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니스위원회 ‘헌재 해산 결정문’ 요청…‘국제적 비판’ 가능성

2014.12.21 22:21 입력 2014.12.21 22:41 수정

1999년 국제지침 “당원 개별행위 정당 책임 못 물어”

“헌재, 민주주의 보편성 외면한 채 분단 특수성 강조”

헌법재판소의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문이 베니스위원회의 평가를 받게 됐다.

헌재는 “강일원 재판관이 지난 11~13일 이탈리아 베니스에서 열린 101차 정기총회에 참석했을 때 전임 위원장인 독일 위원이 직접 영문 결정문을 요청한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베니스위원회가 헌재 결정문을 요청한 사실이 주목받자 헌재는 “강 재판관이 구두요청을 받은 것이고 공식요청은 아니다”라면서도 “베니스위원회에 자료를 제출할 경우 헌재를 통해 공식적으로 제출될 것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1999년 정당 규제와 해산에 엄격한 기준을 적용해야 한다는 내용의 지침을 발표한 베니스위원회는 지난 1년간 진행돼온 한국의 정당해산심판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세계적으로 정당해산심판 사례가 극히 드문 데다 지난 13일 강일원 헌법재판관이 아시아인 최초로 베니스위원회 헌법재판공동위원장에 선출되면서 진보당 해산심판에 대한 베니스위원회 내의 주목도는 더욱 높아졌다. 강 재판관은 지난 9월 서울에서 개최된 세계헌법재판회의에서 부키키오 베니스위원장과 함께 언론인터뷰에 나와 “정당해산심판과 관련해 베니스위원회 지침을 참고하고 세계 각국 재판관들과의 논의를 통해 실질적 도움을 받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강 재판관은 진보당 해산에 찬성하는 ‘인용’ 의견을 냈다.

헌법학자들 ‘통합진보당 해산’ 사전 토론 서경석·한상희·이호중 교수(왼쪽부터) 등 헌법학자들이 지난 9월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베니스위원회 기준에 비춰본다’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헌법학자들 ‘통합진보당 해산’ 사전 토론 서경석·한상희·이호중 교수(왼쪽부터) 등 헌법학자들이 지난 9월28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토론회에서 ‘통합진보당 해산 청구: 베니스위원회 기준에 비춰본다’를 주제로 토론을 벌이고 있다. 연합뉴스

헌재는 지난 19일 진보당 해산 결정 직후 선고 결과와 다수의견·소수의견 등을 요약한 영문 보도자료를 헌재 홈페이지에 게시했다. 베니스위원회가 1999년 발표한 ‘정당의 금지와 해산 및 유사 조치에 관한 지침’은 정당에 대한 규제는 최소한으로 이뤄져야 하고, 특히 정당해산과 같은 극단적 조치는 반드시 최후의 수단으로 적용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정당의 금지 또는 강제해산은 민주적 헌법질서를 전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의 사용을 주장하거나 폭력을 사용하고 이를 통해 헌법에 의해 보장되는 권리와 자유를 손상시키는 정당의 경우에만 정당화할 수 있다”(제3항)고 규정했다.

이어 “정당에 의해 권한을 부여받지 않은 구성원들의 개별적 행위에 대해 전체로서 정당에 대해 책임을 물어서는 안된다”(제4항)고 밝혔다. 제5항은 “정당의 금지 또는 해산의 사용은 극도로 자제돼야 하고, 덜 과격한 다른 조치로 그런 위험을 예방할 수 있는지 평가해야 한다”고 규정했고, 제6항은 “강제해산은 예외적인 성격을 가지는 것으로 구성원뿐 아니라 정당 자체가 위헌적 수단을 사용하거나 사용을 준비해 정치적 목적을 추구한다는 충분한 증거에 근거를 두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세계헌법재판회의 참석했던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헌법재판회의 제3차 개막총회에 참석해 지아니 부키키오 베니스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박한철 헌재소장(왼쪽)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세계헌법재판회의 참석했던 박 대통령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9월29일 서울 신라호텔에서 열린 세계헌법재판회의 제3차 개막총회에 참석해 지아니 부키키오 베니스위원회 위원장(오른쪽), 박한철 헌재소장(왼쪽)과 함께 입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이 지침을 감안하면 진보당 해산을 결정한 헌재의 다수의견은 베니스위원회로부터 비판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헌법학자들의 중론이다. 이석기 전 의원의 내란음모 사건, 일부 관계자들의 국가보안법 처벌 전력 등을 주요 근거로 해산을 결정했기 때문이다.

배재대 김종서 교수(헌법학)는 “베니스위원회 지침은 구속력은 없지만 세계인권선언처럼 보편성 있는 기준으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특히 정당해산 관련 지침은 중요하고 상식적인 기준으로 여겨진다”고 말했다. 김 교수는 “헌재는 베니스위원회 지침은 전혀 고려치 않고 분단 상황 등 특수성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면서 “민주주의라는 보편성을 기준으로 헌법재판을 했어야 할 헌재가 특수성을 강조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말했다.

■베니스위원회는

1990년 5월 동유럽 민주주의 신생국가들을 돕기 위해 만들어졌다. 공식 명칭은 ‘법을 통한 민주주의를 위한 유럽위원회’로 유럽평의회 자문기관이다. 유럽 47개국이 가입돼 있고 비유럽 국가도 12개국이 가입돼 있다. 한국도 정식 회원국이다. 강일원 헌법재판소 재판관이 위원장으로 선출된 헌법재판공동위원회는 베니스위원회 위원과 각국 헌재·대법원·유럽인권재판소·유럽연합(EU)사법재판소·미주인권재판소의 연락관 등으로 구성된 특별위원회로 베니스위원회와 헌재 사이의 협력관계를 조정하며 각국 헌재 판례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하는 일을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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