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해고·취업규칙 ‘노사협의 단서’로는 견제장치 안될 것”

2015.09.15 01:05 입력 2015.09.15 07:10 수정

전문가 “상대 도덕에 호소…사실상 정부 지침 동의한 것”
당정 비정규직 법안 처리 땐 노동시장 불안 가속 우려도

노사정이 대타협의 물꼬를 텄지만 후폭풍이 거세다. 한국노총은 제대로 된 견제장치 없이 ‘약속어음’만 받고 합의를 해줬다는 내홍에 휩싸였다.

하지만 정부는 노사정 대타협이 도출된 만큼 정기국회 내에 노동시장 구조개편을 위한 5대 법안을 통과시키겠다는 입장이다. 전문가들은 5대 법안이 개정되고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등에 대한 행정지침이 발표되면 노동자들의 고용 안정성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견제장치 풀린 합의안

한국노총은 14일 중앙집행위원회를 열고 전날 매듭된 노사정 대표자 합의안을 승인했다. 하지만 김만재 금속노련 위원장이 분신을 시도하면서 극심한 진통을 겪었다. 금속노련·화학노련·공공연맹·금융노조가 합의안에 반대하고 나선 것은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요건 등 두 가지 쟁점은 절대 합의하지 않겠다던 지도부의 약속이 사실상 깨졌기 때문이다.

정부가 두 쟁점에 대한 지침을 발표할 때 ‘노사와 충분히 협의하고 일방적으로 시행하지 않겠다’는 단서가 있지만 이 정도 수준의 견제장치로는 부족하다는 것이다.

김유선 한국노동사회연구소 선임연구위원은 “단서에 있는 협의라는 표현은 상대방 도덕에 호소하겠다는 꼴”이라며 “사실상 한국노총이 정부가 지침을 만드는 것에 동의한 것”이라고 말했다.

합의안에는 행정지침화뿐 아니라 중장기적으로 두 쟁점을 법제화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한국노총이 두 쟁점을 중장기 과제로 돌리자고 주장하다 외려 법제화로 갈 수 있는 근거를 남겨준 격이 됐다.

한국노총의 한 상근자는 “이 합의문대로라면 차라리 4월 합의 초안이 나았다”고 말했다. 저성과자 해고 기준과 절차를 명확히 정하는 논의 테이블에 한국노총이 참여하게 된 상황에 대해서도 노동계 반발이 커지고 있다.

기간제법·파견근로자보호법 등 비정규직 법안도 정부가 노사정 합의라는 명분을 가지고 독자 추진할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줬다.

노사정은 비정규직 법안에 대해 공동실태조사와 전문가 의견수렴을 진행해 대안을 마련하고, 이 대안을 정기국회 법안 의결 시 반영토록 했다. 하지만 비정규직 법안에 대한 노사정 간 이견이 워낙 커 노동계에선 대안 마련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관측이 높다. 이 경우 정부는 당정이 협의한 비정규직 법안 처리를 시도할 것으로 보인다. 노동계로선 정부안에 합의해준 건 아니지만 정부가 시간표를 세워 진행할 수 있는 명분을 준 셈이다.

한국노총이 호기롭게 나섰다가 ‘빈손’으로 끝난 것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한국노총은 지난 4월에 논의된 초안 협상이 패키지 딜(일괄타결)로 진행된 만큼 의미가 없다고 했다. 하지만 노사정 합의문을 보면 전날 대표자회의에서 정리된 5개 항을 제외한 60개 항은 지난 4월 초안이 그대로 확정됐다. 통상임금 범위를 상대적으로 좁히고 8시간 특별연장근로를 허용하는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소리소문 없이 합의를 해준 것이다.

“일반해고·취업규칙 ‘노사협의 단서’로는 견제장치 안될 것”

“더 불안정해질 노동시장”

전문가들은 이번 노사정 대타협으로 노동시장 유연화가 가속화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김유선 선임연구위원은 “비정규직 쟁점, 저성과자 해고, 취업규칙 불이익 변경 완화 등은 향후 노동시장에 큰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며 “저성과자 해고는 사실상 노조 간부를 솎아내려는 의도가 일정 부분 깔려 있고, 일반 노동자들은 실적이 나쁘면 쫓겨날 수 있다는 심리적 압박감을 가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근 한양대 교수는 이번 노사정 합의는 노사 모두에 도움이 되지 않는 것이며 노사정이 머리를 맞댈 이슈는 비정규직 남용 방지라고 짚었다. 박 교수는 “가이드라인은 실효성도 없고 나중에 부당해고와 관련된 분쟁만 만들어낼 뿐”이라며 “일을 열심히 하는 청년 노동자를 어떻게 정규직화할 수 있을지, 사용자가 비정규직을 남용하는 것을 어떻게 막을지 등을 논의하는 데 힘을 집중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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