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와 이재명 ‘체험 극과 극’

2015.04.02 21:05 입력 2015.04.02 21:11 수정

“욕먹는 리더십이 필요한 때”라는 홍준표 경남지사(이하 경칭 생략)의 말은 무상급식 폐지의 정치적 속셈을 들춰 보인다. 전국 최초로 무상급식을 폐지하는 난폭한 결정의 배면에는 설령 ‘욕먹는 마케팅’으로라도 전국적 주목도를 높이고, 보편복지에 맞서는 보수의 아이콘으로 등극을 도모하는 ‘홍준표의 꿈’이 도사리고 있을 터이다. 그 꿈을 부풀린 게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와 벌인 “벽에 대고 얘기한” 설전이다. 대선주자 1위를 달리는 제1야당 대표와 ‘맞짱’을 떴으니, 그 효과는 대선주자 지지율 수직 상승으로 곧장 나타났다. 당시 기세의 홍준표는 “정당 대표로서 대안도 없는 정치적 쇼”라고 문재인의 항의방문을 몰아붙였다.

[양권모칼럼]홍준표와 이재명 ‘체험 극과 극’

홍준표의 무상급식 중단이 ‘예산 부족’은 구실일 따름이고, 실은 대선주자로서 비상을 노린 책략의 산물임을 간파하려면 대안의 모델이 필요하다. 이재명 시장의 성남시가 그 모델이다. 문재인은 홍준표를 만날 때 ‘이재명의 성남시’를 들고 갔어야 했다.

성남시는 무상급식을 ‘친환경급식’으로 전면 확대하고, 신규로 204억원을 들인 창의교육지원사업을 시행 중이다. 홍준표가 양자택일을 강요한 ‘밥’과 ‘공부’ 둘 다를 말짱하게 실시하고 있는 셈이다. ‘무상복지’도 계속 확대하고 있다. 전국 지자체 중 처음으로 출산 여성의 산후조리를 무상 지원하고, 내년부터 중학생 ‘무상교복’도 추진한다. 새누리당과 홍준표의 시각에선, 이쯤이면 재정이 거덜났거나 다른 복지 영역이 축소되었어야 한다. 게다가 성남시는 새누리당 출신 전임 시장으로부터 물려받은 7300억원의 빚더미로 2010년 모라토리엄을 선언할 만큼 파산지경에 몰렸다. 지자체는 세금을 더 걷을 순 없기에 동일한 지출을 가지고 막대한 부채를 갚으면서 복지예산도 늘리는 게 가능할까. 지표로 증명된다. 성남시는 예정보다 2년 빠른 3년6개월 만에 5700억원을 갚고 빚을 다 정리해 모라토리엄을 졸업했다. 복지예산은 20~30% 늘었다. 그러면서 2013, 2014년 연속 전국 최고의 재정건전성(행정자치부 ‘지방재정분석평가’)을 이룩했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나쁜 짓 안 하면 충분히 할 수 있다.” “가마솥의 누룽지 긁듯이 싹싹 긁고 마른 수건 짜듯이 하면 충분하다.” 불요불급한 토목 사업 등을 줄이고, 예산 낭비를 막고, 세금을 철저히 징수하고, 부정부패를 차단하는 것으로 가능했다는 답이다. 모라토리엄 졸업으로 갚아야 할 부채가 없어졌기에 확보된 예산으로 무상산후조리, 무상교복 같은 ‘무상복지’ 정책을 새로이 추진할 수 있게 됐다. 새누리당이 “포퓰리즘의 극치”로 몰아붙이지만, 무상산후조리에 소요되는 예산은 성남시 예산의 0.4% 수준이다. 어디에서든 무상급식을 비롯해 복지정책은 예산이 아니고 철학과 의지의 문제다.

‘이재명의 성남시’는 재정이 부족해서 무상급식을 못한다는 홍준표 논리의 밑동을 무너뜨린다. 사실 학교 무상급식 예산은 경남도 예산의 0.4% 수준이다. 굳이 성남시의 사례를 끌어오지 않더라도, 일부 선심성 예산을 줄이고 비행기 비즈니스석 이용 등 ‘홍준표 비용’만 아껴도 아이들이 눈치보지 않고 좋은 밥 먹을 예산은 능히 마련할 수 있다. “밥과 공부는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예산 아끼고 가용예산을 늘리는 능력의 문제”(이재명)인 것이다.

분명해졌다. 홍준표의 무상급식 중단은 예산 때문이 아니다. 예산이 부족해서 무상급식을 폐지한다면서, 그 예산을 다른 교육지원 사업에 쓰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밥’(무상급식)과 ‘공부’(교육복지사업)를 대척에 놓고 선택사항처럼 만들어 무상급식을 흠내고 손보려는 의도가 전면에 부각된 것이다. 무상급식을 흔들어 보편복지와 선별복지 논쟁을 점화, ‘홍준표 의제’로 만들려는 기도다. 그러니 학부모들이 학교 운동장에 밥솥을 내걸고, 눈칫밥이 두려운 아이들이 “엄마, 나 학원 끊고 급식비 내면 안돼?”라고 울먹이는 것도 보일 리 없다. 무상급식을 깨부순 ‘보수의 아이콘’으로 각인되어 대권문만 더 열 수 있으면 성공인 것이다. 그래서 더더욱 이번 ‘무상급식 싸움’에서 홍준표의 자진 후퇴를 기대하는 건 무망한 일이다.

남은 길은 주권자의 힘으로 ‘후퇴’를 강제하는 것밖에 없다. 경남 시민사회단체들이 추진하는 ‘주민소환’을 통해서나, 내년 총선을 앞두고 여론에 민감한 경남의 새누리당 의원들이 돌아서게 하는 것이다. 무상급식 폐지 반대 학부모들을 ‘종북’으로 모는 홍준표의 전의와 특유의 ‘똘끼’에 비춰 어느 하나 호락하지 않다. 그렇다면 ‘무상급식 싸움’은 다음 선거에서 표로 심판·정리하는 수밖에 없게 된다. 문제는 그때까지 교육 현장의 혼선과 퇴행, 아이들이 입어야 할 상처가 너무도 클 것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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