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선거개입은 민주주의 훼손” 대학생들 잇따라 규탄성명

2013.06.24 22:15 입력 2013.06.24 23:44 수정
남지원·이서화·이성희·이효상 기자

“이념·정치 문제 아니다” 비운동권 학생회도 한목소리

서울 이어 경남 확산… 학생들 대자보·트위터로 동참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에 대한 진상규명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대학가에서 터져나오고 있다. 서울대 총학생회가 지난 16일 성명서를 발표하기로 결정했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대학생들의 진상규명 요구 움직임이 시작됐고 곧이어 이화여대와 경희대 등 서울 지역 대학 총학생회가 시국선언을 내놓았다. 지방 소재 대학 총학생회도 시국선언에 동참했다. 24일에는 부산대 등 부산·경남 지역 4개 대학 총학생회가 기자회견을 열고 “권력기관에 의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우려한다”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반값 등록금 등 학내 이슈에 대해 목소리를 내왔던 대학생들이 오랜만에 정치적 이슈에 문제 제기를 한 것이다. 대학생들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이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정의나 민주주의라는 가치가 훼손된 것으로 본다”고 말한다.

정치적 성향이 뚜렷하지 않은 ‘비운동권’ 학생회나 일반 학생들까지도 비판의 목소리를 냈다는 사실은 대학생들이 이번 사건을 이념 문제로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준다. 가장 먼저 성명서를 발표한 서울대 총학생회도 비운동권 성향으로 분류된다.

서울대 이은호 부총학생회장(24)은 “비운동권이면 학생 복지에만 신경 쓰라는 목소리도 있지만, 사회적 목소리도 낼 때는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대학생들이 보기에 이번 사건은 민주주의에 대한 명백한 침해라고 생각해 성명을 내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일반 학생들도 같은 입장이다. 세종대 정보통신공학과 3학년 최경식씨(20)는 “국정원 사건을 덮으려는 사람들이 이 문제를 ‘정치적’이라고 포장하지만 이번 사건은 정치적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기본에 관한 일”이라며 “정치에 휩쓸리지 말자는 모토로 나선 비운동권 총학생회들이 움직이는 이유도 이 문제가 정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총학생회 명의로 입장을 발표한 학교의 학생들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특정 정치세력에 휘둘리거나 이용당하지 않고 국정원 사건의 진상규명을 요구해야 한다”는 의견을 모으기도 했다. 서울대에 재학 중인 한 학생은 “국정원 사태에 대한 철저한 조사를 하자는 학생들의 의견이 박근혜 대통령 하야나 국정원 폐지를 주장하는 정치세력에 이용당해서는 안된다”고 말했다.

총학생회나 정치단체의 이름을 걸지 않고 개인 자격으로 입장표명에 나선 학생들도 많다. 서강대 정치외교학과 학생 4명은 지난 17일 개인 명의로 학교에 대자보를 붙였다. 후배들과 함께 이 대자보를 붙인 정민석씨(26)는 “적어도 대통령은 선거를 통해 국민이 직접 뽑아야 하고, 선거 과정에서는 국가기관의 개입이 없어야 한다는 게 우리 사회의 기본인데 이 사건으로 기본적인 민주주의의 규칙이 파괴됐다는 데 분노했다”며 “우리는 아무런 정치단체에도 가입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성신여대 학생 119명도 지난 22일 트위터를 통해 ‘평학생 시국선언문’을 발표했다. 이들은 “민주주의는 정치색에 관계없이 국민 모두가 지켜야 할 소중한 가치”라고 밝혔다.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대학생들이 갑자기 진보적 이슈를 지지해서 이런 현상이 생긴 게 아니라 국정원과 같은 국가기관이 선거에 개입했다는 그 자체가 공정하지 않다고 생각해서 국정원 규탄 목소리가 잇따르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 교수는 “2030세대에게는 진보·보수를 넘어서는 정치성이 있다. 자유민주적 가치와 공정한 룰이 최대 관심사인 세대이기 때문에 공정하지 않은 일을 한 국가기관을 규탄하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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