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의는 퇴장 ‘이게 나라다’

2017.03.10 22:05 입력 2017.03.11 07:22 수정

박근혜 파면…헌재, 전원일치로 헌정 사상 첫 대통령 탄핵

“최순실 사익 추구 지속적으로 지원, 중대한 헌법·법률 위배”

시민들 “주권재민 확인, 민주주의 도약”…대선 5월9일 유력

헌법재판소가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br />사진은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단상을 내려오는 모습이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헌법재판소가 10일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사진은 박 전 대통령이 지난해 11월29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최순실 국정농단’에 대한 3차 대국민담화를 발표한 뒤 단상을 내려오는 모습이다. 서성일 기자 centing@kyunghyang.com

“헌법은 대통령을 포함한 모든 국가기관의 존립 근거이고, 국민은 그러한 헌법을 만들어내는 힘의 원천입니다.”

10일 오전 11시. 이정미 헌법재판소장 권한대행은 ‘2016헌나1 대통령(박근혜) 탄핵’ 심판 선고 요지를 읽기 직전 대통령 위에 헌법, 그 위에 국민이 있음을 상기시켰다. 역사의 법정은 21분 후 재판관 8인 전원의 이름으로 “국민의 신임을 배반했다”며 박근혜 대통령의 파면을 선고했다. ‘주권재민’을 명시한 헌법 제1조 2항(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을 선고의 마중물과 끝으로 삼은 것이다. 대한민국 헌정사 최초의 ‘대통령 탄핵’은 이렇게 이뤄졌다. 4년의 난정(亂政)도 마감됐다.

헌재의 질타는 매섭고 명료했다. “피청구인(박근혜)은 최서원(최순실)의 사익 추구를 지원했다”며 “헌법·법률 위배 행위가 재임기간 중 지속적으로 이뤄졌다”고 밝혔다.

헌재는 ‘40년 지기’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방치·조력·은폐한 공모자로 대통령을 규정했다. 김기춘·조윤선·안종범을 필두로 30명의 부역(기소)자들이 법치와 인권을 유린하도록 방치한 ‘무능’과 ‘안일’도 적시했다. 스스로 국민 앞에 약속한 진상규명, 수사, 청와대 압수수색을 모두 거부한 언행도 낱낱이 드러냈다. 숱한 위헌·위법 행위를 저지르고도 주권자를 끝까지 무시하고 불통으로 일관한 대통령에게 ‘8 대 0’ 전원일치 퇴장 명령을 내렸다. 헌재 결정문이 “파면으로써 얻는 헌법 수호의 이익이 ‘압도적으로’ 크다”며 강조어법을 사용한 것은 이례적이다.

대한민국 헌정사에는 헌법을 역주행한 ‘최고 권력들’이 있었다. 인권을 짓밟은 유신도, 광주 거리를 피로 물들인 전두환의 폭정도 오늘의 잣대에선 예외 없는 탄핵감이다. 그러나 그 동토의 권력들은 ‘저항’을 받고도 권좌를 지켰다. 헌법과 교과서에 쓰인 민주주의와 표현의 자유가 제대로, 끝까지 작동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권자가 대통령을 이긴 ‘박근혜 파면’은 대반전이다. 시민의 결기가 법전 속에 잠자던 민주주의를 거리로 끌어냈다. 시민의 끈기가 멈칫거리는 국회와 검찰을 압박해 대통령을 법의 심판대에 세웠다. 시민의 인내와 성숙이 100일 넘게 광장에서 1587만개의 ‘평화 촛불’을 밝혔다. 1987년 민주화 이후 30년간 성장한 한국 민주주의는 새로운 성취를 이루며 또 한 단계 도약했다. 오늘의 승리를 이끈 네 글자는 헌법재판관들도 출발점으로 삼은 ‘주권재민’이다.

대통령 탄핵은 가보지 않은 길이다. 어둠과 빛이 섞이는 여명의 세상처럼, 혼란과 설렘이 교차한다. “리셋 대한민국”을 말하는 사람이 있고, 거세게 반발하는 이들이 보이고, “광장에서 말하던 세상이 오기는 어려울 것”이라며 낙관을 경계하는 시선도 섞인다.

다시 출발하는 공동체 앞엔 그늘과 과제가 드리운다. 외교·경제·민생은 바람 앞의 등불이다. 60일(5월9일) 이내 새 권력을 잉태할 대선 과정에도 풍파가 거셀 것이다. 지도에 없는 그 길 위에서 대한민국은 적폐를 버리고, 상처를 보듬고, 변화의 이정표를 분명히 해야 한다. ‘박근혜 파면’은 미완의 혁명이다. 겨우내 지켜온 광장에서 불의를 몰아낸 시민 앞에 새로운 도전이 기다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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