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 칼럼

청와대·국회·국민 ‘기망’ 안행부 왜 존재하나

2014.07.07 11:43 입력 2014.07.11 21:15 수정
김창영 기자

다리 수술을 해야 하는데 팔 수술을 했다. 안전행정부가 최근 국회에 제출한 정부조직개편안이 딱 그런 경우다.

박근혜 대통령은 ‘고심 끝에’ 세월호 참사 책임을 물어 안전행정부를 사실상 해체하기로 했다고 선포했다. 대통령이 안전행정부의 ‘안전업무’와 ‘인사·조직업무’를 신설되는 국무총리실 산하 인사혁신처와 국가안전처에 떼어주라고 발표, 안행부가 공중분해될 위기에 몰렸다. ‘자치행정업무’만 남게 되면서 처단위 부처로 전락이 불가피했다.

대통령 담화에 타 부처 공직자들은 “무소불위 인사·조직 권한을 가지고 공무원들로부터 향응·접대를 받고 ‘슈퍼갑질’을 해온 안행부 해체는 사필귀정이다”는 반응이 지배적이었다.

눈물까지 보인 대통령의 발표는 딱 거기까지였다. 고양이로 비유되는 안행부에 생선을 맡긴 ‘셀프개혁’은 조직이기주의와 적폐 진면모를 보는 ‘사건’이었다. 결국 고양이 배만 불린 결과를 초래했다.

안행부는 뒤집기에 성공했다. ‘안행부가 해체되면 막강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기획재정부를 견제하기 어렵고, 지방자치단체 통제도 어렵다’는 논거를 폈다.

왜곡되고 교묘한 논리로 청와대를 속인 안행부는 반전에 성공했다. 인사기능만 떼어내고 조직기능을 살리는 ‘괴력’을 발휘했다. 고위직 인사는 청와대에서 하고 인사수석실까지 생기는 마당에 조직기능만 살리면 손해보는 장사가 아니라는 의도가 숨어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학계는 ‘한몸 한쌍’인 인사·조직업무를 분리한 자체를 ‘코미디 행정’으로 보고 있다.

김창영 | 경향신문 전국사회부 차장(안전행정부·소방방재청 출입)

김창영 | 경향신문 전국사회부 차장(안전행정부·소방방재청 출입)

조직업무를 살려 낸 안행부는 ‘해경을 해체하겠다’고 한 대통령 담화에 ‘아무 죄도 없는’ 소방방재청까지 끼워 넣었다. 안전·재난기능을 한곳에 모아 컨트롤타워를 만들겠다는 그럴듯한 의도였지만 현장상황을 모르는 ‘탁상행정’이 빚어낸 또 하나의 ‘행정참사’였다.

제2의 세월호 참사를 막기 위해 이원화된 지휘체계를 일원화기 위해서는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일원화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학계의 주장은 ‘내 알바가 아니다’라는 식으로 대응하고 있다. 법을 바꿀 생각은 없고 마이웨이다. ‘지방사무’라는 이유로 국회를 상대로 ‘국가직 전환 불가’ 로비를 벌이고 있다. ‘선진국인 미국도 지방사무이니, 한국도 지방사무로 하는 것이 당연하다’는 논리다. 미국 주정부가 한국과 비교할 수 없는 ‘국가급 지방정부’라는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안행부는 한국형 재난시스템을 구축, 국민의 안전과 생명을 보호하기보다는 조직을 지키기 위한 생각밖에 없는 듯하다. ‘지방직 소방공무원 4만명이 국가직으로 전환되면 안행부 위상이 축소된다’는 비밀이 외부에 알려질까 두려울 뿐이다.

공중분해 위기에서 탈출한 안행부는 아이러니하게 몸집을 더 불렸다. 인사혁신처와 국가안전처가 정부 조직도상 국무총리실 산하이기는 하지만, 실제는 안행부가 직접 통제하는 2개 부처가 새로 생기는 셈이다. ‘처’는 국무총리 소속으로 참모적 업무를 수행하고, 독자적인 법안제출권조차 없고 외청 설치도 어렵다. 결국 안행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 인사혁신처장과 국가안전처 장관에 안행부 출신이 간다는 소문까지 파다하다.

국회가 안행부의 ‘꼼수’를 모를 리 없다. 국회 입법조사처는 즉각 제동을 걸었다. 세월호 참사와 무관한 인사혁신처 신설에 신중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사기능을 분리해 ‘인사혁신처’를 설치하는 근거도 미흡할 뿐 아니라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에서 설치된 ‘중앙인사위’의 기능과 차별화되기 어렵다는 것이다.

소방방재청과 해양경찰청 폐지도 문제점으로 지적했다. 집행기능을 담당하는 2개 외청 폐지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특히 소방방재청 폐지는 국가안전처 밑에 외청을 둘 수 없기 때문에 일어난 ‘불가피한 폐지’라는 것이다. 국회가 소방방재청 폐지를 ‘탁상행정의 전형’으로 결론 내린 것이다. 안행부가 불량품 ‘정부조직개편안’을 국회에 납품한 것으로 밝혀진 셈이다.

최근 막을 내린 KBS 사극 <정도전>에서 정도전은 이런 말을 했다.

“머릿속에 똥만 가득 찬 밥버리지가 무엇을 알겠는가? 자네들(백성)이 군자이니 자네들이 하는 말이 맞을 것일세. 네 죄가 아니다. 백성의 목숨조차 지키지 못한 빌어 먹을 나라의 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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