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하라” 안내방송만 믿은 학생들… 결국 탈출 못했다

2014.04.16 23:06 입력 2014.04.17 01:04 수정

선실 3층 아래 피해 커… 상황 ‘오판’ 가능성

16일 오전 진도 앞바다에서 침몰한 여객선 세월호의 사망·실종자 286명은 대부분 선체 아래쪽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것으로 추정된다. 순식간에 선체가 기울고 물이 차는 급박한 상황에서 승무원들의 잘못된 초기 대응이 참사를 키운 것으로 보인다.

당장 “승객들에게 선실에서 대기하라”고 지시한 것부터 선체 아래쪽에 있던 탑승자들의 탈출을 힘들게 한 원인으로 지목됐다. 사고 직후 인명 구조의 갈림길인 ‘골든타임 30분’을 놓쳤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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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생 상당수 선실에서 구명조끼 입은 채 잔류
좁은 출구·복잡한 구조·순식간 침수도 화 키워
당시 빠른 물살… 바다 뛰어들었다 쓸려갔을 수도

평화롭게 제주도로 향하던 6825t 규모의 초대형 여객선 세월호는 ‘쾅’ 하는 소리와 함께 순식간에 왼쪽으로 기울었다. 생존자들은 불과 10초가량의 짧은 시간에 일어난 일이라고 전했다. 곧 선체의 어느 쪽이 뚫려 물이 차올랐고 전기도 끊겼다. 배가 기울면서 몸을 움직이거나 대피 방향을 잡기 힘든 상황이 닥친 것이다. 292명의 희생자를 냈던 1993년 서해훼리호 사고 때도 선체는 10초도 걸리지 않고 기울며 가라앉기 시작했다.

세월호는 6층이 갑판이며 3~5층은 선실, 3층 아래로는 식당·매점·오락실 등이 있다. 갑판이나 갑판과 가까운 곳에 있던 탑승자들은 비교적 빠져나오기 용이했지만, 객실이나 아래쪽에 있던 탑승자들은 밖으로 나오기가 더 어려운 상황에 내몰린 셈이다. 사고가 발생한 시간은 오전 9시 이전으로 아침식사를 하거나 식사 후 선실이나 배 아래쪽 매점·오락실 등에서 휴식을 취하는 탑승자들이 많았던 것으로 보인다. 일부 생존자들은 “식당과 매점, 오락실에 수십명이 몰려 있는 모습을 봤는데 대부분 빠져나오지 못한 것 같다”고 전했다. 상대적으로 후미에 있던 탑승자들이 빠져나오기 힘들었다는 전언도 나온다.

먼저 선사 측의 초기 대응이 집중적으로 도마에 오르고 있다. “밖으로 나가지 말고 현재 위치에서 대기하라”는 방송을 내보내 30분가량 대피하지 않고 선실 등에서 대기하도록 해 피해를 키웠다는 것이다. 안산 단원고 학생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동영상을 통해 학생들이 선실 내에서 구명조끼를 착용한 채 가만히 대기하고 있던 모습이 확인됐다. 학생들은 45도가량 기울어진 선체에서 사물함 아래 바닥에 위태롭게 앉거나 누워 있었으며, 한 학생은 누군가와 휴대폰 통화를 하고 있었다.

단원고 2학년 손정아양은 “안내방송에서 침착하게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고 지시해서 방송을 믿고 선실에서 기다렸다”면서 “그 말만 믿고 끝까지 기다린 애들은 못 나왔고 나와 친구들은 침몰할 것 같아서 기어 나왔다. 그래서 살았다”고 말했다. 뒤늦게 한꺼번에 좁은 출입문 쪽으로 몰리다 뒤쪽에 줄서 있던 승객들은 빠져나오지 못했다는 증언도 나온다.

당장 선장이 사고 상황을 정확히 파악하지 못하고 수습이 가능한 것으로 오판했을 수 있다. 서해지방해양경찰청 관계자는 “선장의 고유 권한으로, 선내 질서 유지에 필요하다고 판단할 때 승객들의 퇴선이나 대기명령을 할 수 있다”면서 “비상 상황에서 선장이 순간적인 판단을 통해 이런 (대기)명령을 내린 것 같은데 결과적으로 많은 승객의 목숨을 앗아가는 결과로 이어졌다”며 안타까워했다. 해경은 선장을 상대로 ‘왜 30분 대기명령을 내렸는지’를 집중 조사하고 있다.

지체된 대피는 뒤늦은 ‘탈출’마저 더 어렵게 했을 수 있다. 가뜩이나 선박 사고 후 배 아래에서 갑판으로 빠져나오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공길영 한국해양대 항해시스템공학부 교수는 “충격에 의해 승객들은 일종의 공황상태에 빠졌을 것이며 특히 어린 학생들이라 더 우왕좌왕했을 수 있다”면서 “빨리 갑판으로 나가야 하지만 출입구를 위쪽으로 밀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라면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백점기 부산대 조선해양공학과 교수는 “선실 문을 열어도 물이 들어와 빠져나오지 못할 수 있다”면서 “시간상으로도 자고 있거나 잠에서 깬 지 얼마 되지 않아 신속히 대피하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영모 한국해양수산연수원 교수는 “여객선의 통로가 굉장히 좁기 때문에 특정 출입구가 침수되면 그 안에 갇혀 있는 사람들이 빠져나갈 수 있는 통로가 많지 않고 복잡한 구조 때문에 출입구를 찾기가 더욱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해양 사고 안전 매뉴얼이 제대로 지켜졌는지에도 물음표가 달린다. 최초 사고 신고도 승무원이 아닌 단원고 학생의 연락을 받은 가족이 한 것으로 추정되는 상황이다. 공 교수는 “완전히 침몰될 때까지 2시간 이상 시간이 있었으므로 대부분 구조될 것으로 봤는데 생각보다 훨씬 피해가 컸다”면서 “혼란스러운 상태에서 승무원들이 정확한 대피 지시를 했는지 확인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사고 현장의 빠른 물살까지 구조작업을 힘들게 해 피해를 키웠다. 이날 진도 앞바다는 한 달 중 조류가 가장 거센 시기로 시속 8~9㎞에 이르러 어민들도 조업을 피할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구조대는 몇 차례 잠수부를 동원해 수색에 나섰지만 강한 물살 때문에 실패하고 조난 신고 후 8시간이 지난 오후 5시쯤에서야 해군 해난구조대가 투입됐다.

실종자 중에는 바다에 뛰어들었다가 조류에 떠밀려간 이들도 있을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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