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대통령, 정책 입안·시행 때 소통·설득 기본 삼아야”

2010.02.23 17:56
글 최재영·홍진수 | 사진 정지윤 기자

통합을 위한 제언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

이명박 대통령 취임 2년을 맞아 ‘분열의 위기’와 ‘통합의 필요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 최근 대통령 직속으로 사회통합위원회가 출범한 것은 그만큼 이념·지역·계층 간 갈등과 대립이 심각함을 보여준다. 합리적 보수의 대표적 이론가로 꼽히는 박세일 서울대 국제대학원 교수(62·사진)를 만나 이명박 정부 2년의 공과와 심화된 사회 갈등의 원인과 해법에 대한 견해를 들었다. 박 교수는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경제와 성장, 국민통합과 복지라는 두 축으로 끌고 가야 하는데 전략적 측면에서 미흡한 점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이 대통령은 정책을 입안하고 시행할 때 소통과 설득을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며 “당면한 현안인 복지와 노동, 교육 문제를 개별 차원이 아닌 구조적 차원에서 접근해 풀어야 하고, 중요성에 대한 인식의 제고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지난 22일 서울 반포의 개인 연구소에서 진행됐다.

- 얼마 전 <창조적 세계화론>이란 책을 내고 대한민국의 21세기 지향점으로 선진화를 제시했습니다.

“이 대통령, 정책 입안·시행 때 소통·설득 기본 삼아야”

“대한민국은 산업화, 민주화를 거쳐 선진국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습니다. 선진국은 모방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국민이 선거를 통해 정부를 선택할 수 있는 절차적 민주주의는 이뤘지만 민주화와 자유화가 결합한 자유민주주의에는 이르지 못했습니다. 선택된 권력이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존중하고 보호하는 법치주의, 시민의 자율을 핵심으로 하는 자유민주주의, 공동체적 시민의식 등을 바탕으로 한 사회가 선진사회입니다.”

- 선진화는 이명박 정부가 말하는 일류국가와 일맥상통하는 것 같습니다. 지난 2년을 평가해주십시오.

“이명박 정부는 산업화와 선진화의 중간쯤에 있습니다. 선진화의 지향성은 분명하지만 산업화적 측면도 많습니다. 이 대통령의 리더십과 관계가 있습니다. 대기업 CEO형이고, 프로젝트형이며 성과를 중시합니다. CEO 리더십은 압축 성장 시기에 유효합니다. 설득보다는 본인이 앞장을 서는 것이죠. 그게 장점이자 단점일 수 있는데, 장점을 극대화하고 단점을 최소화하도록 주변과 참모들이 도와야 합니다. 모든 정책을 짤 때 설득과 소통은 기본입니다. 이 대통령은 이런 면에서 아직 부족합니다. 산업화 경험을 살려 성과도 있지만, 고용이나 복지 쪽으로 넘어가면 아직도 문제를 본격적으로 풀려고 하는 열의가 부족해요. 문제의 심각성과 구조적 접근도 부족합니다.”

- 이명박 정부 출범 후 우리 사회의 갈등이 본격적으로 부상한 계기가 미국산 쇠고기 전면 수입이었습니다. 이후 4대강 사업, 세종시 수정 등 이 대통령의 핵심과제는 늘 갈등을 초래했습니다.

“갈등이 증폭된 것은 맞습니다. 그러면 왜 갈등이 많아졌고, 사회통합이 잘 안될까요. 답은 간단합니다. 사회통합, 국민통합을 위해 노력하는 사람은 적고 갈등을 키우는 사람만 많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이 앞장서고, 이념주의자, 일부 지식인과 언론이 그렇게 하고 있습니다. 사실 국민 사이의 이념 거리는 멀지 않습니다. 정치권에서 갈등을 키우는 겁니다. 권력투쟁입니다. 또 모든 정책 이슈를 정치화하고 정파화하고 있어요. 4대강의 경우도 어떻게 하는 것이 치산치수이고, 환경에 도움이 되는지 전문가들이 토론하는 과정보다 한쪽은 무조건 반대, 또 다른 쪽은 무조건 찬성하는 식으로 나왔습니다. 저는 이 대통령이 4대강 사업을 들고 나올 때 각계 전문가들로 하여금 검토시킬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그런 프로세스가 없더군요.”

- 세종시 수정을 두고 여당에서조차 논란이 끊이지 않습니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는 세종시 수정에 반대하고 있습니다.

“박 전 대표는 말과 생각, 행동이 일치하는 드문 정치인입니다. 그러나 세종시 문제에 관한 한 잘못하고 있습니다. 2005년 한나라당이 정치적 이익을 염두에 두고 세종시 원안에 찬성한 것은 당에 있던 사람들은 다 압니다. 세종시는 잘못 박힌 대못을 빼는 것입니다. 다만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하는 과정에서 대통령에게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 대통령은 먼저 ‘표 때문에 대선 때 거짓 공약한 셈이 됐다’고 진솔한 사과를 한 뒤 수정을 추진해야 했습니다.”(당시 한나라당 비례대표 의원이자 정책위의장이었던 박 교수는 당이 세종시 원안에 찬성하자 이에 반대하며 의원직을 사퇴했다)

- 이명박 정부가 대기업·부자·수도권 중심이란 지적이 있습니다.

“그런 주장은 정파적으로 공격하기 위한 언술이자, 레토릭(수사)입니다. 어느 나라 지도자도 국가경영을 그렇게 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대통령이 상징성의 측면에서, 그리고 실제적으로 소홀히 한 부분이 있습니다. 정부 출범 초기 이 대통령이 청와대에 국가경쟁력강화위원회를 만들 때 사회통합위원회도 함께 만들어야 했습니다. 경제성장과 국민통합이란 두 축으로 끌고 가야 했던 것이죠. 한쪽에선 성장, 효율 극대화를 하면서 동시에 사회통합, 공동체 문제, 복지도 같이 가야 했습니다. 또 대통령 취임하고 기업인들을 만나기 전에 노동조합 대표들을 만나야 했습니다. 그랬으면 이후 달랐을 겁니다.”

- 이명박 정부는 복지나 분배, 형평 쪽보다는 성장이나 시장을 앞세웁니다.

“성장과 복지는 대립적 가치나 선택이 아닙니다. 성장을 외면하는 진보는 가짜이고, 복지를 외면하는 보수도 가짜입니다. 저는 성장 7, 복지 3의 비율이 맞다고 봅니다. 이 정부를 두고 성장에 너무 치중하고 복지는 소홀히 한다고 하는데 저는 성장도, 복지도 더 잘해야 한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복지도 더 잘하라는 것은 정부가 실업 문제나 저소득층 축소에 관심이 없다는 얘기가 아닙니다. 정부가 복지 프로그램 등을 시행하고 있지만 임기응변적인 것이 좀 많지 않으냐 하는 것이고, 깊이 있고 구조적·체계적인 대응이 약하다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다층적·시스템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복지와 노동, 교육을 함께 봐야 합니다. 이 삼각망을 잘 만들어 성장 친화적이면서도 사회 위험을 최소화하는 쪽으로 가야 합니다. 이명박 정부는 그런 면에서 더 노력해야 합니다.”

- 사회 갈등이 격화된 배경에는 이명박 정부의 ‘노무현 정부 뒤집기’ ‘잃어버린 10년 되찾기’도 있는 것 같습니다.

“지난 10년에서 잃어버린 것도, 얻은 것도 많습니다.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기본가치가 많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나 압축 고도성장, 압축 민주화를 하면서 충분히 제기되지 않았던 우리 사회의 눌려 있던 문제, 미뤄왔던 문제를 제기한 것은 잘했습니다. 이 정부는 진보 정부의 잘잘못과 함께 보수의 잘잘못을 정리해야 합니다. 시대가치를 정립하고 큰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데 사회에 대한 철학과 가치, 이런 면이 이 정부는 제일 약합니다.”

- 청와대와 여당의 관계를 거론하며 민주주의 후퇴, 정치 위기를 거론하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여당에서조차 청와대가 일방적으로 끌고가고 당이 거수기처럼 끌려간다는 비판이 나옵니다.

“그것은 현상입니다. 민주주의 위기, 정치 위기의 본질은 정당의 후진성에 있습니다. 근대 정당에는 국민을 대표하고 정책개발을 하는 ‘대표정책 기능’과 선거에 참여하고 이기면 권력을 나눠서 경영하는 ‘선거 권력기능’이 있는데 우리는 후자만 있고, 전자가 없습니다. 그러다 보니 리더가 누구냐, 공천권을 누가 갖느냐가 제일 중요합니다. 소수 지도자에 의해 정치가 사유화되고 있습니다. 정당의 기반인 국민도, 진성당원도 없습니다. 정당이 정책도 없고, 국민도 없는 정치인의 사적 클럽인 거죠. 국민 입장에선 주어진 메뉴에서 선택하는 것일 뿐입니다. 그러니 국가경영은 없고, 권력투쟁만 있습니다. 대선이 끝나자마자 모두가 다시 권력투쟁에 나서는 겁니다. 이렇게 가면 민주주의가 형해화합니다. 개혁적 보수, 합리적 진보가 많아져야 합니다. 양측이 손잡을 정치적 공간을 만들어야 합니다. 이런 선진화 세력이 정당을 결성해 원내 과반을 점해야 정치발전과 안정을 이룰 수 있습니다.”

- 이 대통령이야말로 그런 문제를 잘 알고 있다고 봅니다. 그러면서도 이 대통령은 청와대 뜻을 충실히 반영하는 여당 지도부를 늘 원합니다.

“한나라당도 그렇고 청와대도 그렇고 이 같은 구조적 문제에 정면 대응해 본격적으로 풀려고 하지 않고 있습니다. 현재 정치구조가 여야가 서로를 설득할 수 있는 구조가 아닙니다. 당내에서조차 자유투표가 쉽지 않은 상황이지 않습니까. 그러니 자기와 뜻이 같은 사람만 고르는 겁니다. 물론 이 구조적 문제는 대통령이 앞장서 푸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이명박 정부 들어 남북관계도 대립이 깊어질 뿐 가시적인 진전이 없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도 그렇고 이명박 정부도 그렇고 다들 북한을 어떻게 다룰까 하는 대북정책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북한을 하드하게 다룰 것이냐, 소프트하게 다룰 것이냐 하는 과거 패러다임에서 더 나아가 ‘적극적 통일’을 목표로 해야 합니다. 분단을 통일로 연결시키는 노력과 준비가 필요하고 거국적인 통일전략을 수립해야 합니다.”

박세일 교수는

서울대 법대를 거쳐 미국 코넬대에서 경제발전론·법경제학·노동경제학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실련 정책위의장과 경제정의연구소 이사장을 지냈고 1995년 김영삼 정부 시절 청와대 정책기획수석, 사회복지수석으로 이른바 ‘세계화 개혁’을 주도했다. 2004년 17대 국회 때 한나라당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영입돼 1년간 활동했다. 국민통합과 국가발전의 이념으로 개인의 존엄과 창의와 자유를 기본으로 하되, 공동체적 가치와 연대를 중시하는 ‘공동체 자유주의’를 주장하고 있다. 2006년 보수 성향의 싱크탱크인 ‘한반도선진화재단’을 창립, 대한민국 선진화와 통일을 위한 비전과 정책의 연구·개발에 힘을 쏟고 있다. 박 교수의 선진화론과 공동체 자유주의는 이명박 정부 탄생의 사상적 바탕을 제공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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