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늙은 야당’

2015.03.05 21:09 입력 2015.03.05 21:15 수정

근 30년을 당원으로 산 고향 어르신도 새삼 놀라웠었나 보다. 문재인 체제를 출범시킨 새정치민주연합 전당대회 참관기는 너무도 ‘늙은’ 야당에 대한 충격과 안타까움이 배어났다. “예순둘 늙은이가 젊은 축에 속하는 동네 노인정”을 무색하게 하는 또래 대의원들, 낭자한 사투리가 친숙하면서도 어찔하더라고 토로했다.

[양권모칼럼]‘늙은 야당’

‘노쇠한 새정치연합’ 은 통계로 입증된다. 선거에 참여한 권리당원의 평균 나이는 58세이고, 전체 권리당원 25만명 중 15만명이 호남에 거주한다. 대의원도 마찬가지다. 농촌 지역은 물론 서울 대의원도 60대 비중이 제일 높다. 수도권 지역구 가운데 60대와 호남 출신 비율이 70% 이상에 달하는 곳이 널렸다. 젊은층의 정치불신과 무관심을 감안하더라도, 보수여당보다 늙어 보이는 야당의 모습은 평생 당원에게도 쇼크였던 셈이다.

세대와 지역의 당원 불균형이 현저한 상태에서 선거 때마다 ‘당심’과 ‘민심’ 시비와 괴리가 일상화되는 것은 필연적이다. 이번 전대에서도 일반 여론조사에서 압도적 우위가 없었다면 문재인 대표가 ‘당심’을 업은 박지원 의원을 이겨내지 못했을 것이다. 정청래 최고위원이 극명한 사례다. 그는 대의원 투표에서 꼴찌를 하고도 일반 여론조사에서 압승, 2위로 최고위원에 입성했다. “국민만 보고 가겠다”며 당 안팎에 자극적인 말 ‘대포’를 쏴대는 정청래식 정치가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알 수 있다. 야당에서 일관된 노선과 원칙보다는 그때그때 인기와 유행에 영합하는 정치(인)가 득세하는 것은 이처럼 뒤틀린 대의구조와 무관치 않다.

어쩌다 이토록 ‘늙은 야당’이 되었을까. 오랫동안 지역구도에 안주해 당의 외연을 확대하는 일을 방기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비정상적 대의체계를 바꾸는 정당 개혁을 외면하고, 기득권에 안주해온 탓이 크다. 세대와 지역별로 현저하게 불평등한 대표성을 개선하려는 시도보다는 선거 때마다 모바일투표나 여론조사를 끌어들여 보충하는 편법에 기댔다. 자연 공천권을 행사할 당권과 차기 대선 후보의 선출 방식, 공직 후보 공천룰이 당개혁의 전부인 것처럼 여겨져 왔다. 그렇게 해서 매번 계파 간 타협으로 바뀌어 온 ‘선거 룰’은 결과적으로 당 민주주의의 토대를 흔들고 전통적인 당원 구조를 무너뜨리는 악순환을 야기했다.

실제 1996년 15대 총선 때 수혈된 ‘젊은 피’가 이후 20년 동안 야당을 이끌고, 그때의 당원틀이 고스란히 이어지면서 중앙당과 당원이 함께 늙어 왔다. 50대에 이른 386정치인들이 아직껏 세대교체 주자이고, 50대가 당원의 기층을 이루고 있다. 상한 연령을 45세로 높이지 않으면 청년위원회가 제대로 작동되지 않는 정당이 되었다. ‘문희상 비상대책위’에서 보듯, 선거 패배 등으로 당이 위기 상황에 몰리면 어김없이 ‘원로정치’에 의탁할 수밖에 없을 정도로 리더십의 노후화도 한계 상황이다. 노무현 정권 이후 야당이 되면서 한번도 젊은 당원과 젊은 세력을 모으는 데 성공하지 못한 업보다.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젊은 인물을 충원해 ‘꼰대 정당’의 이미지를 세탁해온 새누리당에 비해서도 떨어진다.

지난 대선을 앞두고 ‘청년 100인 원탁회의’에서 민주당의 문제로 첫번째로 꼽힌 것이 “노쇠했다”는 것이었다. 젊은층에게 매력 없는 ‘노쇠한 야당’이 계속되는 한, 최근 새정치연합의 지지율 상승을 추동하고 있는 ‘2030’의 지지·기대는 잠정적일 수밖에 없다. 대안이 없는 상태에서, 새로운 ‘안철수’의 등장을 기다리며 잠시 머무는 계류지에 그치기 십상이다.

새정치연합 문재인 대표가 취임 후 ‘세대 전략’ 차원에서 줄기차게 공을 들이고 있는 것이 노인층이다. 2012년 대선 패배의 학습을 통해 가장 취약한 것으로 드러난 노인층을 끌어안겠다는 심산일 터이다. 어쩌면 50·60대가 당원의 주류인 새정치연합이 그 세대에서 가장 배척받고 있다는 데에 비극의 씨앗이 놓여 있는지도 모른다. 과거 선거 때마다 새정치연합의 세대 전략이 자기모순에 빠지거나 실패를 거듭해온 변인이 또 하나 있는 것이다.

물론 집권으로 가기 위해서는 ‘노인 끌어안기’도 긴요하고, ‘탕평 인사’도 필요할 터이다. 하지만 혁신은 그런 것들만으로 이뤄질 수 없다. 사람을 바꾸고 정책을 바꾸고 조직을 바꾸어서 새정치연합을 질적으로 재편해야 새로운 리더십이 세워질 수 있다. 젊은 인물과 세력을 수혈하고 이들이 변화를 주도할 수 있는 시스템을 제도화해야 한다. 낡은 질서를 깨뜨리는 근본적인 인물 혁신, 공천 개혁이 수반되지 않으면 당의 노쇠화는 영영 제어할 길이 없어진다. 필시 ‘늙은 야당’을 벗어나지 못하면서 수권정당을 도모할 수는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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