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당은 왜 이기지 못하나

2015.04.30 21:07 입력 2015.04.30 22:46 수정

야당은 세월호 참사 속에 치러진 선거에서도 참패했고, ‘성완종 리스트’ 파문의 복판에 치러진 선거에서도 전패했다. 선장을 바꿔 ‘1등 대권주자’(문재인)를 내세웠으나 성적은 달라진 게 없다. 야당이 이기는 길은 없는 것인가.

[양권모칼럼]야당은 왜 이기지 못하나

역시 새누리당은 선거 DNA를 가지고 있다. 4·29 재·보선을 3주 앞두고 정권의 부패 의혹을 까발린 ‘성완종 리스트’가 터졌다. 선거는 끝난 것으로 여길 만했다. 하지만 새누리당은 내부서조차 터무니없다고 여긴 노무현 정부의 ‘성완종 특별사면’을 끌어와 끝내 수세를 반전시켰다. 아무나 구사할 수 있는 기술이 아니다. 선거를 불과 이틀 앞두고 나온 박근혜 대통령의 ‘병상 메시지’는 대놓고 노무현 정부의 사면이 이번 사태의 “근원”이라고 단정했다. 물증이나 논리적 근거도 없다. 투표율이 낮은 재·보선은 결국 어느 쪽이 지지자를 더 투표장으로 끌어내느냐의 싸움이다. ‘아픈 박근혜’와 ‘나쁜 노무현’, 이만큼 보수 지지층을 격발시키고 투표소로 불러낼 호루라기는 없을 터이다. 아무리 지지율이 떨어졌더라도 박 대통령은 새누리당에 ‘선거의 여왕’이다.

새삼스러운 수법도 아니다. 지난해 세월호 참사를 두고도 판박이 공세가 펼쳐졌다. 6·4 지방선거와 7·30 재·보선을 앞두고 세월호 참사를 노무현 정부 책임으로 엮으려는 집요한 공작이 전개됐다. 노무현 정부 말기 법원의 결정에 따라 이뤄진 ‘세모그룹의 부채탕감’ 조치를 고리 삼았다. 대통령이 직접 세월호 참사의 ‘근원’이 이 문제에 있다며 검찰 수사를 재촉했다. 아무런 근거와 정황도 없이 세모그룹과 노무현 정부의 유착 의혹을 수사 대상에 올렸다. 새누리당은 세월호 국정조사에 문재인 등을 증인으로 채택하자고 나섰다. 물론 이후 검찰 수사에서 확인된 건 아무것도 없다.

새누리당이 긴가민가 물타기용으로 꺼낸 ‘성완종 사면’ 문제가 실제 야당의 발목을 잡는 물귀신으로 변하게 한 건 문재인 새정치민주연합 대표의 탓이 크다. 사면 문제에 문 대표가 “학을 떼고” 달려들어 논란에 불을 붙여줌으로써, 새누리당이 고대한 대로 성완종 사태의 흐름이 바뀌었다. 게다가 대통령의 고유 권한인 사면권 행사를 범죄행위로 엮으려 하는 데 정면으로 대응하지 못한 채, 서툰 해명으로 의혹만 키웠다. 정권의 부정부패 의혹인 ‘성완종 리스트’와 ‘특별사면’을 동급의 문제로 만들려는 새누리당의 함정에 스스로 걸어들어간 셈이다. 갤럽 여론조사에서 성완종 전 경남기업 회장이 야당 인사들에게도 금품을 줬을 것이라고 답한 응답자가 82%에 달했다. ‘성완종 리스트’ 8명의 금품 수수 의혹이 사실일 것이라는 응답 비율과 엇비슷하다.

이렇게 ‘여당도 야당도 다 똑같다’는 틀이 만들어지는 순간, ‘성완종 리스트’ 사건은 선거에서 야당의 진지가 될 수 없다. 새정치연합이 기세 좋게 ‘경제정당론’에서 ‘부패정권 심판’으로 말을 갈아탔지만, 달릴 길을 잃은 것도 그 때문이다.

새누리당에 어쩌면 내년 총선이나 다음 대선서 문 대표가 가장 쉬운 상대일지 모른다. 실제 새누리당 전략통 의원들이 내놓는 진단이다. 차기 대선주자 지지율에서 선두를 질주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 것일까. 문 대표의 ‘착한 품성’ ‘유순한 정치력’때문에 싸우기 만만하다고 보는 건 아니다. ‘친노(노무현) 디스카운트’를 계산하는 것이다. 현 여권이 위기 때마다, 선거 때마다 써먹는 ‘노무현 증오 정치’를 활용하기에 그만한 상대가 없다는 생각이다.

새누리당으로선 지난 대선에 이어 문 대표가 전면에 나선 4·29 재·보선에서 그 효력을 확인했다. ‘노무현 장사’, 10년 묵은 재래식 무기가 여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다는 게 이번 ‘성완종 사면’ 전투에서도 드러났다. ‘노무현 비서실장 문재인’이 야당의 간판으로 있고, 그가 ‘친노 프레임’에 묶여 있으면 새누리당은 다음 총선과 대선에서도 그 만능키를 계속 사용할 수 있다.

여권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비상구로 활용하고, 불리한 선거를 반전시키는 버팀목으로 삼는 ‘노무현 장사’를 파산하는 것은 이제 온전히 문 대표의 몫이다. ‘이기는 정당’의 길을 열기 위해 박정희 묘역 참배 같은 광폭 행보도 필요하고, 경제와 안보에서의 중도 확장도 필요할 터이다. 하지만 참여정부의 실패 책임과 연계될 수밖에 없는, 그래서 선거 때만 되면 ‘정권 심판론’을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는 ‘노무현 프레임’을 깨지 않고는 그 길은 쉽게 열리지 않는다.

그리고 그 프레임을 허물기 위해서는 일찍이 대표 경선의 경쟁자였던 이인영 의원이 갈파한 것처럼, 문 대표가 ‘상속 정치’를 벗고 ‘자기 정치’로 나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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