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은 성평등 정의

2020.11.23 03:00 입력 2020.11.23 03:03 수정

‘김진숙’. 내가 그 이름을 알게 된 것은 2011년이다. 그녀를 떠올리면 ‘크레인 고공농성’ ‘한진중공업’ ‘희망버스’ ‘승리’가 연관 검색어처럼 자동으로 연상된다. 그녀가 309일의 고공농성을 마치고 내려왔을 때 나는 모든 문제가 해결될 줄 알았다. 지금 이 순간까지 그녀의 부당한 해고가 계속될 줄은 상상하지 못했다. 아마 나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그랬을 것이다.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김민문정 한국여성단체연합 공동대표

최근 복직투쟁 과정에서 그녀에게 암이 재발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35년, 아니 한진중공업에 입사했을 때부터, 그 긴 세월 동안 그녀가 겪었을 무수한 차별과 폭력, 그 순간들에 느꼈을 분노와 좌절…. 그것들이 그녀의 몸 어딘가에 쌓여 질병을 만들었을 것이라 생각하면 정말 안타깝고 슬프다.

한진중공업 최후의, 최장기 해고노동자 김진숙. 그녀 이름 앞에 붙여진 수식어는 우리 사회 성차별 현실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증표라고 생각한다. 만일 김진숙씨가 남성이었다면, 부양할 가족이 있는 가장이었다면, 35년 동안 유일하게 복직되지 않은 최후의 해고자로 남아 있었을까, 아니 남아있게 했을까 질문해 본다. ‘입사는 가장 나중, 해고는 가장 먼저’. 여성운동이 외환위기 때 여성 우선 해고에 반대하며 외쳤던 구호다.

여성들은 일하기 위해 2중 3중으로 쳐진 성차별의 벽을 뚫어야만 했고 ‘위기’라는 핑계가 있을 때 가장 먼저 일자리에서 쫓겨났다.

생계부양자 남성 이데올로기, 가부장제는 여성노동자에 대한 차별을 당연한 것으로 승인했고 국가도, 노조도 부당한 성차별을 개선하려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무수한 ‘여성노동자 김진숙들’이 생겨났다.

그래서 나는 김진숙 이름 앞에 여성노동자라는 수식어를 붙인다(본인이 어떻게 생각할지는 모르겠다). 용접은 남성의 일이라는 통념을 깨고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용접사가 된 김진숙의 삶은 우리 사회의 강고한 성차별의 벽을 허무는 과정이었다.

시내버스 안내양을 하면서 부당한 몸수색에 분노했지만 저항하지 못한 경험이 이후 공권력의 몸수색에 저항하게 했고, 그것이 검찰의 추가 조사와 기소 등 더 큰 탄압의 빌미가 됐다는 일화는 여성의 삶과 몸의 경험이 교차하며 어떻게 성차별과 폭력의 피해로 연결되는지 보여주는 단면이다.

한진중공업과 정부에 촉구한다. 35년의 부당한 해고, 지금 당장 끝내야 한다. 지난한 성차별의 역사와 결별하고 성평등 정의를 세우는 출발점이 여성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이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부당한 해고를 경험하지 않는 사회, 성별이나 부양가족 유무에 따라 우선순위가 결정되지 않고 누구나 독립된 생활자로 존중받고 안정된 삶을 누릴 수 있는 사회로 가기 위해 여성노동자 김진숙의 복직은 필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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