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민주주의 근간 흔드는 ‘8 대 1’ 헌재 체제

2014.12.21 22:27 입력 2014.12.22 00:08 수정

사법 엘리트 일색에 임명 때 대통령 권한 막강…‘정권 눈치’

정치적 다양성 반영 못해…인선제도 바꿔 ‘불균형’ 막아야

통합진보당 해산 결정 과정에서 드러난 헌법재판관들의 8 대 1 쏠림은 헌법재판소가 한국 사회의 다양한 목소리를 받아들이고 반영할 수 없는 구조라는 것을 여실히 드러냈다. 획일적이고 보수적인 재판관들의 면면이 헌재가 오히려 헌법의 근간인 다양성을 훼손하는 역설적 결과를 낳았다는 것이다.

헌재는 개인의 권리구제뿐 아니라 정치적 갈등을 조정하고 통합하는 ‘정치적 사법기관’이다. 따라서 다양한 생각과 정파의 이해가 헌재에 고르게 반영돼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5기 헌재는 이전 4기보다 더 획일화·보수화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박한철 헌재소장은 특수·공안을 거친 검사 출신이다. 과격한 보충의견을 낸 안창호 재판관 역시 검사 시절 공안 요직을 두루 거친 ‘공안통’이다. 체제유지에 중점을 두는 공안검사들에게 헌법의 기저인 관용이나 다양성에 대한 폭넓은 인식을 기대하기 쉽지 않다는 지적이 있다. 그 밖의 재판관 7명은 모두 고등법원 부장판사나 법원장을 지낸 정통 엘리트 법관들이다. 수도권의 한 부장판사도 “같은 판사 출신이라고 해도 출신과 삶의 경험 등이 다양하게 고려되지 않고 지나치게 동질화된 사람들로 구성돼 있는 게 문제”라고 말했다.

임지봉 서강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동소이한 보수적 성향을 지닌 재판관들로 구성된 헌재는 국민의 다양한 목소리를 담을 수 없는 구조”라고 밝혔다. 박상훈 후마니타스 대표는 “헌재가 사회적 갈등을 해결한 것이 아니라 이번 결정을 계기로 사람들이 헌재의 존재 의미에 대해 의심하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헌재 재판관 인선제도는 헌재가 권력의 눈치를 보게 하는 구조적 요인 중 하나다. 재판관 9명 중 대통령이 3명을 임명하고, 국회가 3명을 선출하고, 나머지 3명은 대법원장이 지명해 대통령이 임명한다. 대통령이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몫이 7~8명이나 되는 것이다. 임기는 6년으로 짧은 대신 연임이 허용되다 보니 소신 판결은 더 어려울 수 있다.

안 재판관은 재직 중인 지난 1월 검찰총장 후보검증 동의서를 제출한 것으로 밝혀져 헌재의 신뢰에 타격을 줬다. 헌재 안팎에서는 2017년 1월에 임기가 끝나는 박 소장의 연임이나 후임을 놓고도 여러 후문이 나온다.

이런 구성은 결정문 곳곳에서 발견되는 논리적 허약함에 불구하고 8 대 1로 쏠리는 결과로 나타났다. 헌법은 정당 해산 요건을 매우 엄격하게 규정했다. 그러나 정작 입증 과정은 그렇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헌재는 결정문에 정견의 다양성과 정당의 자유로운 설립과 활동이 ‘민주주의의 당연한 전제’라고 밝혔다. 그러나 결정 당일 바로 진보당 관련 집회가 금지됐고 진보당 당원 전체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고발됐다. 그리고 검찰은 즉각 수사에 착수했다. 헌재 결정이 국민 전체의 사상과 표현의 자유까지 심각하게 위축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헌재의 구성과 운영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이러한 ‘역설적 결정’은 계속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민병로 전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국회의 선출 몫을 늘리고 임기를 대폭 늘려 퇴임 후를 생각하지 않고 소신 판결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독일처럼 국회의원 3분의 2 동의를 얻어야 선출되도록 하는 방안도 있다. 이렇게 하면 소수파가 강력히 반대하는 극단적 성향을 가진 재판관은 선출되기 어렵다. 연령, 직역 등에서 과감하게 문턱을 낮추는 방법도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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