日 희생자 추모한 ‘수요시위’

2011.03.16 21:14 입력 2011.03.17 10:21 수정
김형규 기자

“죄가 밉지 사람이 밉나” 구호 대신 묵념으로

“묵념하겠습니다.”

16일 정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 주최로 961번째 ‘수요시위’가 열린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 평소 같으면 위안부 피해자들에 대한 일본 정부의 사과와 배상을 요구하는 구호가 울려퍼졌겠지만 이날은 달랐다. 묵념하자는 사회자의 말에 참석자 20여명은 눈을 감았다. 스피커에서 구슬픈 음악이 흘러나왔다. 한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하얀 손수건을 꺼내 눈물을 훔쳤다. 취재진의 카메라 셔터 소리만 크게 들렸다.

이날 시위는 일본 도호쿠 대지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의미에서 묵념으로 대체됐다. 피켓도 애도의 뜻을 표하기 위해 평소와 달리 검은색과 흰색만 사용해 나비 모양으로 만들었다. 피켓에는 ‘재일교포, 일본시민 모두 힘내세요!’라고 적혀 있었다.

16일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대지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16일 서울 중학동 주한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수요시위’에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이 일본 대지진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묵념을 하고 있다. | 김기남 기자 kknphoto@kyunghyang.com

침묵이 지나고 길원옥 할머니(84)가 무거운 표정으로 마이크를 잡았다. 길 할머니는 “너무나 엄청난 일이 벌어졌는데 무슨 말을 하겠느냐. 남은 사람들이 마음을 합쳐 빨리 힘내서 피해를 극복하고 일어나길 바란다”고 말했다. “그래도 일본이 밉지 않으냐”는 질문에 그는 “이 세상과 바꾼다 해도 내 상처는 없어지지 않는다. 죄는 미워도 사람은 밉지 않다”고 답했다.

시위에 참석하기 위해 불편한 몸을 이끌고 대구에서 올라왔다는 이용수 할머니(83)는 “일본인 여러분 힘내세요”라고 세 번 크게 외쳤다. 그는 “후손들을 생각해서라도 이제 사과와 배상 문제가 조속히 해결됐으면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미야기현에 거주하다 이번 지진 이후 연락이 끊긴 송신도 할머니(89)의 안부를 걱정하는 목소리도 나왔다. 이옥선 할머니(84)는 “송 할머니 혼자 일본에서 얼마나 외롭겠나. 하루라도 빨리 찾아줬으면 하는 마음에 나왔다”고 말했다. 윤미향 정대협 대표는 “자연 재앙으로 희생된 분들을 애도하는 마음은 모두 같을 것”이라고 했다.

1992년 1월 시작된 수요시위는 20년째 단 한 번도 중단되지 않았으며, 추모 모임으로 대체된 것은 1995년 일본 한신 대지진에 이어 이날이 두번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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