 투입·미군 2400여명 사망
철군 등 잇단 오판 ‘제2의 베트남전’

46년 전 사이공(현재 베트남 호찌민)에서 벌어졌던 일이 반복됐다. 아프가니스탄전쟁은 결국 미국의 패배로 끝났다. 미국이 돈과 병력을 쏟아부으면 적군을 물리칠 수 있을 것이라는 자만심에 빠졌을 때, 탈레반은 숨어서 잡초처럼 힘을 키웠다. 9·11테러 이후 충동적으로 전쟁을 벌인 미국은 ‘아프간 재건’ 목표를 달성하지 못한 채 헬기를 동원해 자국 대사관 직원들을 탈출시키는 굴욕을 겪으며 리더십에 타격을 입게 됐다.

탈레반은 15일(현지시간) 수도 카불에 입성해 대통령궁을 장악했다. 탈레반기가 게양됐고, 탈레반 대변인은 “아프간에서 전쟁은 끝났다”고 선언했다.

탈레반의 카불 점령 다음날인 16일 날이 밝기도 전에 시민 수천명이 아프간을 탈출하기 위해 공항으로 몰려들어 순식간에 아수라장으로 변했다. 1975년 월남 패망 직전의 ‘사이공 탈출’을 떠올리게 하는 급박한 상황이 이어졌다. 미국 대사관은 성조기를 내리고 전원 철수 길에 올랐다.

전쟁의 시작은 2001년 9·11테러였다. 조지 W 부시 당시 미국 정부는 탈레반이 집권하던 아프간 공습을 개시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독일 등 동맹 조직 혹은 국가에도 아프간전쟁 참전을 부추겼다. 이때만 해도 오사마 빈라덴 제거라는 전쟁의 목적이 명확했다. 하지만 미국이 2003년 발발한 이라크전에 집중하면서 아프간전쟁은 실패의 조짐을 보이기 시작했다. 미국은 이슬람교도가 대다수인 아프간 민심을 잡지 못했다.

결정적으로 2011년 빈라덴을 사살한 이후 미국은 아프간전의 목적을 잃었다. 그해 버락 오바마 당시 정부는 미국 외교의 무게 중심을 중동에서 아시아로 옮기는 ‘피벗 투 아시아’ 전략을 발표하며 아프간전에서 발을 빼려는 움직임을 보였다. 2014년 아프간 정부군에 병권을 이양하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탈레반의 공격 앞에 정부군과 민간인이 죽어가자 이듬해 철군 계획을 취소했다.

평화적 정권 이양 기회를 놓친 것도 실책이다. 2016년 파키스탄에 은둔하던 탈레반 지도자 아흐타르 만수르가 미국 공습으로 사망한 것이 대표적이다. 만수르는 사업가이자 탈레반 고위 지도자 중 평화회담에 관심을 가진 실용주의자였다.

이후 도널드 트럼프 정부는 단지 “돈이 아깝다”며 철군을 서둘렀다. 아프간의 평화에는 관심이 없었다. 철군 결정 뒤에 카타르 협상 테이블에 탈레반과 마주 앉게 된 아프간 정부는 ‘지렛대’로 활용할 수 있는 미군 카드를 잃은 상태였고, 협상은 교착상태에 빠졌다.

조 바이든 정부도 전 정권의 계획을 이어받아 9월11일까지 완전 철군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은 “아프간에 남는 것이 미국에 득이 될 게 없다”고 말했다. 바이든 대통령은 철군 시나리오를 세우며 심각한 오판을 했다. 카불이 탈레반에 위협받는 일은 최소 1년~1년6개월 이후에나 있을 것이라고 봤지만, 예상보다 빨리 아프간 정부가 붕괴했다.

전쟁은 막대한 수의 희생자들과 천문학적 비용의 빚을 남겼다. AP통신은 지난 4월까지 2448명에 달하는 미군이 숨졌고, 미국이 쏟아부은 돈은 2조2610억달러(약 2524조4000억원)에 달한다.

아프간전 결과가 11년 전쟁 끝에 패배하고 철수한 베트남전과 비슷하다는 의견도 나온다. 아프간전쟁에 참전했던 퇴역 미군 제이슨 뎀시는 워싱턴포스트에 “총과 돈을 이용해 원하는 모습으로 세상을 만들 수 있다고 믿었다. 그 결과 아프간의 문화·정치·역사를 무시했고, 우리의 생각은 비극적으로 틀린 것이었다”고 말했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