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회정신 퇴색, 입법부 무력화… 불통의 FTA

2011.11.22 22:03 입력 2011.11.22 23:50 수정

결국 날치기로 끝났다.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동의안이 22일 한나라당의 기습 강행처리로 국회에서 통과됐다. 여당 지도부는 예산 의원총회를 연다고 연막작전을 펴면서 실력 저지를 선언했던 야당의 ‘허’를 찔렀다. 하지만 대화·타협의 의회주의 정신이 파국을 맞았고, FTA로 인한 피해보전책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날치기 후유증은 커질 것으로 전망된다.

■ 전례없는 연막·기습 작전

날치기는 기습적이었지만, 치밀했다. 홍준표 대표(57)는 22일을 ‘D-데이’로 정하고, 전날 밤 황우여 원내대표(64)와의 비공개 회동에서 결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두 사람은 다른 최고위원들에게도 ‘보안’을 유지했다. 실제 대학 특강을 위해 이날 대구·경북 지방을 찾은 원희룡 최고위원(47)은 경향신문과의 통화에서 “스마트폰을 보고 알았다”고 말했고, 한 최고위원은 “의총장에 와서 오늘 통과시키자는 것을 알았다”고 했다.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장인 남경필 최고위원(46)은 “오전에 여야 협상파들을 만나서 물리적 충돌을 하지 말자고 했는데, 그분들에게 좀 미안하다”고 말했다. 다만 박근혜 전 대표(59)에겐 전날 밤에 사전 통보된 것으로 전해졌다.

이재오 전 특임장관(66)은 자신의 저서 팬사인회를 위해 대구를 찾았다가 일정을 중도에 마무리한 채 귀경했지만, 표결에 참여하지 못했다. 의총인 줄 알고 참석했던 의원들은 의총장에서 “본회의장으로 이동하자”는 황 원내대표의 말을 듣고 날치기를 짐작했다고 한다.

■ 원내대표 책임론 제기

여야 원내사령탑은 모두 날치기 후폭풍에 휩싸였다. 당장 황우여 원내대표의 ‘사퇴설’이 제기된다. ‘합의처리’를 강조했던 그가 날치기의 도의적 책임을 이유로 사의를 표시할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황 원내대표는 이날 비준안이 처리된 후 기자회견을 자청했다가 돌연 취소했다. 황 원내대표가 하루이틀 여론을 지켜보며 거취를 결정하기 위해 회견을 연기한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민주당 김진표 원내대표(64)는 당내 사퇴 요구에 직면했다. 김 원내대표는 이날 오전 11시 황 원내대표와 단독 면담을 갖고 최종협상 결렬 선언을 들었으나, 손학규 대표(64)에게 보고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황 원내대표로부터 최후통첩까지 받았고, 한나라당이 본회의장 바로 맞은편으로 의총장을 옮겼는데도 전혀 대비를 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안이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 원내대표는 그간 한·미 FTA에 대해 오락가락하는 태도를 보여 야당의 협상력을 약화시킨 주범이라는 말을 들었던 터다. 당내에서는 김 원내대표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지도력에 손상을 입었다는 말이 나온다.

■ 정당정치 불신과 후유증 커져

후유증은 적지 않다. 한·미 FTA 비준안과 14개 이행법안은 해당 상임위 심의 절차를 거치지 않은 채 본회의로 직행했다. 4대강 예산이 포함된 지난해 예산안 날치기, 미디어법 개정안에 이어 현 여권은 쟁점사안에 부딪힐 때마다 강행처리를 반복해왔다. 집권 여당이 스스로 입법권을 무력화시키는 행동을 반복해온 것이다. ‘안철수 현상’에서 드러난 정당정치에 대한 불신도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피해보전책도 미비하다. 한·미 FTA가 발효되면 우리 기업의 경쟁력이 떨어지는 식음료나 제약 업종, 금융업 등이 타격 입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마지막까지 논쟁이 됐던 투자자-국가소송제도는 경제주권을 침해하는 독소조항이 될 수 있지만, 대비책이 없다. FTA의 직간접적 피해를 두고 제대로 된 조사도 진행되지 않았다. 한·미 FTA 비준안의 처리 여부를 놓고 국내외 시선이 국회로 쏠린 와중에 급작스럽게 날치기가 진행됨으로써 국제적 망신도 자초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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