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두환 추징금, 청와대의 침묵… 언론 입장 표명 요청에도 이틀째 함구

2013.07.17 22:51

검찰 수사 언급 부적절 입장

청와대는 ‘전두환 전 대통령 숨긴 재산 찾아나서기’에 대해 전날에 이어 17일에도 침묵을 지켰다. 언론의 입장 표명 요청에 청와대 누구도 입을 열지 않았다.

검찰 수사는 지난달 박근혜 대통령의 발언 이후 급가속을 밟는 분위기다. 박 대통령은 지난달 10일 국무회의에서 “전직 대통령 추징금 문제는 10년 이상 쌓여온 일인데 역대 정부는 해결하지 못하고 이제야 새 정부가 의지를 갖고 해결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청와대의 묵언(默言)은 검찰 수사에 청와대가 왈가왈부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태도다. 어떤 식이든 반응을 내놓더라도 정치적 시비에 휘말릴 수 있다는 판단도 작용한 듯하다.

박 대통령에게 전 전 대통령은 악연이다. 박 대통령은 전 전 대통령이 박정희 전 대통령 집권 때인 1976년 청와대 경호실 작전차장보로 발탁되면서 알게 됐다. 박 대통령의 퍼스트레이디 시절이다.

전두환 추징금, 청와대의 침묵… 언론 입장 표명 요청에도 이틀째 함구

▲ 5공, 출범하며 ‘박정희 폄하’
박 대통령도 기나긴 은둔에
당시 부친 추모행사도 못해

박 대통령이 1979년 10·26 사태로 청와대 생활을 마감할 때만 해도 두 사람 관계가 나쁠 건 없었다. 10·26 직후 전두환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은 청와대를 나가는 박 대통령에게 6억원을 건넸다. 박 대통령은 2007년 대선 한나라당 후보 경선 과정에서 “전 전 대통령의 심부름을 왔다는 분이 만나자고 해서 청와대 비서실로 갔더니 ‘박 전 대통령이 쓰시다 남은 돈이다. 생계비로 쓰라’고 해 감사하게 받고 나왔다”고 했다.

악연은 1980년 전두환 5공 정권이 출범하면서 시작됐다. 전 전 대통령은 ‘박정희 시대’를 부정·부패 정권으로 폄하하고 차별화를 시도했다. 쿠데타로 정권을 잡아 정통성이 없었던 그가 ‘박정희 때리기’로 민심을 얻으려 한 것이다. 헌법에서 ‘5·16 혁명정신’을 삭제하고 주요 정책을 폐지했다.

박 대통령은 은둔에 들어갔다. 박 대통령은 2007년 펴낸 자서전 <절망은 나를 단련시키고 희망은 나를 움직인다>에서 “청와대를 나온 이후 정권 차원에서 아버지에 대한 매도가 계속됐다. 우리 3남매(근혜·근령·지만)는 부모님의 기일을 포함한 어떤 공식적인 행사도 엄두를 낼 수 없는 상황에 처했다”고 적었다. 박 대통령은 1987년에야 ‘아버지 추도식’을 열 수 있었다. 노태우 정권이 들어선 1988년 박정희·육영수 기념사업회를 발족시키고 이듬해에는 10주기 행사를 치렀다.

과거 아버지에게 충성했던 인사들이 앞장서 격하시킨 데 대한 배신감도 남아 있다. 박 대통령은 1981년 3월 일기에서 “자기를 은혜로이 돌보았지만 언제 어떻게 돌변하여 총을 겨눌지, 욕을 할지 모르는 사람들이 가득한 도시”라고 썼다. 29세 때다.

‘전두환 비리’를 파헤친 5공 청문회가 열린 1989년은 “감사하고도 잊혀질 수 없는 해”로 기록했을 정도다. 박 대통령은 12월30일 일기에서 “수년간 맺혔던 한(恨)을 풀었다고 표현해도 좋을 한 해였다. 80년대는 마음의 고통과 아픔이 얼마나 크고 깊은지 두 번 다시 돌아보기도 싫은 소름끼치는 연대로 느껴진다”고 적었다.

박 대통령은 ‘어쩔 수 없는’ 경우를 제외하면 전 전 대통령을 만나지 않았다. 2004년 8월 한나라당 대표 취임 후 인사차 서울 연희동 전 전 대통령 자택을 방문한 뒤 더 이상 그를 찾지 않았다. 지난해 대선 후보로 선출된 뒤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을 예방하고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자택도 찾았지만 연희동은 외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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