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와 0.76%

2016.05.01 20:53 입력 2016.05.01 20:57 수정
정희진 | 여성학 강사

2001년 9·11 당시 유색 인종에 대한 보복 폭력이 난무하는 거리에서 어느 미국 시민이 이렇게 말했다. 70대 여성인 그녀는 “미국은 이미 너무나 많은 것을 가졌습니다. 너무 많이 먹고 많이 버리고 있습니다. 저는 이 풍요가 두렵습니다. 이번 사건은 나누라는 경고입니다”. ‘피해 국가’ 국민의 입장에서 그녀의 성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다.

[정희진의 낯선 사이]5%와 0.76%

우석훈의 <촌놈들의 제국주의>는 “경제 영토 확장”을 부르짖는 한국사회의 아류 제국주의 심리를 분석한다. 얼마나 더 잘살아야 부자일까. 우리도 미국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먹고 많이 버리고 산다. 부는 국부(國富)로 셈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불가능한 개념이다. 미국인보다 부자인 한국인도 있고 그 반대 경우는 말할 것도 없다. 문제는 국민 개개인의 삶이다. 경제가 성장해도 굶는 사람이 있다. 경제는 국가 단위가 아니라 구성원의 삶의 질로 산정되어야 한다.

지난 4월10일자 경향신문 오피니언 지면 ‘별별시선’ 코너에 실린 “이념대로 찍으려니…”라는 글을 읽고 놀라웠다. 특정 지면의 특정 필자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그 글은 이미 장흥배 노동당 정책실장이 반박한 바 있지만 나는 그 글이 내용과 형식 모두에서 한국사회의 전형적인 글쓰기 방식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목소리를 보탤 필요성을 느꼈다.

그 글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나는 가장 올바른 선택을 하는 유권자로서 ‘비판적 지지’나 ‘전략적 유연성’을 선택할 바에야, 백지 투표를 하는 고집불통 진보정당 지지자다. 그런데 이번 정의당, 노동당, 녹색당의 상황을 보니 하나같이 문제가 많다…녹색당은 ‘탈핵’과 ‘탈성장’이 주요 정책이다. 문제는 ‘탈성장’이다. 안타깝게도, 경제성장이 안되면 우리는 행복하기 어렵다.”

“성장=행복”은 사실이 아닐뿐더러 지금 한국사회를 망치고 있는 가장 문제적인 사고방식이다. 이번 선거에서 시민들은 이런 통념에 제동을 걸었다.

내가 우려하는 점은 두 가지다. 가장 올바른 사람이라는 정체성과 탈성장에 대한 오해. 전자는 남성성을 대표하며 후자는 “일단 파이부터 키워야 한다”는 1970년대부터 지겹게 들어온 성장지상주의다. 가장 옳은 것만 선택한다는 자부심은 오만과 독선이 아니라 현실과 이론에 대한 무지에서 나온다.

산업자본주의에서 금융자본주의로의 변화, 그마저도 투명하지 않은 구조, 한국경제가 글로벌 자본주의로 편입된 상황의 초국적 상층 계급 연대, 과학기술의 발달 등으로 경제성장이 고용으로 연결되지 않는다는 현실은 상식이 된 지 오래다. 집권 여당과 대기업은 경제성장 혹은 노동개혁의 이름으로 양극화 논의를 입막음하고 있다.

지금 경제발전은 실업과 빈부 격차라는 악순환의 동력이다. 이명박 정부 당시 시위 구호였던 “1%를 위한 경제를 바로잡자” “경제 살리기 전에 사람부터 살려 주세요”라는 외침이 생각난다.

녹색당은 이런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녹색당은 ‘그들만의 경제발전’으로 인해 집터와 일터를 잃게 된 이들의 절실한 목숨 연대지(밀양 송전탑 투쟁을 보라), ‘반(反)경제’ 정당이 아니다.

이번 선거에서 녹색당의 정당 득표율은 0.76%. 미국에서 진행하는 TV창업 프로그램을 도입하여 5% 경제성장을 도모하자는 기독자유당의 득표율, 2.63%를 상기해보자.

제주에는 “제주의 허파”라고 불리는 ‘곶자왈’이라는 지형이 있다. 낮에도 수풀이 우거져 어둡고 휴대전화도 잘 안된다. 열대 북방 한계 식물과 한대 남방 한계 식물이 공존하는 희귀한 숲이다.

암석, 자연림과 가시덩굴이 혼재하는 제주 생태계의 생명선으로 한라산에서 해안선까지 동식물이 살아갈 수 있도록 완충 역할을 한다. 제주산 양치식물, 미기록종, 환경부가 지정한 각종 야생식물이 서식한다. 2009년에는 제주도 전체 면적의 10%였지만 지금은 5~6.1%로 추정된다.

이 중 사유지가 약 60%로, 해를 거듭할수록 엄청난 속도로 파괴되고 있다. 제주특별자치도는 사유지 매수 사업을 진행하고 있지만, 2년 동안 각각 6250만원, 1억2500만원에 불과하다. 아무리 생색 정책이라 해도 민망한 액수다.

산방산 근처의 안덕 곶자왈에 가면 소떼를 만나기도 한다. 그들이 지나가기를 20분 정도 기다려야 한다. 음료수병, 사탕 포장지가 떨어져 있을까봐 비닐봉지를 준비한다. 그곳에 가면 누구나 쓰레기를 줍게 된다. 이런 곶자왈에 골프장과 리조트를 짓고 돈을 벌면 경제성장인가.

탈(脫)성장주의는 탈(奪)성장, 성장을 탈취(奪取)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과일의 종자까지 먹지는 말자는 석과불식(碩果不食), 지속가능한 경제를 의미한다. 서민들이 부자 증세를 반대하는 정당에 투표하는 이유는, 있는 자들의 탈(奪)성장 공포를 ‘잘사는 나라’의 국민으로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이른바, 불경기와 탈(脫)성장은 다르다. 곶자왈 보존을 원하는 유권자 수와 곶자왈 면적이 상승 비례하기를 바란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 경제가 망하지는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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