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케어, 장애인 ‘탈시설’ 보장할 수 있나

2019.09.22 20:35 입력 2019.09.22 20:36 수정

커뮤니티 케어의 하나인 장애인 자립생활 지원모델의 장애인 탈시설 지원 절차 중 ‘탈시설 욕구조사’ 항목이 있다. 다음 단계 ‘대상자 발굴’을 위해 욕구와 의사를 확인하는 과정이다. 당사자의 결정권을 존중하는 합리적인 단계처럼 보이지만, 이것이 당사자가 욕구를 말할 수 있는 과정으로 보장되려면 거주시설 안팎의 구조와 관계 변화가 절실하다. 제한적 관계와 공간에서 살아온 이에게 선택과 결정은 소중한 권리지만 그만큼 생소할 수 있다. “다음에 언제 만나요?” 탈시설 지원 현장의 참여자들은 종종 활동가에게 질문한다. “언제 시간 괜찮은가요?” 되물으면 답하기 곤란해하며 시설 종사자가 안다고 대답한다. 자신의 결정이 아니라 타인의 ‘허락’에 익숙한 일상이 엿보이는 장면이다.

[NGO 발언대]커뮤니티 케어, 장애인 ‘탈시설’ 보장할 수 있나

욕구에 기반한 선택과 결정 경험이 가능한 구조에 당사자가 놓여 있어야 의사를 확인하여 선택하는 절차가 의미와 힘을 가진다. 비빌 언덕, 지지와 존중의 커뮤니티 속에서 욕구가 싹트고, 실행할 용기가 생겨난다. 현재의 지원 절차는 장애인 거주시설에서 긴 시간 생활한 거주인의 일상적 경험이 선택과 결정에 미치는 영향들은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 일상과 관계의 변화보다 당사자의 ‘의지’만이 중요해질 때, 결국 당사자 책임론으로 귀결되기 쉽다. 나와서 살 만한 역량이 있는가 없는가 판단은 다시 주변인들의 권한이 된다. 결국 탈시설의 주체가 장애인 거주시설인 것처럼 보이게 한다. 커뮤니티 케어라는 이름으로 장애인 거주시설의 소규모화를 탈시설 정책으로 탈바꿈시키면서 이 착각을 부추긴다.

지난 17일 국가인권위원회는 장애인 거주시설 퇴소 시 당사자의 자기결정권 및 선택권 존중을 위해 보건복지부에 “거주인 퇴소·전원 계획 및 시설·서비스 정보 제공 방법 등에 관한 구체적인 세부지침 마련”을 권고했다. 경기도의 한 대규모 장애인 거주시설이 정원을 축소하는 과정에서 당사자의 결정권을 보장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당 시설은 올해 1월 15명을 요양병원, 장애인 거주시설 등으로 퇴소시켰다. 그러나 전원할 시설에 대한 정보를 당사자에게 제공하지 않았고, 무연고자의 경우 퇴소 신청서도 요구하지 않았다.

거주시설 퇴소판별위원회의 결정 사유는 단지 ‘거주시설 소규모화 정책에 따른 전원조치, 개별 특성에 맞는 서비스 제공’이었다. 오랫동안 거주시설에서 당사자를 지원한 이들이 전문가이며 권한을 가지는 것은 당연한 일일까? 정부 정책에 따른 것이고, 건강과 개인의 특성을 반영한 서비스라는 사유에 고개를 끄덕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발달장애인의 행동을 분석하는 돌발행동, 문제행동, 도전행동 등의 개념이 당사자를 특수화, 범주화시킬 위험이 있다. 판단하는 권력은 이러한 위험에 기반해 당사자가 놓인 차별적 구조를 외면하고 ‘장애 특성’만으로 문제를 규정한다.

복지부 지침이 형식화되지 않기 위해선 인권이 보호로 대표되지 않는 문화, 평가와 판단의 권력을 해체하는 것 등 절차를 넘어 관계가 변할 수 있는 내용이 반영되어야 한다.

더 근본적으로 시설 소규모화 정책은 시설 분산정책으로 지역의 시설화를 불러올 수 있다는 문제의식이 필요하다. 커뮤니티 케어는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상호적인 ‘케어’가 가능한 ‘커뮤니티’, 즉 구조의 변화 없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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