②나혼자 살다, 남몰래 죽다

2020.10.14 06:00 입력 2020.10.14 10:05 수정

고독사의 기록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일러스트 | 김상민 기자
고시원에서 전화가 왔다. 사람이 죽었으니 청소를 해달라는 주문이었다. 서울의 한 고시원이었다. 일반적인 주택이었다면 입구부터 방호복을 챙겨 입었겠지만, 이번엔 방호복이 보이지 않도록 가방 구석에 넣었다. 고시원 주인들은 고독사 청소업체가 자기 사업장에 방문하는 것을 비밀로 하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방문을 열었다. 30대 남성이 혼자 살던 방이라고 했다. 정리되지 않은 이불과 약병들 사이로 핏자국이 조금 보였다. 약 4.5㎡(약 1평)인 방 안에 생활용품이 가득 쌓여 있었다. 미처 정리하지 못한 피자박스가 책상에 덩그러니 남았다. 선반 위에는 발목까지 올라오는 운동화가 보였다. 흙이 약간 묻어 있기에 ‘건설노동을 했던 사람일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콘센트에 충전 중인 태블릿PC의 코드를 뽑았다. 화면이 켜졌다. 만화 <데스 스위퍼(Death Sweeper)>의 한 장면이 보였다.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일본 만화였다. 펼쳐진 만화책에 나열된 대사는 이랬다. “자신의 장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니?” “애당초 이 학력사회에 형처럼 공부도 잘하는 인간이 왜 은둔형 외톨이로 살고 있는 건지 이해가 안 가.”

고독사 현장을 청소하는 특수업체 하드웍스를 운영하는 김완씨(47)는 올해 가장 기억에 남는 고시원 고독사 사례로 지난 3월 초 경험했던 30대 사망자의 방을 떠올렸다. 김씨는 “사망자는 아마도 자신이 죽은 뒤에 어떤 식으로 처리될지 만화를 보면서 미리 알지 않았을까”라고 말했다.

‘고시원 천국’ 서울, 혼자 사는 이들이 증가하면서 고시원에서 연고 없이 사망하는 이들도 늘고 있다. 경향신문이 서울 공영장례 지원단체 ‘나눔과나눔’에서 받은 자료를 보면 올해 1~9월 서울의 무연고 사망자 중 거주지가 고시원인 곳에서 사망한 ‘고립사(고독사)’ 사례는 총 23건이었다. 전원 남성이었고, 60대 이상이 14명으로 가장 많았다.

고독사 현장을 지켜본 특수청소업체, 고시원 장기거주자, 고시원 운영자, 빈곤지원단체 활동가 등을 만나 얘기를 들어봤다. 혼자 살던 이들의 죽음을 지켜본 그들은 죽은 이에 대해 종종 이렇게 말했다. ‘이름도, 직업도 모른다. 그저 담배 피우던 남자.’


고독사는 고시원의 40년 역사를 따라다닌 그림자 중 하나다. 고시원이 늘어나기 시작한 1980~1990년대는 장래를 비관한 고시생의 사망이 눈에 띄었다면, 최근에는 노년층 1인 가구가 증가하며, 노인층 고독사가 많아졌다. 서울 공영장례 지원단체 ‘나눔과나눔’의 서울 고시원 고독사 사망 사례 23건 중 5060세대의 사망은 20건으로 전체의 86.9%였다.

고시원 같은 비적정주거 형태에서 일어나는 무연고 사망은 주로 쪽방 등 주거취약계층의 주거지가 몰려 있는 서울에서 발생한다. 올해로 13년째 특수청소업체를 운영하며 300여건의 고시원 고독사 청소를 해온 바이오해저드 김새별 대표는 “지방에는 고시원 고독사가 거의 없다. 서울은 월세가 비싸니까, 서울만 유독 고시원 고독사가 많다”고 말했다.

나눔과나눔의 자료는 단체가 자체적으로 집계한 것이어서 서울 고시원 고독사 사례 전체를 보여주지 않는다. 올해 9개월 동안 고시원에서 연고 없이 사망한 이들은 23명보다 더 많을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서울 무연고 사망자의 사망 장소 등 현황은 각 구청에서 관리한다. 서울시는 이 중 고시원 사망자만 따로 정리해 관리하는 자료는 없다고 했다.

■ ‘칸막이룸’에 쌓였던 공부 스트레스

고시원 발달한 1980~1990년대는
장래 비관 고시생 사망 많았지만
최근엔 중장년 이상 죽음이 많아

고시원의 탄생은 명확하지 않다. 1970년대부터 조금씩 생겨나 80년대부터 본격적인 사업이 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고시원 광고로 본 고시원의 등장과 분포의 변화’(2020년 대한건축학회 춘계학술발표대회 논문집 수록)에 따르면, 각종 고시정보가 수록된 ‘월간 고시계’ 1972년 9월호에 명칭을 ‘고시원’으로 기재한 지방의 고시원 광고가 처음 등장한 것으로 여겨진다. 논문에 따르면 월간 고시계에 등장한 고시원 광고 총수는 1994년 1104건으로 최고조에 달했다.

20대 초반이던 1985년, 고시원 시설보수 일을 하며 업계에 들어온 박성재씨(57)도 80년대를 방을 가진 고시원이 서울에 들어서기 시작했던 시기로 기억한다. 처음부터 네모난 모양의 방은 아니었다. 박씨는 “폭 90㎝, 길이 2m짜리 독서실 책상들 사이에 나무로 된 경량 칸막이를 설치해 일명 ‘칸막이룸’을 만들었다. 천장은 뻥 뚫려 있는 구조였다”며 “학생들이 낮에는 공부하다 밤이면 앉던 의자를 책상 위에 올리고 잠들던 시절”이라고 말했다.

이 시기에는 고시원에서 학생들의 죽음이 종종 눈에 띄었다. 1990년대 초 서울 노량진에서 90여명이 생활하던 칸막이룸을 운영했던 A씨는 당시 공부하던 학생이 스트레스 때문에 숨을 거뒀던 일을 떠올렸다. A씨는 “고시원에서 데리고 있던 학생이 집에 가서 자살했다. 경찰이 사건을 조사하러 학생이 머물던 방을 둘러보기 위해 왔는데, 그 방에서 유서가 나왔다. ‘스트레스 받는다. 죽고 싶다’는 내용이 담겼던 기억이 난다”고 했다. 그는 “많이 놀랐다. 고시원을 하며 가장 두려운 일은 학생들이 그렇게 불의의 사고를 당하는 것과 화재가 발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과거에는 대학 진학이나 사법시험 등 각종 시험 준비를 위해 길게는 7~8년 이상 고시원에 머무는 학생들이 많았다. 이들이 방음도 제대로 되지 않는 칸막이룸에서 받았을 스트레스는 상상하기 어렵다.

1990년대 초중반이 되자 방 윗부분까지 완전히 막힌 온전한 ‘방’ 형태의 고시원이 속속 자리를 잡기 시작한다. 1990년대는 고시원의 융성기다. 대학 진학률이 높아지고 일거리를 찾아 서울에 온 도시 노동자들의 수도 급속도로 늘었다. 집은 부족했고 몸을 누일 작은 방, 고시원의 인기는 치솟았다. 박씨는 “당시 서울에는 원룸이랑 기숙사도 많지 않아 대학가 근처에서 고시원 수요가 많았다”고 말했다. 물론 방뿐이었다. 이때까지는 화장실이나 샤워실이 없는 ‘미니룸’이 주를 이뤘다.

■ “40대, 술 먹던 남자래”

주변 사람들은 사망자를 잘 몰라
죽는 당시에 혼자라는 것보다는
생애 전반 외로움이 문제일 수도

2000년대 들어 화장실과 샤워시설이 있는 ‘샤워룸’에 대한 수요가 높아졌다. 최근에는 일부 고급화한 고시원도 있다. 하지만 여전히 월 10만~20만원 하는 고시원이 많고 이곳에서는 고독사가 빈번하다. 서울 노원에서 20만원대 저가 고시원을 운영하는 B씨는 “술에 절어 삶을 포기하다시피 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었다. 당뇨병 환자였는데도 술을 먹는 사람이었는데. 병원에 가서 치료받고 오라고 했는데, 병원에 다녀와서 신발과 옷을 깨끗하게 빨아놓고 눕더니 며칠 뒤 세상을 떠났다. 사람이 참…”이라며 말끝을 흐렸다.

정신장애가 있는 C씨(84)는 그간 값싼 고시원과 보호시설을 전전했다. 정확하지는 않지만, C씨의 기억에 따르면 그가 고시원에 살기 시작한 것은 2002년쯤이다. 현재는 서울역 인근에 있는 한 고시원에서 월 25만원을 내고 산다. 그는 얼마 전 근처 고시원에서 한 남성이 죽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C씨는 “40대 정도 되는 남자로 술을 많이 먹었다고 했다. 술을 많이 먹으니까 문제다. 그 고시원에서만 죽은 사람을 두 명 봤다. 뭐하며 지내던 사람인지는 모른다. 그냥 듣는 건데”라며 “그런 일이 일어나면 옆방 사람들이 방을 빼기도 한다”고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숨진 이를 잘 모른다. 특히 남성일 때 더하다. 특수청소업체 하드웍스를 운영하는 김완씨는 “청소할 때, 고독사한 사람이 여성일 때는 주변 사람들이 오가며 그 사람에 대해 한두 마디씩 얘기하는 소리를 종종 듣곤 했다. 그러나 남성일 때는 이런 경우가 별로 없다. 그냥 ‘담배 피우던 남자였어요’ 정도”라며 “많은 이들이 이미 죽기 전에 사회적 고립 상태에 놓여 있었다. 죽는 당시에 혼자였다기보다 결국 생애 전반에 걸쳐 겪게 되는 외로움이 정말 문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빈곤 문제 활동가들은 고시원 거주자의 상당수가 남성이고 고독사도 남성이 많은 이유에는 ‘여성’은 애초에 이런 공간에 머물기가 쉽지 않은 점도 있다고 말했다. 이동현 홈리스행동 활동가는 “여성 홈리스의 경우 거처를 구하는 것이 너무 힘들다”며 “안전 등 여러 가지 요인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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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치된 쓰레기…좁은 공간의 비애

고독사 예방 정책 실효 거두려면
‘쓰레기집’ 될 수밖에 없는 환경 등
주거·생활의 기초 욕구 해결돼야

정확한 이름을 알기 어려운 약병, 먹다 남은 음식물 쓰레기, 수십개씩 쌓인 술병과 담뱃갑. 고시원 고독사 현장에서 흔히 보이는 물건들이다. 김완씨는 “종종 인슐린 주사기가 눈에 띄기도 한다”고 말했다. 김새별씨는 “귀한 물건은 거의 없다. 서류나 끄적여놓은 일기장과 메모장이 종종 나온다. 그런 것들을 유품으로 유족들에게 전달하려고 하면 유족들은 대개 싫어한다. 버려달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정리되지 않은 고시원 고독사의 현장을 볼 때, 사람들은 흔히 사망자의 생활습관을 탓하기 쉽다. ‘정리 좀 하지’ ‘쓰레기 좀 버리지’ ‘생활습관이 좋지 못하니 주변이 불결해지고 질병에도 취약한 것 아니냐’ 등의 이야기이다. 반은 맞고 반은 틀린 얘기다.

3월 고시원 고독사가 있었던 방을 생각해보면 답이 나온다. 4.5㎡(약 1평) 되는 방에 1인용 침대 하나, 침대에 걸칠 수 있는 책상 겸 선반 하나가 놓였다. 침대에서 50㎝ 정도 떨어진 곳에 벽을 등지고 냉장만 되는 작은 냉장고가 하나 있었다. 그 위에 선반이 겹겹이 쌓여 있었다. 일반적인 고시원이라면 이런 선반도 없었겠지만, 이곳에 살던 사람은 수납을 위해 스스로 선반을 설치한 것으로 보였다. 선반 위에 프라이팬, 냄비, 약병, 황도 캔, 가글병 등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사망자는 생전, 나름대로 좁지만 자신만의 집을 정리하며 살고 싶었을 것이다. 이리저리 수납할 곳을 찾아봤지만, 장소는 부족했고 바닥에, 책상 위에 쌓이는 물건들은 시간이 지날수록 늘어갔을 것이다. 그렇게 집은 점점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쓰레기집’이 되어간다. 한 사람이 살기에도 방이 너무 좁기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노인들은 몸을 움직이기 어려워 쓰레기를 쌓아놓기도 한다. 값싼 고시원은 대개 오래된 상가건물의 4~5층에 입주한 경우가 많다. 높은 계단을 오르내리기 어려운 노인들은 밖에서 물건을 사오기도 어렵고 쓰레기를 외부로 내다 버리기도 힘들다. 이동현 활동가는 “일부 노인들은 고시원 총무에게 돈을 주고 물건을 사다달라고 부탁하기도 한다”며 “쓰레기가 쌓이는 데는 이런 이유도 있다”고 말했다.

지난 3월 ‘고독사 예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고독사 예방 정책을 체계적으로 추진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5년마다 고독사 예방 기본계획을 세워야 한다는 내용이다. 고독사 실태조사는 단순한 숫자가 아니라 생존자가 살아온 환경을 구체적으로 파악해야만 효과적인 정책으로 이어질 수 있다. 이를 통해 사망자들이 살아생전 원했던 주거와 생활 양식의 기초적인 욕구를 파악해야 하며 이를 해결하지 못한다면 고독사는 늘 수밖에 없다.

지금도 현장에서 관련자들이 체감하는 고독사 증가율은 가파르다. 김새별씨는 “과거엔 고시원 고독사가 별로 없었다. 최근에 훨씬 많아졌다. 경제가 어려워질수록 고독사가 많은 것 같다”며 “지난해보다도 (코로나19가 발생한) 올해에 엄청 많아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살기가 더 힘들어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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