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 결정의 ‘논리적 문제점’

2014.12.21 22:21 입력 2014.12.21 22:41 수정
장은교 기자

(1) 추측으로 판단한 ‘주도세력’

(2) 실질적 위험이 내부 폭력?

(3) 형사재판 논리, 진행은 민사

헌법재판소가 지난 19일 통합진보당을 해산하며 내놓은 결정문은 스스로 세운 엄격한 기준에 못 미치는 빈약한 논리에 기초를 두고 있다는 평이 나온다. 일반 시민에게 ‘법 논리적으로 진보당이 해산될 수밖에 없구나’라는 공감을 이끌어내야 하는데 이에 못 미쳤다는 것이다. 헌재가 사상 초유의 정당해산심판에서 사실관계를 따지는 형사재판 같은 논리를 펴면서 실제 진행은 민사재판 방식으로 진행한 것도 이런 ‘빈약한 논리’가 나온 원인으로 작용했다.

헌재는 결정문 앞부분의 정당해산제도를 엄격하게 운영해야 할 필요성을 장황하게 기술했다. 헌재는 “유력한 진보적 야당이 등록취소돼 사라지고 말았던 불행한 과거를 알고 있다”면서 “정치적 입지가 불안한 소수파와 반대파의 우려를 해소”해 줘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정당해산을 “일종의 극약처방”이라면서 “정치적 비판자들을 탄압하기 위한 용도로 남용되는 일이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밝혔다. 헌재는 “의심스러울 때는 자유를 우선시”해야 한다고도 했다.

그러나 사실 판단에 들어가면 헌재가 공들여 밝힌 전제들은 희박해진다. 헌재는 북한식 사회주의를 따르는 ‘종북세력’이 진보당 주도세력이 됐으므로 진보당의 목적과 활동은 위헌적이고 구체적 위험성이 발현됐다고 봤다. 당원이 10만명인 진보당은 당비를 내는 당원만 3만명이 넘는다. 헌재 결정문에 이 중 누구를 왜 주도세력으로 볼 것인지에 대한 근거는 없다. 헌재는 과거 ‘주사파 대부’였다가 전향한 김영환씨의 진술을 주요 증거로 판시했다. 그러나 김씨는 법정에서 “이석기 의원 등 현재 진보당 간부들과 10년 넘게 연락을 한 적이 없다”면서 “지난 10여년간 이들의 생각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해서는 알지 못한다”고 했다. 재판관 8명은 김씨의 ‘추측’을 정당해산 근거로 그대로 인용한 셈이다.

구체적·실질적 위험성에 대한 판단도 마찬가지다. 헌재가 밝힌 구체적·실질적 위험의 기준은 ‘폭력·무력 사용’이었다. 결정문이 제시한 증거는 이석기 전 의원 내란음모 사건과 비례대표 부정경선, 중앙위원회 폭력 사건 등이다. 하지만 내란음모 사건은 유죄가 확정되지 않았다. 결국 비례대표 부정경선과 이를 둘러싼 당내 폭력 사건이 ‘정당을 해산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는 구체적이고 위험한 폭력성’의 근거가 된 셈이다. 헌재는 “이런 사건들이 유사 상황에서 반복될 가능성이 크다”고 했다. 그러나 왜 그런지는 설명하지 않았다.

이처럼 빈약한 논리는 헌재가 민사재판규칙을 선택했을 때부터 예견됐다. 정당해산심판은 재판진행 방식에 관한 규정이 없다. 헌재는 지난해 6월 국회에 “정당해산심판절차에 형사소송법을 준용하도록 명시해달라”며 헌재법 개정을 요청했다. “헌재가 직접 증거자료를 강제로 확보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으므로 형사소송법을 준용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이유 때문이다. 진보당 측 변호인단도 “정당해산은 사실상 정당에 대한 사형선고나 마찬가지이기 때문에 형사재판보다 더 엄밀한 증거입증이 필요하다”며 형사재판 방식을 요청했다. 헌재는 명확한 이유를 밝히지 않고 ‘재판관 협의’로 민사재판 방식을 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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