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가포르 대화’에 비친 두 정상의 화법
중간중간 사적 대화·유머 주고받아…서로 치켜세우기도
김정은 “오늘 훌륭한 출발” 트럼프 “그는 재능있는 사람”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6·12 북·미 정상회담에서 거리낌 없는 대화로 양국관계 개선에 기대감을 드러냈다. “리틀 로켓맨” “늙다리 미치광이”라고 서로 비난했던 과거를 잊은 듯 두 사람은 상대방을 한껏 치켜세웠다.
특히 회담을 계기로 서방무대에 데뷔한 김 위원장은 초반에 다소 긴장했지만, 갈수록 긴장이 풀어진 모습이었다. 김 위원장은 “우리한테는 우리 발목을 잡는 과거가 있고, 또 그릇된 편견과 관행들이 때로는 우리 눈과 귀를 가리고 있었다”며 북·미를 아울러 ‘우리’라고 표현했다. 북·미 간 쌓여온 적대감을 감안하면 파격적 표현이다. “많은 이들이 이번 회담을 일종의 판타지나 공상과학 영화로 생각할 것”이라며 농담도 건넸다. 트럼프 대통령과 악수를 나눈 뒤 손을 올리는 등 스스럼없는 태도를 보이기도 했다.
트럼프 대통령도 평소보다 진중한 모습이었다. “만나게 돼서 영광스럽게 생각한다” “좋은 대화가 있을 것”이라고 밝히는 등 부드러운 화법으로 김 위원장에게 친근감을 표시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오른손으로 김 위원장과 악수를 하면서 친근함을 표현하려는 듯 왼손으로 김 위원장의 오른팔을 가볍게 잡는 듯이 쳐 눈길을 끌었다.
■ “여러 가지 난제 풀 것”
트럼프 대통령은 단독정상회담 모두발언에서 “우리는 굉장히 성공할 것이라고 믿는다”며 “좋은 결과를 맺을 것이라는 데 전혀 의심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여기까지 오는 길이 그리 쉬운 길은 아니었다”며 “우린 모든 것을 이겨내고 이 자리까지 왔다”고 화답했다. 그러자 트럼프 대통령은 엄지손가락을 들어 “맞다”고 거들었다. 김 위원장은 대화 초반 다소 긴장한 표정으로 트럼프 대통령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그러다 “아주 훌륭한 관계를 맺을 것”이라는 통역을 듣고 “하하하” 하고 웃어 보였다.
두 정상이 단독회담을 마친 뒤 호텔 2층 발코니를 따라 확대회담 장소로 걸어가던 도중엔 여러 차례 폭소가 터졌다. 트럼프 대통령은 확대회담 모두발언에서 “과거에 해결하지 못했던 여러 가지 난제를 풀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우리 발목을 지루하게 붙잡던 과오를 과감하게 이겨냄으로써 대외적인 시선과 이런 것들을 다 짓누르고 우리가 이 자리에 모여 앉은 것은 훌륭한 평화의 전주곡이라 생각한다”며 “이때까지 다른 사람들이 해 보지 못한, 물론 그 와중에 어려움이 있겠지만 훌륭한 출발을 한 오늘을 기회로 해서 함께 거대한 사업을 시작해 볼 결심은 서 있다”고 답변했다.
취재진을 대하는 두 정상 태도는 달랐다.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이 어땠느냐는 미국 언론 질문에 “매우, 매우 좋았다”며 “큰 문제, 큰 딜레마를 해결할 것”이라고 했다. 김 위원장은 ‘미스터 김, 당신의 핵무기를 포기할 겁니까’라는 질문에 묵묵부답했다. 비핵화 이슈가 민감한 주제이기도 하지만, 독재국가인 북한의 지도자로선 언론의 예기치 못한 질문이 익숙지 않을 수도 있다. 김 위원장이 외국 취재진에 노출된 것도 처음이었다.
■ “세상은 중대한 변화 보게 될 것”
트럼프 대통령은 서명식 직후 포토타임을 하면서 “(김 위원장이) 위대한 인격을 갖추고 있으며 매우 똑똑하다. 좋은 조합”이라고 말했다. 또 “김 위원장이 매우 재능 있는 사람임을 알게 됐다” “그는 그의 나라를 매우 사랑한다는 점도 알게 됐다”고도 말했다. 이어 “우리는 여러 번 만날 것”이라며 추후 만남을 예고했다.
김 위원장은 서명식에서 “우리는 오늘 역사적인 이 만남에서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역사적인 서명을 하게 된다. 세상은 아마 중대한 변화를 보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오늘과 같은 자리를 위해 노력해 주신 트럼프 대통령께 사의를 표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