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질극 탈레반 득과 실

2007.08.29 01:15

한국인 납치 사태는 탈레반이 아프가니스탄 정부에 대한 협상력을 높일 수 있는 기회가 됐다. 비록 목표였던 수감자 석방은 이루지 못했지만, 정부측과 협상 테이블에 마주앉는 등 발언권을 키웠다. 그러나 무고한 외국인을 납치, 살해한 것에 대해선 탈레반을 지지하던 현지 주민들 사이에서도 비난 여론이 적지 않다는 점은 부담이다.

탈레반은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 원리주의 수니파 무장단체다. 순수한 이슬람 국가를 건설한다는 목표 아래 모인 회교 근본주의 학생 2만5000여명이 펜 대신 총을 들었다. 탈레반은 결성 2년여 만인 1996년 수도 카불을 점령, 정권을 장악했다.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 ‘샤리아’에 입각한 이슬람 원리주의의 실현을 시도했다. 그 과정에서 각종 인권침해가 빚어졌다. ‘우상금지’ 율법을 내세워 군대를 동원해 바미안 석불 등 아프간 내 불교 유적들을 부수는 행위를 저지르기도 했다.

2001년 9·11테러 발생 이후 조지 부시 미국 대통령은 아프간을 침공해 탈레반을 권좌에서 몰아냈다. 한때 카불을 장악했던 실세였지만, 9·11테러를 계기로 일개 테러단체로 전락한 셈이다.

이후 탈레반 세력은 파키스탄 접경 산악지역에 은신하면서 세력회복에 나섰다. 아프간 남부와 동부에서는 과거의 세력을 회복했다. 한국인들이 납치된 남부 가즈니 지역도 탈레반이 장악하고 있는 곳이다.

탈레반은 이곳을 거점으로 외국인 납치를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인질을 풀어주는 조건으로 원하는 바를 요구하는 등 외국인 납치를 대정부 협상의 지렛대로 활용하는 전략이다. 탈레반은 지난 3월 이탈리아 기자를 납치, 수감자 5명 석방이라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이번 사태도 탈레반의 입지를 넓히는 데 적지 않은 도움이 됐다. 아프간 정부는 테러 단체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게 철칙이었다.

하지만 탈레반은 아프간 정부뿐만 아니라 외국 정부인 한국까지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였다. 대변인을 통해 세계 유수의 언론과 접촉하면서 탈레반의 존재와 입장을 전 세계에 선전하는 기회도 누렸다.

그러나 일부 아프간 주민들은 23명이나 되는 ‘손님’을 납치해 2명을 살해한 것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을 보내고 있다. 미국의 아프간 전쟁이 아직 끝나지 않은 가운데 민심 확보는 탈레반이 재기하는 데 필수 요건이다. 당초 원하던 수감자 석방 목표가 달성되지 않았는데도 피랍자들을 석방하기로 한 데도 현지 여론이 일정 부분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최희진·김다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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