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FTA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2011.11.08 21:46 입력 2011.11.08 22:58 수정
장하준 | 케임브리지대 교수·경제학

독소조항 논쟁보다 본질 직시를

결국 한국경제 장기 발전 해칠 것

한·미 자유무역협정의 국회 비준 문제를 가지고 나라 전체가 극한 대립을 하고 있다. 특히 투자자-국가소송제가 쟁점이 되고 있다. 민주당 등 반대하는 측에서는 이 제도가 도입되면, 우리의 경제주권에 심각한 제동이 걸린다고 지적한다. 이 제도는, 정부가 자신의 재산권을 침해했다고 생각하는 투자자가 우리나라 법정을 거치지 않고 바로 국제 분쟁위원회에 우리 정부를 제소할 권리를 주는데, 이로써 우리 정부의 규제 능력이 제한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특히 미국과 맺는 협정의 경우는 ‘재산권 침해’를 매우 광범하게 해석해서, 정부 규제로 기대이윤이 충족되지 않는 ‘간접 수용’까지 포함하고 있기 때문에 공공정책에 대한 제약이 더 크다는 것이다.

정부, 여당을 포함하여 찬성하는 측에서는 이 제도가 세계적으로 이미 수천개에 달하는 양국 간 투자협정(BIT; Bilateral Investment Treaty), 그리고 대부분의 자유무역협정들을 통해 ‘국제 기준’화되어 있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우리나라도 (한·EU 자유무역협정의 경우는 아니지만) 지금까지 체결한 일부 자유무역협정이나 양국 간 투자협정 등을 통해 이미 받아들인 것인데 왜 새삼스럽게 문제 삼느냐고 반박한다. 그리고 이 제도를 통해 우리나라 투자자도 보호를 받는다는 점도 잊어서는 안된다고 지적한다.

[장하준칼럼]한·미 FTA 더 깊이 생각해야 한다

투자자-국가소송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이미 국제적으로 광범하게 채택되고 있다는 지적은 맞다. 그리고 이제 우리나라가 일방적으로 외국인 투자를 받기만하는 나라가 아니기 때문에, 이 제도가 미국에 투자한 우리나라 투자자에게 득이 될 수 있다는 점도 맞다. 그리고 국제 분쟁으로 들어가면 항상 힘센 나라가 이기는 것도 아니다. 찬성 측의 주장에 일리가 있다.

그렇지만 투자자-국가소송제가 찬성 측에서 이야기하는 것처럼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가 불만이 있으면 바로 국제 중재위원회로 갈 수 있게 함으로써, 국내법을 무력화하는 문제가 있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제소를 해서 투자자가 이기는 경우뿐 아니라, 제소 위협을 통해 정부의 양보를 받아낼 수도 있고, 투자유치국 정부가 투자자의 제소가 두려워 미리 규제를 소극적으로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 제도가 정부정책에 부과하는 제한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더 큰 것이다.

그리고 이 제도에서 쓰는 국제 중재위원회라는 것이 세계은행을 통해 검증된 사람들로 구성되어 있기는 하지만, 결국 (국제 인권재판소 등과 같이) 공공기관이 아니라 사적인 기관이기 때문에, 이 제도의 도입은 사적 기관에 의한 공공 권력의 대체라는 현상을 가져온다는 문제도 지적되어야 한다. ‘경제 주권’의 차원을 넘어 일반적인 공권력 무력화를 가져오는 것인데, 기업에 유리한 것이 무조건 사회 전체에 좋은 것이라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믿는 사람이라면 몰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심각한 문제이다.

그래도 뭔가 좋으니까 다들 하고 있지 않느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대부분 다 한다’는 것이 어떤 제도의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이 될 수는 없다. 사실 1980년대까지만해도 대부분의 투자협정은 외국인 투자에 문제가 생길 경우 일단 국내 법정을 통해 해결을 시도해보고 그래도 안되면 국제 분쟁중재 기구를 찾아가도록 하였다. 그러다가 1980년대 이후 어떤 방법을 쓰더라도 외국인 투자를 많이 유치하는 것이 좋다는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가 퍼지면서, 1990년대 이후 이런 제도가 일반화된 것이다.

그런데 지금 한·미 자유무역협정에 대한 논쟁을 바라보면서 가장 안타까운 것은, 투자자-국가소송제라는, 중요하지만 부차적인 문제가 주요 쟁점으로 부각되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에 앞장서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지지했고, 한·EU 자유무역협정에 대해서는 세게 반대를 하지 않았던 민주당 의원들로서는, 선진국과의 자유무역협정 일반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기보다는 한·미 자유무역협정에만 국한된 특정사안을 물고 늘어지는 것이 자신들의 체면치레에는 도움이 될지 모르겠지만, 그 과정에서 진짜 중요한 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고 있다는 것이다.

우리가 미국이나 유럽연합 등 선진국과 맺는 자유무역협정의 핵심적인 문제는, 그것이 우리나라의 장기적 발전에 해가 될 확률이 매우 높다는 것이다. 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사국들이 수준이 비슷하면, 그 협정을 통해 시장이 확대되고 경쟁이 증대되면서 그에 참여한 나라들 모두가 득을 볼 확률이 높다. 세계 최초의 자유무역협정이었던 독일계 국가들 간의 1834년 관세동맹(1871년 통일 전까지 독일은 수십 개의 나라로 나뉘어 있었다)이 그 좋은 예이다. 1957년부터 시작된 유럽의 경제통합도, 1980년대 중반 이후 경제적 수준이 떨어지는 그리스, 포르투갈, 그리고 동유럽 국가들을 맞아들이기 전까지는 모든 회원국들에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는 것이 지배적인 견해이다.

반대로, 자유무역협정 체결 당사국들이 서로 수준이 다른 경우에는, 그중에 뒤처지는 나라는 경쟁으로 인한 자극을 받아 발전하기보다는 제자리 걸음을 하거나 도태되기가 쉽다. 우리나라가 만일 1960년대에 미국, 일본, 유럽 국가 등 선진국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었다면 포항제철, 현대자동차, 삼성전자 같은 기업들을 육성하는 것은 불가능했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 보면 된다.

우리나라가 1960년대 이전에 비하면 엄청나게 많이 발전했지만, 아직도 우리의 경제발전 수준은 미국이나 유럽연합 최고 선진국들과 비교하면 반정도밖에 안된다. 현재 우리나라의 1인당 소득이 2만달러 부근인데, 미국·스웨덴·핀란드 등은 4만5000달러 수준, 프랑스·독일 등은 4만달러 수준이다.

아직도 이렇게 현격한 차이가 있는 상황에서 미국이나 유럽연합 등 선진국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으면, 이미 세계 수준으로 성장한 전자, 자동차 등의 산업에서는 어느 정도 이득을 보겠지만, 우리가 현재 뒤처져있는 (대부분의) 산업들에서 추격을 하기가 매우 힘들어진다.

또 한가지 중요하지만 토론이 잘되지 않고 있는 문제는, 우리나라는 자유무역협정으로 다가올 구조조정으로 인한 갈등을 해결할 기제를 제대로 마련해 놓지 않았다는 것이다. 유럽의 대부분 나라들과 같이 복지제도가 잘되어 있는 나라에서는, 그를 통해서 자유무역협정 등 급격한 정책변화로 손해를 보는 사람들에게 상당 부분 보상이 이루어진다. 의료, 주거를 포함하여 기초생활이 보장되고, 실업보험이 지급되며, 정부 재정으로 재교육이 지원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나라와 같이 복지제도가 미비한 상황에서 이러한 자유무역협정으로 발생하는 희생자들에게 어떻게 보상을 할 것인가?

농업 등 아주 피해가 큰 분야에 대한 특별 보상이 도입될 수는 있겠지만, 이런 것을 모든 분야에 도입하는 것은 가능치도 않고 효율적이지도 않다. 희생자들에게 제대로 된 보상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아무리 나라 전체가 이득을 본다고 해도, 다수를 위해 소수가 희생하라는 전체주의적인 주장밖에 되지 않는다.

다시 말해서, 현재 우리가 선진국들과 (유럽연합과의 경우) 맺었고 또 (미국과의 경우) 맺으려 하는 자유무역협정은 시기상조이다. 지금 우리나라 경제 수준에서, 이런 협정들은 우리나라의 장기적 발전을 저해할 확률이 매우 높다. 특히 복지제도 등 피해자에 대한 보상제도도 잘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이렇게 큰 구조변동을 가져올 협정을 덥석덥석 맺는 것은 사회갈등을 심화시켜 우리 경제의 발전을 더 저해할 수도 있다.

특히 잊지 말아야 할 것은, 19세기에는 20년 시한의 자유무역협정도 많았지만, 요즘 자유무역협정은 맺었다 하면 ‘영원한’ 협정이라는 점이다. 해보다가 결과가 안 좋다고 무를 수도 없는 것이다. 유럽연합과 맺은 것은 돌이킬 수는 없다 하더라도, 미국과의 자유무역협정은, 경제 수준을 더 끌어올리고, 보상제도를 정비하고, 제대로 된 국민적 합의를 끌어낸 뒤, 20년, 30년 후에 맺어도 늦지 않다. ‘영원’히 갈 조약인데 20~30년 늦게 맺는 것이 뭐 그렇게 큰 문제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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