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승태 사법 농단

양승태에 비판적인 판사, 학생운동 경력·사생활 전방위 조사

2018.01.22 22:55 입력 2018.01.23 09:38 수정

핵심 사안 ‘상고법원·대법관 제청’ 이견 내자 집중 감시

행정처, ‘비공식적 정보수집’ 문제 인식하고도 밀어붙여

사법행정위 구성 땐 성향 파악해 1~3순위 후보자 분류

<b>성향·평판 등 종합해 적색·청색·흑색 분류</b> 법원행정처가 2016년 3월 비밀리에 작성한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후보자 추천’ 문건. 판사 60여명의 출신 학교, 소속 학회, 성향, 법원 내 평판 및 친소 관계 등이 기록된 것으로 볼 때 행정처가 평소 판사들의 동태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성향·평판 등 종합해 적색·청색·흑색 분류 법원행정처가 2016년 3월 비밀리에 작성한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후보자 추천’ 문건. 판사 60여명의 출신 학교, 소속 학회, 성향, 법원 내 평판 및 친소 관계 등이 기록된 것으로 볼 때 행정처가 평소 판사들의 동태를 면밀하게 파악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판사 블랙리스트’ 의혹을 조사한 대법원 추가조사위원회(위원장 민중기 서울고법 부장판사)가 22일 공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양승태 대법원은 사법정책과 사법현안에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낸 법관들의 성향 등을 조직적으로 파악했다. 주로 진보 성향 법관 모임인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 소속 법관들이 그 대상이 됐다.

법원행정처가 일선 판사들에 관해 수집한 정보는 단순 프로필을 넘어 이념적 성향과 성격, 가족관계 등 광범위했다. 추가조사위는 “행정처가 사법행정권을 지나치게 활용해 개입한 것”이라고 평가했다.

■ 대법원 비판한 판사들 뒷조사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법원행정처는 대법원 역점 사업이던 ‘상고법원제’나 신임 대법관 제청에 비판하는 목소리를 낸 법관들을 집중적으로 뒷조사했다. 행정처는 2015년 8월 법원 내부 인터넷 게시판인 ‘코트넷’에 상고법원제를 반대하는 내용의 글을 올린 차모 판사의 성향을 파악하는 데 나섰다. 행정처 기획조정실은 ‘차 판사 게시글 관련 동향과 대응 방안’이라는 문건에 차 판사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원이라고 적시했다. 또 차 판사의 주장이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민변)의 입장과 유사하다는 점을 지적하며 “실제 차 판사는 민변 소속 변호사들과 친분이 있다”고 했다.

행정처는 차 판사가 이른바 ‘진보성향 주간지’ 시사IN에 상고법원제의 문제를 지적하는 칼럼을 게재한 뒤에도 동향 파악 문건을 작성하면서, 차 판사가 사법시험 공부 당시 대학에서 대자보를 쓰며 논쟁한 점을 거론했다. 행정처는 이를 근거로 차 판사에 대해 “비주류 활동가 성향”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차 판사가 존경하는 선배나 친한 선후배 명단을 취합해 관리할 필요가 있다”며 대응 방안을 적시했다.

코트넷 자유게시판에 대법원의 대법관 임명 제청 반대글 등을 수차례 게시한 송모 판사도 행정처의 ‘관심 대상’이 됐다. 행정처는 송 판사에 대해 “이슈 발생 시 주변 법관들을 선동하는 아웃사이더 비평가 기질이 있다”고 평했다. 행정처는 또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 당시 검사 경력을 들어 2015년 대법원의 박상옥 대법관 후보자 제청을 반대한 박모 판사의 동향을 수집하며 그의 학생운동 경력 등을 거론했다.

행정처는 “비공식적 정보 수집 사실이 드러날 경우 ‘법관 사찰’ ‘재판 개입’ 등 큰 반발이 예상된다”며 문제를 인식했지만, 이는 “철저한 보안 유지가 필요하다”는 명분으로만 작용했을 뿐이었다.

■ 판사회의·사법행정위에도 개입

행정처는 법관들의 수평적 논의 기구로 평가받는 판사회의 선거에 출마한 법관의 성향을 파악하기도 했다. 행정처가 2016년 3월 작성한 ‘서울중앙지법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 대응 방안’ 문건에 따르면, 행정처는 박모 판사가 “우리법연구회 등의 지지를 받고 단독판사회의 의장 경선에 출마할 예정”이라고 파악했다. 그러면서 박 판사가 당선될 시 “법원장 및 수석부장판사 등 사법행정라인과 대립할 가능성이 높다”며 당선을 저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행정처는 다른 판사가 당선되도록 적극 지원하고, 구체적인 선거공약을 발굴해 준다는 대응방안까지 마련했다.

양 당시 대법원장이 사법행정에 법관들의 참여를 이끈다는 취지로 만든 ‘사법행정위원회’를 구성할 때도 행정처는 위원으로 추천할 법관들의 성향 파악에 나섰다. 행정처는 ‘사법행정위원회 위원 후보자 검토’라는 문건에서 “사법행정위를 비판하는 ‘핵심그룹’의 악의적인 폄하 시도를 선제적으로 방어할 필요가 있다”며 후보자 추천 기준을 제시했다. 행정처는 “‘핵심그룹’과 유대관계에 있는 진보 성향 법관들의 모임”으로 평가한 우리법연구회와 인권법연구회에 후보자들이 속해 있는지를 파악하고, 1·2·3순위 후보자들을 각각 적색·청색·흑색으로 표시한 추천 명단을 만들었다. 명단에는 후보자별로 ‘우리법연구회 핵심그룹, 강성’ ‘기본적으로 보수’라는 등의 성향 평가와 가족관계 등도 기재됐다.

행정처는 이 같은 명단을 추천권자인 각 지역 고등법원장들에게 제공했다. 이에 대해 추가조사위는 “실질적으로 진보 성향을 가진 법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온건·보수 성향의 법관들이나 주류 법관들을 추천하고, 이른바 ‘강성’으로 평가된 법관들을 배제하려고 노력한 정황”이라고 지적했다.

■ 사법개혁 학술대회 ‘고립’ 시도

이규진 전 대법원 양형위원회 상임위원(56)이 사법제도 개혁 등을 논의하던 인권법연구회 소속 판사들의 동향 등을 수집해 행정처에 보고한 내용의 문건도 다수 확인됐다. 추가조사위는 지난해 3월 사법개혁을 주제로 열린 인권법연구회의 공동학술대회를 저지하려는 목적으로 행정처가 7건의 ‘대책문건’을 작성했다고 밝혔다. 추가조사위는 이 문건들이 임종헌 당시 행정처 차장(59)의 지시로 작성됐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대법원 진상조사위원회(위원장 이인복 전 대법관)는 2건의 문건을 밝히는 데 그쳤다. 이에 대해 추가조사위는 “이 전 상임위원이 행정처의 요청으로 추가 대책문건들의 존재를 함구한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행정처는 인권법연구회의 학술대회 개최가 확정된 뒤에는 단기·중기 방안으로 나눠 인권법연구회 제재 방안 등을 검토했다. 추가조사위는 “행정처가 인권법연구회 일반 회원들의 동요와 탈퇴 등을 유도하고, 공동학술대회의 고립화 분위기를 조성하려고 한 점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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