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시민 분열시키고 당심 잃고 … 정치생명 벼랑에

2011.08.24 19:03 입력 2011.08.24 22:10 수정

서울시 “오 시장 거취 하루 이틀 뒤 밝힐 것”

오세훈 서울시장(50)이 백척간두에 섰다. 야당은 물론 여권 내 비난과 반대를 무릅쓰고 추진한 24일 무상급식 반대 주민투표가 투표율(33.3%) 미달로 무산됐기 때문이다. 2012년 대선 불출마, 투표율 미달 시 시장직 사퇴 등 잇단 승부수를 던졌지만 부정적 여론을 되돌리지는 못했다. 합리적 보수 이미지, 서울시장 재선 경력을 바탕으로 여권의 대선 유력주자로 꼽혔던 오 시장이 최대 정치적 위기를 맞게 됐다.

오 시장이 정치적 승부수를 던진 것은 처음이 아니다. 한나라당 초선 의원 시절이던 2004년 1월 이른바 ‘오세훈 법’으로 명명된 정치개혁 관련 3법(정당법·공직선거법·정치자금법) 개정을 주도했다. 이 법안의 반대파를 설득하기 위해 17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했다. 서울 강남을에서 재선이 유력했지만 자신을 버리는 모양새였다. 이는 2006년 지방선거에서 서울시장으로 당선되는 밑거름이 됐다. 오 시장이 주민투표와 시장직을 연계한 것도 당시의 파괴력을 염두에 둔 것이 아니냐는 분석이 한나라당에서는 이어졌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4일 오후 8시30분 서울시청 선거상황실에서 주민투표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연 뒤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24일 오후 8시30분 서울시청 선거상황실에서 주민투표 결과에 대한 기자회견을 연 뒤 머리를 숙여 인사하고 있다. | 정지윤 기자

하지만 이번 주민투표는 2004년과 다르다는 평가가 더 많다. 오 시장이 명분도 실리도 잃었다는 게 중론이다. 우선 정책문제인 무상급식을 정치문제로 이슈화해 불필요한 사회적 갈등을 초래했다는 책임론이 커지고 있다. 강남·강북의 투표율 차이는 대한민국에 ‘강남민국’과 ‘강북민국’이 존재하며, ‘잘사는 사람’과 ‘서민’의 세상을 바라보는 눈이 다름을 확인시켰다. 서울의 분열은 향후 시정에도 적잖은 부담과 후유증으로 남을 수밖에 없다.

주민투표 결과에 서울시장직을 건 것을 두고는 시민을 상대로 ‘협박정치’를 했다는 비난이 팽배하다. 야권과 진보진영 시민단체에선 “투표 결과가 나오지도 않은 주민투표 선거운동 중에 시장직 사퇴의사를 표명하는 것은, 사실상 시민들의 투표에 영향을 미치겠다는 것”이라며 “주요 정책 사안에 대한 지역 주민의 뜻을 묻는다는 주민투표의 취지는 사라져버리게 했다”고 지적했다. 또 개함도 못한 주민투표를 위해 혈세 182억원이 낭비됐고, 향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치르기 위해선 300억원이 더 필요해졌다.

실리도 얻지 못했다. 우선 여권 내 인심을 잃었다. 주민투표를 추진하고 시장직 진퇴를 거는 등 중대한 정치 행위를 ‘독단적’으로 결단했다. 결과적으로 당을 어렵게 한 것이다. 실제 청와대와 홍준표 대표 등이 나서 시장직과 주민투표 연계를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다. 유승민 최고위원(53)은 “오 시장이 한나라당을 늪에 밀어넣고 있다”고 했고, 한 핵심 당직자는 “자기만 생각하는 오세훈은 제명시켜야 한다”고 반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서울시 이종현 대변인은 투표가 무산된 24일 브리핑을 통해 “시장직 사퇴와 관련해서는 하루 이틀 뒤 밝히겠다”고 했다. 하지만 벌써 오 시장 사퇴 시점을 놓고도 당내 분란이 일고 있다. 오 시장이 10월1일 이전에 사퇴하면 보궐선거는 10월26일 재·보선 때 치러지고, 그 이후에 사퇴하면 내년 4월 총선과 함께 실시된다. 홍준표 대표 등 지도부는 선거 패배 등을 우려해 오 시장의 사퇴 시기를 미루려 하지만, 서울 지역구 의원들은 총선에 미칠 부정적 여론을 우려해 즉각 사퇴를 원하고 있다.

결국 이런 상황들을 종합하면 오 시장은 주민투표로 정국 전면에 섰을지언정, 제대로 수습을 못했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정치컨설팅 회사 ‘조원씨앤아이’는 정국 보고서인 ‘폴링포인트’에서 “2012년 선거에는 물가와 고용, 사회복지에 대한 민심의 요구가 더욱 높아질 것으로 보인다”면서 “오세훈 시장이 일으킨 무상급식 주민투표의 가장 큰 함정은 이러한 민심의 흐름에 따라 민심을 얻으려고 하지 않고, 자신의 주장대로 민심을 바꾸려고 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다만 친이계 등 여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정치적으로 실패한 게 아니라는 반론도 제기된다. 오 시장이 보수 가치를 위해 결단하는 모습을 통해 ‘보수의 아이콘’으로 서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것이다. 여당의 어정쩡한 태도와 민주당의 불참 운동에도 불구하고 20%가 넘는 투표율을 기록했다는 점에서 오 시장의 경쟁력이 입증된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당 관계자는 “2017년 대선 때에는 과도한 복지정책으로 국가의 재정 건전성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 이때 복지 포퓰리즘을 걱정했던 오 시장이 주자로 부각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정치권 일각에선 오 시장이 한나라당이 아닌, 제3의 보수정당 대선 후보로 나설 것이라는 관측까지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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