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개입으로 ‘정보기관’ 본분 망각… 개혁 요구 자초한 국정원

2013.06.24 22:34 입력 2013.06.24 23:41 수정

대선개입 혐의로 위기 몰리자 ‘NLL 카드’로 반전 시도

“국민을 분열시키는 정권안보기관으로 추락” 비난 일어

국가정보원이 24일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전격 공개함으로써 국내 정치에 노골적으로 개입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정보·보안을 다루는 국가의 정보기관으로서의 소명을 저버린 채 정권을 위한 기관으로 전락했다는 것이다.

국정원이 지난 대선 과정에서 정치에 개입한 흔적이 드러난 상황에서 정보기관이 정쟁에 스스로 뛰어든 것이어서 국정원 개혁을 요구하는 여론이 증폭될 것으로 보인다.

국가정보원이 24일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공개했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란 원훈이 새겨진 비석 뒤로 청사가 보인다. | 연합뉴스

국가정보원이 24일 ‘2007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국회 정보위원들에게 공개했다. ‘자유와 진리를 향한 무명의 헌신’이란 원훈이 새겨진 비석 뒤로 청사가 보인다. | 연합뉴스

국정원은 국가안보와 국민생존권을 수호하는 보루이며 이를 위해 정치적 중립을 지키는 것을 존립 근거로 한다. 그러나 남북 간 가장 민감한 내용을 담은 기밀 문서인 정상회담 대화 내용을 ‘일반문서’로 전환시켜 공개한 것은 정보를 다루는 기관으로서 본연의 임무를 저버린 것이라는 비판이 나온다.

국정원의 이 같은 행태는 정치적 의도가 다분하다. 국정원은 지난 대선에서 대북심리전을 구실로 삼아 인터넷 여론 조작에 나서며 대선에 개입했다. 정보기관 존립 이유를 뒤흔든 헌정질서 파괴이자 국기문란 행위라는 야당과 시민사회 등의 비판에 직면했다. 검찰 수사로 원세훈 전 원장이 기소되면서 국내 정치 개입을 근본적으로 방지하기 위해 국정원의 개혁이 시급하다는 여론도 커졌다. 대학가 등에선 시국선언도 이어졌다.

국정원은 이런 상황을 탈피하기 위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민감한 북한 이슈를 꺼내 분위기 전환을 시도한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이 과정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통치 행위인 정상회담 기록물을 일방적으로 세상에 내놓았다.

정치개입으로 ‘정보기관’ 본분 망각… 개혁 요구 자초한 국정원

국정원의 정보 공개 방침도 오락가락했다. 새누리당이 지난해 10월 정상회담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발언을 문제 삼으며 회의록 공개를 요구했을 때 국정원이 “국가 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거부한 것과 정면으로 배치된다.

원 전 원장은 ‘국회에서의 증언·감정 등에 관한 법’ 제4조(공무상 비밀에 관한 증언·서류의 제출) 1항과 국가정보원법 제13조(국회에서의 증언) 2항에서 규정한 ‘군사·외교·대북관계의 국가기밀 발표로 국가안위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면 거부할 수 있다’는 근거를 제시했다.

국정원은 이날 기밀해제 관련 심의위원회를 열고 남재준 원장의 재가를 거쳐 기존 2급 기밀인 대화록 전문을 일반 문서로 해제했다. 정권이 바뀌면서 정보 공개에 대한 해석을 제멋대로 한 셈이다. 국정원이 “업무상 취득한 내용은 어떠한 경우에도 누설하지 않는다”며 보안에 목숨을 걸면서도 남 원장은 국가 기밀 정보를 사실상 사유화한 것이란 지적도 나온다. 민주당은 “대통령기록물에 대한 비밀해제 권한이 국정원장에게 없다”면서 “국정원이 초법적 행태를 벌인 것”이라고 밝혔다.

국정원은 이제 국내 정치 전면에 나섰다. 대선 개입 사건의 국정조사를 통한 진상규명 여론이 커지는 상황에서 자체 보관 중인 정상회담 회의록을 꺼내 맞불작전을 편 것이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국정원이 국민 위에 군림하는 곳인지, 국민을 분열시키는 곳인지 알 수 없다”며 “국정원 임무가 국가안보에서 정권안보로 추락한 것”이라고 말했다. 김연철 인제대 교수는 “정보를 국내 정치용으로 활용하는 국정원은 이제 정보를 다루는 부서라고 할 수 없다”면서 “중앙정보부 시절과 다를 게 무엇인가. 국정원 개혁 필요성이 더 확연해졌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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