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교육학’ 석학 마이클 애플 교수 “균형 잡힌 역사는 공허한 구호 국정화는 군부독재 은폐 의도”

2015.10.26 23:01 입력 2015.10.26 23:11 수정
송현숙, 사진 김정근 기자

세계적인 교육과정 전문가이자 ‘실천교육학’의 석학인 마이클 애플 미국 위스콘신대 석좌교수(73·사진)가 한국의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해 “균형 잡힌 역사라는 것은 공허한 슬로건”이라며 “이를 빌미로 국정화를 추진하는 것은 과거 군부 시절을 은폐하려는 시도”라고 말했다. 애플 교수는 “민주주의에서 중요한 것은 민주주의를 이루기까지의 희생을 기억하는 것이고, 이런 기억 없이는 민주주의는 후퇴한다”며 “역사교과서 문제는 그래서 매우 중요한 문제”라고 덧붙였다.

5년간 역사·수학 교사로 일한 애플 교수는 교육학자가 된 후에는 꾸준히 교육을 정치적인 맥락 속에서 통합적으로 해석하려는 노력을 해 왔다. 그의 책 <교육과 이데올로기(Ideology and Curriculum)>는 지난 100년 동안 교육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세계적인 책 20권에 선정되기도 했다.

‘실천교육학’ 석학 마이클 애플 교수 “균형 잡힌 역사는 공허한 구호 국정화는 군부독재 은폐 의도”

1989년 처음 방한한 그는 당시 전교조 지지 발언으로 안기부의 감시와 억류를 당한 후 한국을 각별하게 생각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인 제자 10명이 한국과 미국에서 교수로 일하고 있고, 지난해엔 미국 위스콘신주의 세월호 추모 집회에서 손자와 함께 참석하기도 했다. 심포지엄 참석차 세번째 한국을 찾은 애플 교수를 지난 25일 경향신문사에서 만났다.

- 한국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도를 어떻게 생각하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잘못된 일이다. 다원화·다문화 사회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창의력도 꺾는 정책이다. 역사학자와 교사들도 의문을 표시하는 상황에서 현장에서도 외면받을 것이다. 대다수 한국인들이 ‘노’라고 답할 것이다.”

- 정부는 중립적이고 균형 잡힌 교과서를 강조한다.

“교육과정에서 중립이란 말은 신화일 뿐이다. 때와 상황에 따라 배제와 선택이 이뤄진다. 역사 자체도 균형적, 중립적일 수 없다. 보수세력은 중립과 균형을 강조하지만 비난을 회피하기 위한 것이고, 정치적 수사일 뿐이다. 군부 독재 시절 일들을 은폐하려는 의도가 깔려 있다고 본다. 미국에서 극보수주의자들이 많은 텍사스주도 비슷한 상황이 최근 벌어졌다. 한 흑인 고등학생이 인종차별 문제를 축소한 표현이 실린 교과서를 보여주자 화가 난 엄마가 페이스북에 올리고, 신문에 사연을 기고하면서 많은 교사들, 학부모, 학생들이 교과서 거부 운동을 벌였고, 결국 출판사의 사과와 수정 결의를 끌어냈다. 한국에서도 국정화 역풍이 불 수 있다.”

- 바람직한 교육은 어떤 것인가.

“교육현장에서 학생들은 세 가지를 배워야 한다. 첫번째는 사실이고, 두번째는 도서관에서 특정한 책을 찾는 방법 등과 같이 전문적으로 터득한 지식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가치다. 특히 학교에선 민주적인 가치를 가르쳐야 한다.”

- 민주적인 가치는 무엇인가.

“민주주의라는 것은 모든 사람들이 말할 권리가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고, 상호존중하는 자세다. 학생 스스로 생각하는 습관을 기르는 것이 교육에선 매우 중요한데, 이는 상호존중이 바탕이 되는 민주적인 환경에서 길러진다. 이 점에서 교육과정도 단순히 윗선에서 하달받은 것이 아니고, 학생들이 여러 가지 의견을 얘기하며 비판적 민주주의를 연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다른 사람을 존중하며 협력해서 일하는 비판적 민주주의를 기르지 못하면 국가적으로도 막대한 경제 손실로 이어진다.”

- 한국사회가 국정화 문제로 시끄럽다. 한국사회에 얘기하고 싶은 것은.

“세월호 참사는 외국인인 나에게도 충격이었다. 정부는 규제 완화나 페리의 문제로 치부하려 했지만, 이 사건으로 정부가 아이들을 무시하는 듯한 태도가 드러났다. 다른 사람에 대한 존중의 부재는 국정교과서 문제로도 연결된다. 국정화를 추진하며 정부가 지우고 싶어 하는 부분들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민주주의의 기본은 기억이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현재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했는지를 기억하는 것이다. 국정화가 추진되며 군부 독재 시절로부터 국민들을 존중하는 사회를 만들기까지 많은 희생이 필요했다는 사실을 한국인들이 망각하게 될까봐 우려스럽다. 이런 기억이 없다면 민주주의는 후퇴하는 것이다.”

추천기사

바로가기 링크 설명

화제의 추천 정보

    오늘의 인기 정보

      이 시각 포토 정보

      내 뉴스플리에 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