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검사 출신이 장악한 헌재…사회 다양성 대변 못하는 구조

2014.12.21 22:18 입력 2014.12.21 22:29 수정

학자들 “정당정치 위축 우려…재판관 자격 요건 바꿔야”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을 놓고 학자들은 설득력도, 정당성도 없는 판결이라고 입을 모았다. 헌법재판관의 보수·고위 법관, 검사 중심의 인적 구성도 큰 문제라고 했다. 헌재의 결정으로 종북 낙인찍기가 확산되고, 정당정치가 위축될 것이라는 우려도 내놨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 ‘정당해산’ 결정문에서 보여준 헌재의 보수성은 다양한 출신의 헌법재판관을 뽑아야 한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줬다. 9명 재판관 중 7명이 고위 판사, 2명이 고위 검사 출신이다. 애초에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대변할 수 없는 구조였다. 먼저 판검사 출신을 줄이고 노동·인권 분야에서 활동한 재야 변호사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해야 한다. 장기적으로는 관련법을 개정해 헌법재판관 임명 자격 요건부터 바꿔야 한다. 일본은 변호사 자격이 없는 법학교수, 행정부 공무원, 외교관들이 대법관으로 임명된다. 일본에서 대법관은 한국의 헌법재판관과 대법관 역할을 동시에 한다. 판검사들이 민형사 사건에서 쌓은 경험보다 인권 감수성이 더 중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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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호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재는 기본권의 ‘최후의 보루’라고 불린다. 하지만 한국은 대통령이 헌법재판관 임명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가 전체 9명 중 7~8명에 이른다. 표면적으로 대법원장 3명·국회 3명·대통령 3명 몫이지만, 대법원장 추천 몫도 국회 동의를 얻어 대통령이 임명한다. 국회 추천 몫도 여당 1명, 야당 1명, 여야 합의 1명이다. 헌법재판관 인적 구성상 헌재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고, 이런 구조에선 국민의 기본권과 소수자를 보호하고, 사회의 다양한 가치를 담아내기 어렵다. 독일처럼 모든 헌법재판관들을 국회로부터 3분의 2 이상 찬성을 받아 대통령이 임명하도록 해야 한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재의 판단은 이념적으로 양분화된 민감한 사안의 논쟁을 종식시킬 설득력과 정당성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헌재는 이번 판결로 이념 논쟁의 소용돌이에 스스로 휘말렸고, 헌재의 신뢰와 권위를 깎아내렸다. 헌재는 인권·민주주의를 다수 권력의 자의적 행사로부터 보호할 목적으로 설립된 기구인데, 이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 이번 판결은 논리적 설득력, 사법 절차가 갖춰야 할 엄정성을 잃었다. 헌재가 판결 초반에 밝힌 보편적 헌법원리를 적용하면 이번 사안은 증거불충분으로 기각됐어야 한다. 그러나 ‘남북 대치 상황’에 있다는 이유로 장황하게 설명한 보편적 법원칙을 무시하고 정치적·자의적으로 판단했다. ”

헌재 우회전 ‘빨간불’ 21일 헌법재판소 인근 서울 종로구 재동로터리에 헌재를 가리키는 표지판과 함께 붉은색 신호등이 켜져 있다.  이준헌 기자

헌재 우회전 ‘빨간불’ 21일 헌법재판소 인근 서울 종로구 재동로터리에 헌재를 가리키는 표지판과 함께 붉은색 신호등이 켜져 있다. 이준헌 기자

■한상희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헌재의 이번 판결은 헌법 해석의 틀을 제대로 따르지 않았다는 점에서 보수적인 판결이 아니라 ‘파쇼적인’ 판결이다. 벌써 조짐이 나타난다. 법무부와 경찰이 진보당 관련 집회를 못하게 선언했고 보수단체에서 진보당원들을 고발했다. 검찰은 수사에 있어 무한대의 재량권을 갖게 됐다. ‘발언의 외향이 북한과 같으면 일단 의심해야 하고, 의심한 결과 찾아봤더니 불온한 목적이 있더라’는 논리가 헌재에 의해 정당화돼 엄청난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시민들은 자기검열을 하게 된다. 헌재를 비판할 때 ‘나는 진보당원은 아니지만’, ‘이석기에 동조하는 것은 아니지만’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긴급조치 시대와 유사한 일이다. 공안의 눈으로 헌법을 판단한 결과다.”

■현재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객관적 증거에 기초한 사법적 판단을 해야 할 헌법재판소가 정치적 판결을 내렸다. 대법원에서 판결도 나지 않은 이석기 내란음모 사건을 판단의 주요 근거로 삼음으로써 결과적으로 내란음모 사건 재판에도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게 됐다. ‘사법의 정치화’는 정치 영역을 축소하고 사법관료 등 전문가의 영향력을 키울 것이다. 헌재의 보수적 편향은 민주주의 작동방식을 왜곡하고 한국 정당체제의 보수성을 더욱 강화한다. 헌재는 이번 판결을 통해 여러 형태의 정치적 결사가 제한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냈다. 가뜩이나 취약한 정당체제가 더 한쪽으로 쏠려 이념 지형을 위축시키고 민주주의 자체를 무너뜨릴 염려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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