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노의 촛불

청와대를 포위한 ‘인간띠’…‘절제된 분노’ 보여줬다

2016.11.27 22:33 입력 2016.11.28 00:48 수정

광화문광장 150만·지방 주요 도시 40만 ‘촛불 함성’

시민 20만명 “퇴진하라” 청와대 향해 세 갈래 행진

광장 못 나온 시민들은 차량 경적·소등 행사 동참도

<b>서울 150만명 운집에도…연행 ‘0’건</b> 26일 제5차 촛불집회에서 처음으로 행진이 허용된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모인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서울 150만명 운집에도…연행 ‘0’건 26일 제5차 촛불집회에서 처음으로 행진이 허용된 서울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에 모인 시민들이 박근혜 대통령 퇴진을 요구하고 있다. 이준헌 기자 ifwedont@kyunghyang.com

지난 26일 열린 ‘박근혜 대통령 퇴진’ 제5차 촛불집회에는 전국 각지에서 190만명(주최 측 추산)이 운집했다. 검찰 수사를 ‘사상누각’으로 폄훼한 채 꿈쩍하지 않은 박 대통령에 시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했음을 보여준다. 현장에 나오지 못한 시민들도 집과 일터에서 촛불을 켜며 마음을 모았다. 수십만명의 시민들은 최초로 청와대 주변을 ‘포위’하는 행진을 했다. 시민들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는 구호를 외치며 평화로운 분위기를 유지했다.

■거리에서도, 집 안에서도 촛불

이날 서울 광화문광장 일대에는 주최 측 추산 150만명이 모였다. 춥고 궂은 날씨에도 불구하고 지난 12일 역대 최대 집회 인원(100만명)을 넘어섰다. 서울뿐만 아니라 국토 최서남단 흑산도를 비롯해 광주와 부산, 대구, 춘천 등 지방 주요 도시에서도 40여만명이 촛불을 들었다. 대구에서는 2000년대 들어 가장 많은 5만5000명이 모여 “박근혜 퇴진”을 요구했다. 강원 춘천에서는 “촛불은 바람 불면 꺼진다”고 폄훼한 김진태 새누리당 의원의 사무실 앞에서 시민들이 ‘꺼지지 않는 촛불’을 보여줬다.

개인 사정으로 집회에 참석하지 못한 시민들도 집과 일터에서 촛불을 밝히며 “박 대통령 퇴진”을 외치는 광장의 목소리에 힘을 보탰다. 경기 군포에서 빵집을 운영하는 고재영씨(47)는 이날 가게를 비울 수 없어 집회에는 참석하지 못했다. 대신 가게 출입문 앞에 양초를 켰다. 또 자신의 집 베란다에 ‘국민의 명령이다, 박근혜는 퇴진하라’는 문구가 담긴 현수막을 걸었다. 고씨는 “자영업을 하다보니 집회에 나갈 수는 없지만 집회에 참가한 시민들과 마음은 함께한다는 뜻을 담았다”고 말했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는 집에서 촛불을 켰다는 글과 인증샷이 속속 올라왔다. 양초가 없어 전자 촛불을 이용하거나 작은 전구를 촛불 모양으로 만들어 자신의 집 창문에 붙인 이들도 있다.

■청와대 인근 200m 행진

서울에서는 본집회에 앞서 오후 4시부터 대규모 행진이 시작됐다. 시민들은 세종로사거리를 출발해 청운효자동주민센터 앞, 정부서울청사 창성동 별관, 삼청로 세움아트스페이스 앞 등 3개 방향으로 이동했다. 청와대로부터 청운효자동주민센터는 서쪽으로 약 200m, 창성동 별관은 남쪽으로 약 460m, 세움아트스페이스는 동쪽으로 약 400m 떨어진 곳이다. 시민들은 동·남·서 방향으로 ‘인간띠’를 만들어 청와대를 포위했다.

시민들은 눈발이 날리는 날씨에도 불구하고 일부는 우의를 입고 우산을 든 채 “박근혜를 구속하라” “이제는 항복하라” 등을 외쳤다. 청와대가 가까워지자 “여기서 소리를 지르면 박 대통령에게까지 들린다고 한다. 온 우주의 기운을 모아 외치자”며 함성을 질렀다.

법원이 이들 지역에 대해 행진을 허용한 한계시간인 오후 5시30분이 되자 시민들은 6시부터 열리는 본집회에 참가하기 위해 광화문광장으로 돌아갔다. 일부 시민들이 남아 집회를 했지만 경찰과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경찰에 연행된 시민도 없었다.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

오후 8시 촛불로 일렁이던 광화문광장이 순간 암흑으로 변하는 대장관이 펼쳐졌다. 시민들이 어두운 권력자들에 대한 저항의 의미에서 ‘1분 소등’ 퍼포먼스를 진행한 것이다. 시민들은 불이 꺼진 상태에서 “박 대통령 퇴진”을 외쳤다. 집회에 참가하지 못한 시민들도 소등 행사에 참여했다. 집에서 1분 소등에 동참한 김모씨(30)는 “김장을 해서 집회에 참석하지 못했지만 마음을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서울 마포에 있는 식당 주인은 자신의 SNS에 불을 끈 가게 사진과 함께 “손님들께 양해를 구했다”는 글을 올렸다. 집회 현장 주변에선 1분 동안 차량들이 경적을 울리기도 했다. 주최 측은 차량 운전자들에겐 소등 대신 경적을 울려달라고 요구했다. 광화문광장 일대에 모인 시민들은 1분이 지나자 일제히 다시 촛불을 밝혔다. 시민들은 “어둠은 빛을 이길 수 없다”고 외쳤다.

안진걸 참여연대 공동사무처장은 “제2의 ‘87년 6월항쟁’이라는 표현도 부족할 만큼 큰 항쟁”이라며 “시민들이 민간독재에 대한 엄청난 분노에도 불구하고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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