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 복’도 없다

2015.01.01 21:11 입력 2015.01.01 21:15 수정

무척 낯선 장면이었다. 강 같은 평화가 넘쳐난 ‘연말 국회’는 “새로운 정치의 패러다임”(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도래를 착각하게 할 만했다. 매번 여야 대치와 충돌의 포연이 자욱하던 국회 한복판에 크리스마스 트리가 반짝이고, 여야 의원들은 몸싸움 대신 ‘울면 안돼’ 캐럴을 합창했다. “야당 잘했다. 괜찮은 정당이다”라는 여당 원내대표의 말에는 감격이 넘쳤다. 제1야당 원내대표는 정치입문 11년 만에 처음으로 크리스마스를 가족과 함께 보냈다고, 행복에 겨워했다. 여야는 합심으로 ‘팍스 국회’를 찬양했다. 세월호 팽목항, 쫓긴 노동자들이 오른 첨탑, 전기도 끊긴 밀양 송전탑 천막 농성장 등 고단한 삶의 현장에 널린 ‘폭력’과 대비되어, 국회만의 평화는 묘한 기시감마저 일으켰다. 여야가 한번의 충돌도 없이 모든 쟁점 현안을 합의로 처리하고, 합심으로 팡파르를 울리는 광경만 처음 본 게 아니다. 이리 ‘사이 좋은’ 여야의 모습도 마찬가지다.

[양권모칼럼]‘야당 복’도 없다

필시 이만한 기적(?)이 일어나려면 충분조건이 있어야 한다. 여야가 대립하고 싸울 만한 거리가 아예 없었거나, 새누리당이 청와대 우산을 벗고 자립적 여당으로 거듭났을 때이다. 둘 다 아니다. 세월호 참사, 정당 해산, 비선 의혹, 노동 문제 등 ‘싸울 거리’는 너무도 많았다. 하나같이 민주주의와 기본권, 국민 생존권과 직결된 야당의 의제들이다. 무엇보다 여당인 새누리당은 여전히 “새눈치당”(이재오 의원)답게 청와대 가이드라인에 충일했다.

그렇다면 그 ‘기적’은, 여당에 참으로 “괜찮은 야당”인 새정치민주연합이 만들어 냈다. 연말 정산을 해보면 확인된다. 이완구 새누리당 원내대표가 적시한 세월호특별법, 예산안, 담뱃값 인상, 공무원연금, 부동산 3법, 자원외교 국정조사 등은 죄다 정부·여당의 방안·전략대로 처리됐다. 세월호특별법 과정에서 보여준 새정치연합의 질곡은 새삼 환기할 것도 없다. ‘담뱃값 2000원 인상’은 한 푼도 깎지 못하고 맥없이 들어줬다. 공무원연금 개혁은 ‘강제성 없는’ 국민대타협기구를 구성하는 조건으로 ‘4월 처리’에 도장을 찍었다. 소위 ‘사자방’ 중에서 4대강 사업은 빠지고 자원외교 국조를 성사시켰지만, 대상을 ‘김대중 정부부터’로 소급함으로써 하나마나한 게 되어버렸다. 새정치연합은 부동산 부자의 이해에 맞춰진 부동산 3법도 정부안대로 통과시키는 데 동참했다. 국정조사·특검을 공언하던 ‘비선 의혹’은 국회 운영위 개최로 퉁치는 길을 택했다. 민주주의를 유린한 헌재의 정당 해산 결정에 대해선 ‘종북 프레임’에 포획되어 몸사리기에 급급했다. 새정치연합만의 대안 입법을 마련하거나 통과시킨 것도 없다. 정산 결과를 내기 어렵지 않다. 새정치연합에는 온통 ‘-’뿐이다. 새정치연합에 남은 건 “싸우지 않겠다는 약속을 지켰다”(문희상 비대위원장)는 이상한 자기위안뿐이다.

무작정 싸우지 않은 것이 야당의 자랑이 될 수는 없다. 야당은 본디 반대(opposition)와 대안(alternative)을 양축으로 한다. 정권을 목표로 하는 정당들이 정치적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는 것이 바로 정치다. 한국 사회의 문제를 과감히 제기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분투하기보다 대화와 타협을 운위하며 방관하는 ‘길들여진 야당’, 지금 새정치연합이 존재하는 꼴이다.

새정치연합의 지지율은 줄곧 새누리당의 절반에 묶여 있다. 인사 참사, 세월호 참사, 공약 파기, 비선 의혹 등 잇단 실정에도 새정치연합 지지율은 요지부동이다. 여당이 잘못을 하든, 자신들이 잘한 일이 있든 변함이 없다. 대통령과 여당의 지지율이 떨어지면 야당이 상승하는 원리가 통하지 않는다. 새정치연합이 대안정당의 지위마저 상실하고 있음을 이만큼 고지시키는 것도 없다.

야당이 굳건하고 제 역을 했다면 ‘세월호 이후’가 달라졌을 수 있고, ‘비선 문제’를 “찌라시와 진돗개”로 덮어버리고, 헌법재판소가 정당 해산 결정을 무리하게 밀어붙이지 못했을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의 독주와 불통이 한 치의 교정도 없이 가속되는 데는 견제력을 상실한 무능한 야당의 탓도 크다. 허약한 야당은 당연히 ‘청와대 출장소’에 머무는 새누리당의 변화와 분발을 막는다. 연말 국회에서 보듯 이대로도 만사형통인데 변화의 필요를 느낄 까닭이 없다. 국민은 물론 정권과 여당을 위해서도 강한 야당은 필요하다. 새정치연합이 무기력을 벗지 못하고 강한 야당으로 서지 못하면 박근혜 정부 3년차도 지난해보다 나아지지 않을 터이다. 박 대통령은 ‘야당 복’을 타고났는지 모르지만, ‘야당 복’도 없는 국민들은 어쩌란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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