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옥희의 영화’

2010.09.15 21:20
이로사 기자

4개의 변주로 이뤄진 알쏭달쏭 삼각관계

홍상수는 여전히 그림을 그리는 중이다. 작은 차이와 반복을 무한정 만들어내는 기하학적인 그림. 장면들은 교집합을 이루며, 어디를 잘라내도 그 조각은 영화 전체를, 나아가 홍상수의 필모그래피 전체를 응축한다.

[리뷰]영화 ‘옥희의 영화’

그의 11번째 장편 <옥희의 영화>는 ‘차이와 반복’이라는 주제를 좀 더 간명하게 내보인다. 한 영화 안에 명확히 분절된 4개의 변주를 심었다. 영화는 제목이 다른 4개의 단편으로 구성된다. 첫 번째 ‘주문을 외울 날’은 삼십대 독립영화 감독 진구(이선균)가 겪는 곤란한 하루를 그린다. 두 번째 ‘키스왕’은 이십대 영화과 대학생 진구가 평소 좋아하던 같은 과 학생 옥희(정유미)에게 구애하는 내용이다. 세 번째 ‘폭설 후’는 오십대 영화감독인 송감독(문성근)과 그의 학생 진구·옥희의 강의실 장면이며, 마지막 ‘옥희의 영화’는 옥희가 자신이 사귀었던 한 젊은 남자, 나이 든 남자와 각각 다녀온 산행을 교차시켜 만든 영화 속 영화다.

영화는 시침 떼고 옴니버스인 척하고 있을 뿐이다. 실상 각각 독립적인 이야기인 4편의 에피소드는 서로 겹치고 보완한다. 홍상수의 전작들이 모두 다른 제목이지만 결국 하나의 상을 만드는 것과 마찬가지다.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옥희는 자신이 만든 영화에 대해 설명하며 이렇게 말한다. “많은 일들이 반복되면서 또 어떤 차이를 가지는 이 인생이란 게 뭔지 끝내 알 수는 없겠지만, 제 손으로 두 그림을 붙여놓고 보고 싶었습니다.”

배우 이선균, 정유미, 문성근은 각 에피소드를 돌고 돈다. 이름은 같지만 그들이 같은 인물인지 다른 인물인지는 애매하다. 보는 사람이 선택하기 나름이다.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아니라고 해도 영화를 보는 데 장애가 되진 않는다. 에피소드마다 등장하는 오프닝 크레딧에서 카메라는 배우의 이름을 한 번씩 차례로 비추는데, 마지막 옥희의 영화에선 이 같은 형식을 상징하듯 정유미, 이선균, 문성근, 그리고 다시 이선균, 정유미 하는 식으로 이름들이 돌아온다. 여기에 전작의 배우들인 김태우, 엄지원, 김상경, 고현정 등을 대입해도 얘기는 같을 것이다.

홍상수 감독은 올해 두 편의 영화를 내놨다. 지난 여름 <하하하>에 이어 겨울을 배경으로 한 <옥희의 영화>다. 지난해 옴니버스 영화 <어떤 방문>에 참여한 것을 제외하면 홍상수의 영화를 1년에 두 번 보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는 시사 후 가진 간담회에서 “이전보다 더 심했다. 이번엔 미리 준비한 게 거의 없었다”며 “최대한 악조건을 만들어 놨을 때 평소와 다른 게 나올 거라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악조건에는 스태프를 소규모로 꾸린 것도 포함된다. 이번 영화는 현장스태프가 홍 감독 포함, 5명이 전부였다. 촬영 회차는 총 13회, 제작비는 <하하하>의 절반 수준인 5000만원 정도. 영화 속 배경도 지방에서 서울로 옮겨왔다. 그에게는 또 다른 실험이었던 셈이다. 덕분에 영화는 한결 간결해졌다. 영화 속에서 독립영화 감독 진구는 “영화가 살아있는 무언가를 닮은 것이었으면 한다”고 말한다. 그의 영화는 계속 살아 움직이며, 어떤 ‘세계’의 틈을 넓히다 못해 다지고 있다. 16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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