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소방관 국가직 전환, 돌아가신 아버지의 꿈을 … ”

2014.09.27 20:41 입력 2014.09.28 14:38 수정

· 광주서 추락·순직한 소방조종사 외동아들 ‘눈물의 1인 시위’ 시작

“꿈속에서 아버지가 나타나면 목 놓아 울고, 그리움이 가득했지만 이제는 반가운 마음입니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경영학과 2학년 정비담씨(24·사진). 그는 지난 7월 17일 광주 광산구 장덕동 부영아파트 옆 인도에 소방헬기가 추락하는 불의의 사고로 순직한 강원도소방본부 소방항공대 고 정성철(52·사고 당시 소방경) 소방령의 외동 아들이다. 사고 당일 고인은 전남 진도에 파견돼 세월호 참사 수색작업을 마치고 복귀하던 중 동료 소방관 4명과 함께 순직했다. 고인은 세월호 선장이 제 목숨을 먼저 구하기 위해 승선자들을 외면한 채 탈출한 것과는 달리 인적이 드문 도로 주변으로 헬기를 몰아 끝까지 시민의 안전을 지켜낸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육군항공에서 준위로 전역한 뒤 8년 전 소방에 입문, 5305시간의 비행경력을 갖춘 베테랑 조종사로 미국, 호주 등 3개국에서 조종사 면허를 보유하고 있는 한국소방의 우수 인재였다. 모친과 장모를 모시는 효자로 평소에는 팀 화합을 위해 자비로 음식을 마련해 등산모임을 갖고 직원 애경사까지 꼼꼼히 챙기는 소방항공대의 맏형이었다.

아버지를 잃은 슬픔에 젖어 있던 비담씨가 50일만에 평정심을 되찾았다. 생전 부친께서 동료들과 토론을 벌이며 “국민안전을 위해 지방직과 국가직으로 이원화된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일원화 해야 한다”고 목청을 높였던 모습을 지켜봐 왔던 그였다.

지난 7월 17일 광주 도심에서 발생한 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고 정성철 소방령의 아들인 정비담 씨가 아버지의 소방관 정복 상의를 입은 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비담 씨는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촉구했다. |강윤중 기자

지난 7월 17일 광주 도심에서 발생한 헬기 추락 사고로 순직한 고 정성철 소방령의 아들인 정비담 씨가 아버지의 소방관 정복 상의를 입은 채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비담 씨는 소방공무원의 국가직 전환을 촉구했다. |강윤중 기자

선친의 유언과도 같은 유지를 받들기 위해 아들이 슬픔을 훌훌 털고 서울 광화문 광장으로 나왔다. 27일 이순신 동상 앞에서 첫 1인 시위를 시작한 그는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강원도 소속인 지방직 소방관이었던 아버지는 광주까지 가서 수색작업을 벌이다 돌아가셨다”면서 “이렇게 지방직 소방공무원을 전국으로 돌리고, 부려먹으면서도 지방사무라는 이유로 국가직으로 전환해주지 않는 것이 과연 정상적이냐”고 말문을 열었다.

여야 국회의원 55명은 지난해 4월부터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을 비롯해 소방관 처우개선을 담은 소방공무원법개정안 등 6개의 관련 법안을 공동으로 발의하고도 주무부처인 안전행정부가 ‘지방사무’라는 논리를 펴자 법안 심사조차 하지 못하고 있다. 입법기관인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지역구에 배당되는 지방예산을 틀어 쥐고 있는 안행부의 압력을 거부하지 못하고 되레 눈치를 보고 있는 것이다. 소방관들이 자비로 소방장갑을 인터넷에서 구매한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대학생들이 소방관을 돕기 위해 모금운동을 벌여도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것이다.


그는 “아버지가 몸이 많이 안 좋은 상황에서도 세월호 첫 수색에 동원됐을 때 걱정을 많이 했다”며 “그러나 무사히 돌아와 기뻤는데 마지막 수색을 마친 뒤에는 끝내 집으로 돌아 오시지 못했다”며 눈물을 흘렸다.

소방관 정복 상의와 모자까지 갖춰 쓰고 검은색 마스크를 쓴 비담씨는 비장했다. 부끄러운 마음에 얼굴을 가리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오른쪽 가슴에 단 은빛 명찰에는 그토록 목놓아 부르던 아버지의 이름 ‘정성철’을 달았다. 50일만에 아들의 몸을 빌어 환생한 고인이 청와대와 국회를 향해 4만명의 지방직 소방관 염원을 탄원하는 모습이 그대로 담겨 있었다.


비담씨는 “소방공무원이 근무시간이나 근무조건에 비해 처우가 열악하다는 사실을 알만한 사람은 다 알고 있지 않느냐”며 “국민안전을 위해 현장컨트롤 타워를 강화하기 위해서는 지방직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즉각 전환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공무원은 소방방재청 소속의 국가직(300명)과 시·도에 소속된 지방공무원(4만명)으로 이원화 돼 있다. 현장에서 대응하는 지방직 소방관은 소방방채청장과 시·도지사로 부터 이중적인 지휘를 받아 재난현장에서 큰 혼란이 빚어지고 있다.

그는 “박근혜 대통령은 소방방재청의 상위 기관인 안전행정부를 세월호 참사 책임을 물어 해체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오히려 소방방재청을 해체하는 법안을 만드는 등 소방관의 사기를 저하 시키고 있다”며 “당초 대통령이 발표했던 것 처럼 안행부를 해체하거나 권한을 축소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소방관 처우개선을 하겠다”고 밝혔지만, 기획재정부는 2015년 안전예산에서 3년 동안 ‘한시적으로만’ 1000억원을 배정해 대통령의 지시도 무시하고 있다. 17개 시·도에 배분하면 소방 지원 예산은 ‘쥐꼬리 예산’에 불과하다. 그것도 지방비로 ‘매칭펀드’를 구성하라는 지시를 하달해 ‘국민모독 안전예산을 편성했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시·도의 행정관료들이 온전하게 소방관 처우개선에 쓸지도 의문이다.

비담씨 부친이 몰았던 소방헬기가 추락하면서 강원지역은 구조헬기가 1대만 남아 안전에 비상이 걸렸지만, 기재부는 내년 예산에 불과 25억원만 배정했다. 230억원에 달하는 소방헬기 구입 비용을 “3년에 걸쳐 지원하겠다”며 125억원은 강원도가 자체적으로 조달하라고 지시했다.

그는 “남의 동네 수색에 강제로 동원됐다가 소중한 소방헬기까지 잃었는데 ‘지방사무’라고 예산을 주지 않으니, 다음부터는 어느 지역 소방관들이 지원을 하겠느냐”고 말했다.

비담씨는 “진작에 마음속으로 1인 시위를 생각했었지만 아버지를 잃은 슬픔이 너무 커 그동안 실행에 옮기지 못했다”며 “소방관 국가직 전환이 관철될 때까지 앞으로 매주 주말 광화문 광장에서 시위를 하겠다. 아버지가 몰았던 소방헬기가 하루 빨리 강원도 소방항공구조대로 돌아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적인 면모를 갖춘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비담씨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뒤늦게 ‘아버지가 자랑스럽다’고 느끼게 된 것이 너무나 죄스럽다”며 “이제는 아버지 동료와 후배 소방공무원, 그리고 국민안전을 위해 더이상 참지 않겠다”고 말했다.

대학생인 비담씨는 “불가피한 개인적인 일이 있어서 내일(28일)은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 30분까지 이순신 장군 동상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인 뒤 다음주부터는 시위 시간을 늘리겠다”고 말했다.

“아버지, 이제는 하늘나라에서 편안하게 영면하세요. 아들이 아버지, 당신의 그 꿈을 꼭 이루어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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