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재계 이해 따라 휘둘린 5년10개월… 노동자 분신·번역오류 등 오점 ‘얼룩’

2011.11.22 21:39 입력 2011.11.23 00:50 수정

노무현 전 대통령이 2006년 신년연설을 통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추진하겠다고 발표한 지 5년10개월 만에 한·미 FTA가 국회에서 한나라당의 날치기로 비준됐다. 협정은 처음부터 국민적 합의에 바탕을 두지 않은 채 재계와 정치적 이해에 따라 추진되기 시작했다. 이는 노동자 분신, 미국산 쇠고기 수입 파문, 협정문 번역 오류 등 숱한 오점으로 얼룩졌다.

임기 초 노 전 대통령은 협정 추진에 유보적이었다. 노 전 대통령이 2003년 5월 첫 방미 때 미국 측에 “농촌문제가 해결되고 개방할 준비가 되기 전까지는 FTA를 체결할 수 없다”고 했다. 이후 노 전 대통령은 한·미 재계의 로비와, 2005년 말 당시 통상교섭본부장 김현종씨(52)의 설득에 FTA 추진 쪽으로 돌아섰다.

노 전 대통령을 지지했던 노동계와 진보진영은 FTA가 충분한 토론 없이 급하게 추진된 것을 비판했지만 협상은 일사천리로 진행돼 10개월 만에 타결됐다.

여당이던 열린우리당은 ‘교역국이 살 길은 개방뿐’이라며 FTA 지지를 당론으로 정했다. 한나라당도 자신들이 지지하는 FTA를 환영했다. 협상타결 하루 전날 노동자 허세욱씨(54)는 분신했다.

미국은 FTA 자체보다 쇠고기 협상에 관심이 있었기에 협정 비준에 적극적이지 않았다. 노 전 대통령은 ‘모든 부위와 모든 연령대’ 미국산 쇠고기의 개방을 약속했지만, 2007년 12월 대선에서 완패하자 이 일을 차기 정부로 미뤘다. 이명박 대통령은 2008년 4월 첫 방미 전까지 미국산 쇠고기 개방 문제를 매듭짓겠다고 미국 측에 약속했고, 이를 실행에 옮겼다. 국민의 건강권을 도외시했다는 비판을 받으며 ‘촛불시위’가 일어났다.

민주당은 우왕좌왕했다. 야당이 된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가 미국 측 요청을 받아들여 FTA 재협상에 응하자 FTA 반대 입장을 당론으로 정했다. 민주당은 이명박 정부 들어와 재협상을 하면서 이익의 균형이 깨졌기 때문에 FTA에 반대하는 입장을 취해왔다. 하지만 미국식 신자유주의적 세계화의 정체를 그때는 왜 몰랐느냐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정부는 협상 진행 상황을 국회에 충실히 보고하지 않았다. 협상 내용을 잘 모르던 국회는 협상 추진 과정을 문제 삼았지만 정부는 ‘국익’을 이유로 사후보고만 했다. 의원들이 협상문 공개를 요구하자 외교통상부는 수백 페이지에 달하는 원문 복사는 거부하고 필요한 부분만 손으로 적어가라고 했다.

권영길 민주노동당 원내대표(70) 등 야당 의원들은 17대 국회 때 통상협상 과정을 국회에 보고하고 공청회 개최 등 여론수렴을 의무화한 ‘통상절차법’을 발의했지만 한나라당 반발로 상임위조차 넘지 못했다. 남경필 외교통상통일위원장(46)은 지난달 11일 뒤늦게 “의회가 정부의 통상교섭을 전혀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 통상절차법을 도입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는 야당의 반발 무마용이라고 의심받았다.

견제받지 않은 비민주적 통상협상의 폐단을 상징적으로 드러낸 단면이 협정문 번역 오류이다. 한·유럽연합(EU) FTA 협정문에서 수백건의 오류가 발견된 데 이어 2008년 10월 국회에 제출한 한·미 FTA 협정문 한글판 번역문에도 296건이나 오류가 나왔다. 잘못된 번역이 166건, 잘못된 맞춤법 9건, 번역 누락 65건, 번역 첨가 18건, 일관성 결여 25건, 고유명사 표기 오류 13건 등이다. 정부 스스로 비준동의안을 철회한 뒤 다시 내는 소동이 벌어졌다. ‘내용은 알고나 협상한 것이냐’는 비아냥까지 들어야 했다.

김현종씨는 통상교섭본부장에서 물러난 지 1년도 되지 않은 2009년 3월 삼성전자 해외법무담당 사장으로 취직했고, 연말까지 일할 예정이다. FTA 득을 가장 많이 보는 대기업에 취직한 셈이 돼 논란을 낳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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