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마다 사선 “눈물도 말랐어요”

2007.08.29 18:48

[아프간 인질 석방]날마다 사선 “눈물도 말랐어요”

아버지는 아직도 꿈만 같다. 그저 살아서 돌아오는 아들, 딸이 고맙기만 하다. 잃어버린 자식을 다시 얻은 기분이다. 아들 걱정, 딸 걱정에 살아도 산 것 같지 않던 41일간의 고통도 하룻밤의 꿈같이 여겨질 뿐이다.

피랍 41일 만에 ‘죽음의 선’을 넘어온 서명화(29·여)·경석(27)씨 남매의 아버지 서정배씨(57)는 28일 밤 오랜만에 편히 잠을 잤다. 서씨는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라며 기쁨을 감추지 못했다.

돌아보면 죽음을 넘나드는 고통의 시간이었다. 외신보도 하나에 억장이 무너지고, 가슴이 떨리고, 자식 생각에 눈물나고, 그러면서도 희망에 목을 매는 순간의 연속이었다. 서씨는 지난달 20일 밤 11시쯤 뉴스를 통해 남매의 피랍소식을 알게 됐다.

“정말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지는 심정이었어요. 너무 놀라서 아무 생각도 들지 않더군요.”

전북 익산에서 중장비 사업을 해온 서씨는 생업을 제쳐놓고 경기도 분당 친척집으로 달려왔다. 이날부터 서씨 부부의 사선을 넘나드는 고통의 줄타기가 시작됐다.

가족사무실이 차려진 서울 서초동 한민족복지재단의 마룻바닥에서 새우잠을 청해가며 외신보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식사도 하는 둥 마는 둥 했다. 인근 식당에서 배달된 도시락과 김밥으로 겨우 때웠지만 잘 넘어갈 리 없었다.

살해위협 속에 협상 마감시한이 임박할 때는 말 그대로 피가 말랐다. 잠 못 이루는 날이 이어졌다. 피로가 쌓이면서 몸상태도 엉망이 됐지만 무장단체에 억류돼 있는 자식들을 생각하면 잠시도 편히 있을 수 없었다.

피랍 1주일째인 지난달 25일 배형규 목사의 살해소식이 전해졌다. 가슴이 쿵 내려앉는 충격이었다. 온 몸에 힘이 빠지고, 부들부들 떨렸다. ‘인질 8명 석방설’이 들려오던 와중에 전해진 살해소식이었기에 충격은 클 수밖에 없었다.

“‘우리 자식도 죽을지 모르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때의 절망감은 정말 말로 표현 못할 겁니다.”

이후 전해져온 심성민씨 살해소식은 혹시나 하던 기대마저 무너뜨렸다.

‘다음번에 우리 아들이 잘못 되면 어떡하나’ 하는 생각만으로도 아버지의 가슴은 천갈래 만갈래로 찢어졌다.

협상이 장기화됐다. 서씨에겐 남북정상회담 성사 소식도 반갑지 않았다. 21명의 생명이 세상의 관심에서 멀어져 잘못되지나 않을까 하는 두려움이 앞섰다. 몸도, 마음도 지쳐갈 무렵 김경자·김지나씨가 풀려난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꺼져가던 불꽃이 확 되살아나는 듯했다.

서씨는 “두 사람이 풀려난다는 소식을 들은 순간 우리 딸, 우리 아들도 살아돌아올 수 있겠구나 하는 희망이 솟구쳤다. 그때부터 다시 힘이 났다”고 당시의 흥분을 전했다.

그리고 전해진 인질들의 석방소식. 이제 무사히 돌아올 남매를 따뜻하게 안아주는 일만 남았다.

“아이들 얼굴도 만지고, 안아주고 그래야지요. 제대로 먹지도 못했을 텐데. 경석이는 고기를 좋아해요. 삼겹살도 잘 먹고. 명화는 이것저것 가리지 않고. 두 달 동안 일도 못했는데 이제부터 돈도 벌어야지요.”

자식들과 만날 순간만을 고대하는 아버지는 더디게 가는 시간이 원망스러운 듯했다.

〈성남|임지선기자 vision@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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