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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행부가 대통령 눈·귀 가리고 있다” … 30년 ‘소방 현장 캡틴’ 폭로

2014.06.06 22:39 입력 2014.06.06 22:49 수정
김창영 기자

· 박명식 ‘소방의 소리’ 대표 “대통령 6년 전 소방독립 약속”
· “지방·국가직 소방관, 국가직 일원화만이 제2참사 막는 길”
· “진도 체육관서 안행부 고위직 사적으로 소방차 이용 압력”
· “문책 받아야 할 안행부가 자리 늘리기 안전처 조직 주도”

“소방방재청을 독립하고 이원화된 조직을 바로잡는 것만이 최적이자 대안입니다.”

30년 동안 소방현장에서 근무한 뒤 퇴직한 박명식 ‘소방의 소리’(www.vof.or.kr) 대표(66)는 6일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소방방재청을 해체하는 것을 골자로 한 국가안전처 설립에 대한 격정적인 비판을 쏟아냈다. 강원도 속초소방서 행정과장(소방령)을 끝으로 30년간의 소방현장을 마감하고 정년퇴직한 박 대표는 현장 소방공무원의 목소리를 대변하기 위해 2009년 웹사이트 ‘소방의 소리’를 열고 운영자로 활동하고 있다.

박 대표는 “문책을 당해야 할 안전행정부가 자리 늘리기 조직개편을 하고 있다”면서 “안행부가 대통령의 눈과 귀를 가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박 대표는 또 “박근혜 대통령은 한나라당 대표 시절 자신과의 면담에서 말한 ‘소방공무원의 애로를 들어주겠다’는 약속을 지켜달라”고 눈물로 호소했다.

서울 보성고를 졸업한 박 대표는 1977년 소방관 제복을 입은 뒤 2007년 퇴직할 때까지 속초 등 4개 소방서에서 예방·방호·구조과장을 거치고 강원도 소방본부에서 예방·방호·상황실장을 역임했다. 현장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면서 후배 소방관이 존경하는 영원한 ‘현장 캡틴’으로 불린다.

박 대표는 인터뷰 내내 공무원을 ‘공무원’으로 부르지 않았다. 후배 소방관을 아끼는 영원한 소방인으로서 ‘공무원 나리’ ‘행정관료’라는 표현을 썼다. ‘무시’나 ‘증오’라는 단어를 사용하며 30년간 소방관으로 받은 멸시도 털어놨다. 현장에서 잔뼈가 굵은 현장 사령탑 출신답게 소방의 미래를 조목조목 짚고 “지방과 국가직으로 이원화된 조직을 일원화하는 것만이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는 길”이라고 역설했다. 다음은 박 대표와의 일문일답.

30년간 현장 소방 캡틴으로 활동했던 박명식 ‘소방의 소리’ 대표가 정부가 추진중인 국가안전처 설립의 문제점에 밝히고 있다.

30년간 현장 소방 캡틴으로 활동했던 박명식 ‘소방의 소리’ 대표가 정부가 추진중인 국가안전처 설립의 문제점에 밝히고 있다.

- 정부가 세월호 참사 이후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국민들의 IQ(지능지수) 수준을 어느 정도로 보는지 박 대통령에게 묻고 싶다. 즉흥적이다. 국가안전처가 만능인 것처럼 요란을 떨며 안행부, 소방방재청, 해양경찰청을 없앤다고 한다. 안전처 산하에 5~6개 본부를 만들어 행정관료의 자리를 마련하려고 한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현장을 무시한 유모 청와대 수석을 비롯해 행정관료들의 탁상작품에 불과하다. 장관 밑에 무슨 본부가 그리도 많은가. 지방 소방관은 자치단체 산하 그대로다. 변화된 게 아무것도 없다. 박 대통령에게 어느 부분이 달라진 거냐고 묻고 싶다. 현직에 있을 때 정치인들이 소방조직에 대한 모멸적 인식, 즉흥적 대처로 국민들의 혈세가 줄줄 새는 것을 봤다. 또다시 국민을 우롱하는 행정을 보는 것 같다.”

- 문제가 있는데 왜 굳이 안전처를 고집할까.

“행정관료 어르신들의 자리 마련용 조직개편이다. 세월호 참사 시 숨기고 싶은 자기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다시 큰 인심이나 쓰는 모습이다. 온통 난리를 피우고 있음을 국민은 알아야 한다. ‘사고를 수습하는 자보다 구경하고 지휘하는 자가 더 많다’는 웃지 못할 현실 그대로다. 290명(현재 실종 14명)을 수장시킨 장본인 중 하나인 저들이 책임을 지는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자기들의 자리 보전과 승진에만 혈안이 돼 있다. 근본적인 잘못은 자기들이 저질러 놓고, 남의 탓인 양 야단법석을 떠는 모습을 국민들이 어찌 보고 있을까 하는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 소방서장이 재난현장에서 군경을 지휘하도록 했다.

“안행부 공무원들의 머릿속을 한번 들여다보고 싶은 심정이다. 지금도 재난현장(정확히는 육지) 소방서장이 군과 경찰을 지휘하도록 법에 나와 있다. 세월호 참사에서 드러난 크나큰 잘못을 감추고 자신들의 조직을 감싸기 위해 국민들의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리려는 술수다. 한마디로 지나가던 소가 웃을 일이다. 문제는 소방지휘관의 말을 군을 제외한 어느 누구(경찰·행정)도 따르지 않는다는 점이다. 결정적인 원인은 재난현장은 그네들 조직(경찰·행정)의 활동상황을 방송을 통해 권력자에게 보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여기는 것이 문제다. 대통령이 ‘안전을 중시한다’며 행정안전부를 안전행정부로 바꿨다. 명석하고 재빠른 관료들이 재난현장의 지휘(통제)권은 그 지역 소방서장, 소방본부장으로 멀쩡히 정해져 있던 것을 시·군 부단체장(부시장·부군수)으로 재빨리 바꾸어 놓지 않았던가.”

30년간 소방현장을 누빈 박명식 ‘소방의 소리’ 대표의 현역때 사진.

30년간 소방현장을 누빈 박명식 ‘소방의 소리’ 대표의 현역때 사진.

- 재난관리가 그렇게 문제가 많은가.

“30년간 소방공무원으로 재직하고 처참한 현장을 경험하면서 난맥상을 봤다. 1995년 6월29일에 발생한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때 계속 무너져내리는 지하 불꽃 무더위 현장에서 소방구조대원들은 죽을 각오로 인명구조를 했다. 하지만 그네들 조직(경찰·행정)은 활동상황을 언론을 통해 알리면서 권력자에게 잘 보일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기에 수백, 수천명을 동원해 혼잡만 초래했다. 2003년 2월18일 발생한 대구지하철 참사 후 행정관료들의 ‘발빠른’ 대처 능력을 보면 황당하다. 재난관리청이나 방재청을 신설해 국가 재난관리를 철저히 하겠다고 했다. ‘소방청’은 천만의 말씀이다. ‘무식한 소방직들이 우리와 같이한다는 것 자체가 부끄럽다’며 당시 허모 행정자치부 장관과 재난부서 고위관료분들이 국회 복도에 90도로 엎드려 국회의원들에게 ‘소방청은 절대 안됩니다’며 로비를 벌였다. 1년 후인 2004년 6월 소방청이 아닌 소방방재청이 탄생했다. 재난현장 중심인 대응단계 핵심인 소방직을 ‘기획 능력이 없는 무식한 집단’으로 치부했다. 인사·예산·기획 등 중요 부서를 저들이 차지(총원 77%)하고 나머지 23%를 할 수 없이 소방직에 맡기는 ‘엄청난’ 양보심을 발휘한 ‘애국자’들이었다는 것을 국민은 반드시 알아야 한다. 지금도 안행부 직원들은 안전처 신설에 따른 정부 조직개편에 따라 어느 부처에 가면 승진이 빠를까를 계산하는 추태를 부리고 있지 않는가.”

- 구체적으로 행정편의주의적인 사례가 있다면 소개해 달라.

“심심산속 계곡에 가보면 깊은 못(샘) 앞에 이런 팻말이 붙어 있다. ‘위험 시 신고전화는 ○○-○○○-○○○○번’. 시청 재난상황실로 신고하라고 한다. 119가 아니다. 왜 그리로 신고하느냐고 물었더니 담당 공무원은 ‘상황 파악을 위해서’라는 명언을 남겼다. 이게 우리나라의 현실이다.”

- 최근에도 그런 일이 있는가.

“세월호 사고 후 4월18일 쯤 안행부 모 국장이 ‘진도군청 범정부대책본부 근무 시 차량이 없어 불편하다’며 ‘소방 119구급차를 이용하자’고 요구했다. 소방에서 반대의사를 표명하자 ‘대책본부 회의에서 이 문제를 거론하겠다’고 추태를 보였다. 4월20일쯤 보건복지부 직원이 보건소 구급차로 출퇴근하는 상황이 언론에 보도돼 문제가 되면서 유야무야됐다. 현장 직원들은 울분을 토로했다. 도대체 이러한 자들이 국가재난관리를 하겠다고 하고 소방조직을 하인 부리듯 하는 현상을 언제까지 두고 봐야만 하는가.”

- 그렇다면 그동안 소방의 문제점을 지적한 일이 있었나.

“2006년 4월12일로 기억한다. 한나라당 주최 ‘국가재난관리 시스템 개선대책 세미나’에 현장지휘관의 말을 직접 들어달라고 사정해 패널로 참석했다. 정해진 15분을 초과한 40분 동안 참석자들 앞에서 눈물로 소방공무원의 위상 정립을 호소했다. 세미나가 끝난 후 당시 당 대표였던 박 대통령은 고인이 된 이춘상 보좌관과 내가 같이 만난 자리에서 ‘나도 군인의 딸이기에 소방관들의 어려움을 잘 안다. 내게 기회가 주어진다면 소방조직의 어려움을 해소, 독립을 이루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그때의 발언을 기억할는지는 모르겠다.”

- 개선 방안은 무엇인가.

“재난현장의 핵심은 초기대응이다. 그런데 소방조직은 국가와 지방으로 이원화돼 국비지원 2% 내외와 지방자치단체장(도지사·시장·군수)의 눈치를 보며 얻어쓴다. 인력, 장비 등 모든 면에서 열악한 환경에 처해 있다. (※자치단체장은 소방공무원의 임명·전보·승진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소방관은 오직 사명감 하나로 버텨왔다. 최소한 시·도지사 눈치라도 살피지 않고, 국민을 위해 일할 수 있는 ‘국가직화’라도 해주기를 바랄 뿐이다. 자치단체장 산하에서 예산 확보가 어려운 지방직을 국가직으로 전환하는 것뿐이다. 소방조직을 국가안전처 산하 외청인 소방청으로 독립해야 한다. 대통령의 올바른 판단을 바랄 뿐이다.”

- 혹시 소방관들의 이기주의는 아닌가.

“친박으로 불리는 윤상현 새누리당 사무총장이 국가안전처 차관에 소방방재청 출신(정무직)을 앉히겠다고 했다. 왜들 이러나. 누가 그 자리를 원했나. 분명한 점은 소방공무원들의 외침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소방관들은 괴롭고 서러웠던 과거는 다 잊고 싶어한다. 오직 국민의 일원으로서 노예 같은 과거 생활(아무나 집단으로 매도)이 아닌 제대로 된 대우를 받으며 국민의 충실한 머슴으로 근무하고 싶다. 국가행정이 자기들 개인 소유인 양 좌지우지해온 행정관료들에게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엄중히 경고한다. 세월호 참사를 기억한다면 똑똑히 눈 크게 뜨고, 경청하고 참회를 해야 할 시점이다. 세월호 사태 후 그 심각성에 따라 박 대통령의 고뇌에 찬 결단 중 하나로 문제투성이 안행부를 해체 수준까지 고려한다는 추상 같은 지시가 있었다. 하지만 잘못을 인정하기는커녕, 또다시 집요한 부처이기주의를 살리고자 혈안이 되고 있다. 인력, 장비 부족 등 온갖 어려움과 타 공무원 집단들로부터 ‘아무나 집단’으로까지 무시를 당하면서도 행여나 ‘소방의 조직이기주의’라는 말도 안되는 소리를 들을까봐 인내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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