협상 동력 살리며…트럼프는 ‘대선 자산’ 김정은은 ‘존엄 회복’

2019.06.30 22:05 입력 2019.06.30 22:44 수정
워싱턴 | 박영환 특파원·이주영 기자

회동 제의·수락 왜

<b>대화 전 악수</b>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판문점 남측 지역 자유의집에서 회동 전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판문점 | 김기남 기자

대화 전 악수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왼쪽)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판문점 남측 지역 자유의집에서 회동 전 악수하며 인사하고 있다. 판문점 | 김기남 기자

■ 미 민주당 정부와 차별화된 ‘북·미관계 개선’ 앞세워 외교 치적으로 활용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0일 한반도 분단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에서 70년 적대국 북한의 정상과 악수하며 역사의 주인공이 됐다. 정권 출범 초기 한반도 위기의 원인으로 비판받던 그가 두 번의 북·미 정상회담에 이어 또 한 번의 드라마를 연출했다. 한반도 평화를 향한 외교적 성과로 꼽힐 수 있는 이번 만남은 재선을 노리는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정치적 자산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한에 맞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DMZ 회동을 제안하고 연일 적극적 의지를 피력하며 북한 측의 호응을 유도했다. 김 위원장과의 만남을 이번 방한의 핵심 목표로 설정하고 있었던 셈이다. 배경에는 DMZ 회동이 가져올 긍정적 효과에 대한 계산이 깔려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트럼프 대통령은 새로운 북·미관계를 만들어가고 있다는 외교적 치적을 내세울 수 있게 됐다. 지난 2월 하노이 2차 북·미 정상회담 이후 비핵화 협상이 첨예한 입장차로 교착 상태에 빠지면서 워싱턴 정가에서는 대북 관여정책의 성과에 대한 회의론이 고조되고 있다. 자칫 북한 문제가 재선 가도의 장애물이 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다. 이 같은 시점에서 전 세계가 주목할 북·미 정상의 DMZ 회동은 상황을 반전시킬 기회의 카드였다.

재선 캠페인에서 ‘피스 메이커’로서의 역할을 부각할 수 있는 대표적 치적으로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실제 그는 김 위원장을 만나기 직전 김 위원장과의 만남이 짧아도 괜찮다며 “한 번의 악수도 많은 것을 의미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문재인 대통령과의 정상회담 후 공동기자회견에서는 “2년반 전과 지금을 비교하면 엄청나게 많은 진전을 이룬 것이 사실”이라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했던 것, 그런 상황으로 나아갔다면 지금 우리는 전쟁 상황에 있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과 오바마 전 대통령은 만나지 않았다”고도 했다. 그는 전날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기자회견에서도 “내가 아마도 외교 분야에서 뜻밖의 성공을 거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오래전에 말했다”고 했다.

김 위원장과의 만남으로 북·미 비핵화 협상 동력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도 성과다. 북한은 하노이 정상회담 결렬 이후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발사하고 미국의 셈법이 바뀌지 않으면 협상 궤도에서 이탈할 수 있다고 압박했다. 대북정책 성과로 내세우는 북한의 핵·미사일 실험 중단 약속까지 파기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DMZ를 찾아 북한에 긍정적 메시지를 보냈고, 톱다운 외교의 가능성도 확인했다. 비핵화 실무협상을 이어가고, 3차 북·미 정상회담 가능성도 열어둬 북핵 문제가 악재로 작용하지 않도록 상황을 관리할 수 있게 됐다. 다만 비핵화 방법론을 둘러싼 입장차는 평행선이어서 DMZ 이벤트가 실질적 비핵화의 진전으로 이어질 수 있을지는 여전히 장담하기 어렵다.

■ 톱 다운 방식 원해 거부 이유 없었고, 하노이 충격 딛고 협상 재개 명분 확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30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만나기 위해 판문점까지 내려온 것은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원하고 있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김 위원장은 적대관계의 상징인 비무장지대(DMZ)에서 미국 정상과 손을 맞잡음으로써 미국과의 비핵화 협상을 재개할 명분을 확보하는 동시에, 하노이 회담 결렬로 훼손된 ‘최고존엄’의 리더십을 회복하는 기회로 삼으려는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의 판문점행은 지난 29일 트럼프 대통령의 트위터를 통한 만남 제안에 최선희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이 5시간여 만에 긍정적 반응을 내놓으면서 예견됐다. 김 위원장은 회동을 통해 얻는 실익이 분명하다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

김 위원장은 판문점에서 트럼프 대통령과 만나 “이런 훌륭한 관계가 남들이 예상 못하는 좋은 일을 계속 만들면서 앞으로 난관과 장애를 극복하는 신비로운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우리가 훌륭한 관계가 아니라면 하루 만에 이런 상봉이 전격적으로 이뤄지지 못했을 것”이라고도 했다. 김 위원장이 ‘톱다운’ 방식의 외교를 선호해왔다는 점을 고려하면 트럼프 대통령의 제안을 거부할 이유가 없다는 분석이 나온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20~21일 방북한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대화를 계속하고 싶다는 의지를 피력했다. 그 이튿날에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친서에 만족감을 표시하면서, 친서를 유심히 읽는 모습까지 대내외용 매체를 통해 공개했다.

당초 김 위원장은 지난 4월 시정연설을 통해 연말을 협상 시한으로 제시했다. 그러나 미·중 무역갈등, 이란 문제 등 굵직한 이슈들이 부각된 상황에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북한 비핵화 협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관심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 터다. 최용환 국가안보전략연구원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연말로 시한을 정한 것이 이제는 역설적으로 북한에 부담이 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런 상황에서 김 위원장은 트럼프 대통령과의 판문점 회동이 내부적으로 미국과의 대화 재개를 설득할 수 있는 확실한 명분이 될 수 있다고 고려했을 수 있다.

하노이 회담 결렬로 손상된 리더십 회복도 염두에 뒀을 법하다. 미국과의 2차 북·미 정상회담을 위해 66시간이나 기차를 타고 베트남까지 달려갔지만 ‘빈손’으로 돌아오면서 김 위원장은 최고지도자로서의 ‘무오류성’에 상처를 입게 됐다. 지난 5월 북한이 잇따라 단거리 발사체를 발사하며 군사적 행동에 나선 것도 군부와 주민 불만을 다독이고 내부 결속을 도모하려는 의도가 있다고 국가정보원은 분석한 바 있다. 그런 만큼 트럼프 대통령과의 회동은 정상 간 신뢰관계를 과시하면서 김 위원장 체면을 세워주는 계기가 될 수 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DMZ라는 상징적인 장소에서 트럼프 대통령과의 만남은 북·미 정상 간 신뢰관계를 잘 보여주는 그림”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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