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방대가 ‘이면합의’ 는 없었나

2007.08.28 23:58

아프가니스탄에서 탈레반에 납치된 한국인 19명을 석방시키기까지 정부가 탈레반에 반대급부로 제공키로 한 석방 조건에 지대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천호선 청와대 대변인은 28일 브리핑에서 석방 합의 소식을 전하면서 “아프가니스탄에 파병 중인 한국군을 연내 철군하고 선교활동을 중단한다는 조건으로 납치단체와 19명의 석방에 합의했다”고 밝혔다.

탈레반의 협상 대표인 물라 나스룰라도 한국정부가 인질 전원 석방 조건으로 연내 철군과 민간인들의 8월내 철수, 향후 기독교 선교단 파송 금지 등 3개항을 약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양측의 발표가 국민들에게 액면 그대로 받아들여지기는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정부가 발표한 석방 조건에는 그동안 탈레반의 핵심적 요구사항이었던 인질과 탈레반 수감자의 맞교환이 포함돼 있지 않았다. 또 끊임없이 나돌던 몸값 지불 여부도 역시 거론되지 않았다. 인질과 수감자 맞교환은 탈레반이 납치사태 초기부터 인질 2명을 살해하면서까지 관철시키려 했던 핵심적 요구사항이다. 몸값 지불 역시 과거 납치 사례에서 거의 빠짐없이 거래됐던 내용이어서 한국에만 예외를 두었을 것으로 보기는 힘들다.

정부는 동의·다산 부대를 올해 안에 철군시키기로 납치사태가 발생하기 이전에 방침을 정한 상태였다. 납치 발생직후 정부는 아프간을 여행금지국으로 지정해 선교단체와 비정부기구(NGO) 구호요원 등 민간인들을 모두 아프간에서 철수하도록 조치했기 때문에 선교활동 중단이라는 요구도 현 시점에서 큰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다. 한국 정부가 약속한 조건은 굳이 석방 조건으로 내걸지 않아도 이뤄질 수 있는 사항들인 셈이다.

이를 근거로 일각에서는 정부와 탈레반이 표면적으로 내세울 수 있는 석방 조건 외에 외부에 알려지지 않은 조건들을 비밀리에 이면 합의를 했을 것이라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다. 즉 수감자 석방과 몸값 지불 등의 석방 조건을 밝히지 않음으로써 탈레반은 실리를 얻고 한국 정부는 명분을 얻는 선에서 합의가 이뤄졌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아프간 정부가 추후 라마단 특사 등의 형식으로 포로들을 석방하면서 탈레반이 석방을 요구해 온 인물들을 일부 포함시키는 형식을 취할 것이라는 분석도 있다.

정부는 인질 맞교환 요구에 대해 한국 정부가 성실히 협상에 임했고 이를 수용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으나 현실적으로 정부가 할 수 있는 능력 밖의 일이라는 것을 납치단체가 인식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한국측과의 인질 석방협상에 참가한 탈레반 대표단의 물라 나스룰라는 “이는 한국 정부의 권한 밖인 것을 잘 인식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선(先)석방안을 조건으로 내걸지 않았다”고 말했다. 탈레반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요구조건을 접고 조기 철군이라는 명분을 얻는 쪽으로 선회한 것으로 보인다.

정부가 발표한 조건이 전부라고 해도 탈레반이 얻어낸 성과는 만만치 않다. 인질을 살해해 국제적 비난을 받기는 했지만 자신들의 철군 요구를 한국 정부가 수용한 것과 같은 형식을 취함으로써 파병 동맹국간의 균열을 가져올 수 있는 효과를 거뒀기 때문이다.

〈유신모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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