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치와 몰염치의 두 세계

2017.02.16 21:21 입력 2017.02.17 10:08 수정

[정동칼럼]염치와 몰염치의 두 세계

모처럼 만나 점심을 같이하던 대학 동창이 투박했던 우리의 어린 시절을 추억하다 지나가는 말처럼 덧붙였다. “그래도 부모님께서 염치는 가르치셨는데….” 염치를 알고 살기가 어려운 시절이다. 그는 부모님이 물려주신 자산을 염치로 가볍게 요약했지만, 그가 배운 염치는 가벼운 가치가 아님이 틀림없다. 그는 노조의 일에 동참했던 후폭풍을 몇 해째 불평도 없이 겪는 중이다. 거기엔 분명 그가 배운 염치가 작용했을 것이다. 소신과 강단으로 함께 고역을 겪는 그의 동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뿐이겠는가. 묵묵히 힘들게 살아가는 대다수의 사람들은 일찌감치 염치를 배운 이들이다. 그래서 남의 물건을 훔치지 못하고 거짓말은 목에 걸린다.

우리는 염치가 행방불명된 사태를 견디는 중이다. 수백명이 수장되던 시간의 밝힐 수 없는 일들이 ‘정상’이라 주장하고, 헌정을 위협하는 수많은 비위가 자기 책임이 아니며 도리어 피해자가 되었다고 주장하는 이들, 위법행위들을 왜곡하고 편을 가르고 혼란을 조장하는 이들의 몰염치는 사실과 거짓의 경계마저 개의치 않는 초현실적 국면에 다다랐다.

함께 살아가는 가운데서 생겨나는 부끄러움은 이상하게도 누군가 못 느낀다고 해서 사라지진 않는다. 염치없는 사람을 보면 나의 낯이 뜨거워지는 건 그가 외면하는 부끄러움이 나에게 전가되기 때문이다. 당연한 부끄러움을 누군가가 모를 때 우리는 공동의 책임을 느끼는 모양이다. 염치 때문에 마음이 약한 사람들은 염치를 모르는 이들이 거부하는 부끄러움까지 자기도 모르게 떠안게 된다. 책임감은 부끄러움을 느끼는 사람의 몫이므로 어깨는 더 무거워진다. 최순실의 무시무시한 몰염치에 분노하여 “염병”이라고 질타한 특검 사무실 청소노동자의 외침은, 생명을 좀먹는 전염성 질병으로 몰염치를 적절히 진단한 것이기도 하다.

“대한민국과 결혼”한 대통령을 “따뜻한 시각”으로 봐줄 필요가 있다는 대통령 법률대리인단 변호인의 말은 납득하기 어렵다. 사법절차에서 인간적 배려가 필요하다면, 그건 고려의 대상이 사회적 약자일 때다. 하지만 대통령은 대한민국의 최고 권력자다. 그래서 그의 임무 수행은 가장 엄하게 관찰하고 평가해야 한다. 권력자의 과오에 관대한 것은 권력에 영합하는 행위이다. 게다가 세월호 사건이나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의 경우에서 드러나듯 “국가와 결혼”했다는 권력자가 약자들을 무시하고 배제했던 것이 문제되는 마당에 무슨 염치로 따뜻한 눈길을 요구할 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직무상의 위헌에 관한 의혹으로 탄핵심판을 받는 최고위 공직자에 대한 준엄한 사법절차에서 개인에 대한 온정주의에 호소하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그 변호인이 모르리라고 생각하긴 어렵다. 그는 전직 헌법재판관이다. 대통령 대리인단의 다른 변호인은 헌법재판소 안에서 태극기를 꺼내 들어 포즈를 취하다 제지당했다. 헌법재판소에 정치적 중립을 요청하면서도 바로 그 법정을 정치적 퍼포먼스의 무대로 만드는 대통령 대리인단의 모순적 전략은 몰염치의 또 다른 국면이다.

그러나 피로와 우울에 빠져있을 여유가 없다. 공동의 책임을 느끼는 사람들은 한꺼번에 드러난 치부를 부끄러워하고, 흔들리는 탄핵 정국의 향방을 불안해하며, 탄핵 이후의 민주주의를 염려한다. 신물 나는 몰염치의 정치에 상처를 입었어도 시민들은 냉소와 무관심이라는 더 편한 길을 차마 택하지 못한다.

시민들의 상처와 우려를 아는지 모르는지, 제대로 끝날지도 분명치 않은 제사의 젯밥 다툼부터 일찌감치 시작한 정치인들 역시 또 다른 몰염치의 우주 속에 사는 것은 아닌지 의심스럽다. 대선 행보에 대한 질문에 대통령 권한대행은 막중한 책임을 다할 뿐이라는 동문서답만 내놓았지만, 그가 민생을 내세우며 막중한 책임을 다한다는 세계는 농민들이 피눈물을 흘리며 가축 수백만 마리를 땅에 묻는 이 세계는 아닌 듯하다.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에 나오는 ‘우주는 하나(유니버스)가 아니라 여러 개(멀티버스)’라는 말이 이런 뜻인가 싶다.

야권은 어떤가. 이렇게 될 때까지 정말 아무것도 몰랐단 말인가? 또, 시민들이 주말마다 거리로 나서지 않았던들 탄핵안 가결이 가능이나 했을 것인가? 새누리당 분열 후에도 야권은 통합적으로 정치력을 발휘하기보다는 여전히 촛불을 들어달라며 시민에게 의존하니, 그들이 미더울 리 없다. 이런 ‘멀티버스’에서 몰염치의 다른 궤도에 선 것이 아니라면, 야권 역시 민의가 자신들을 신임한다고 믿거나 미리 정권교체를 당연시하기 전에, 그간의 무능력을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한다. 최소한의 정의로라도 이 몰염치의 정국을 돌파하는 일을 마무리하지 못한다면 시민들은 야권도 용서하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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