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방사무 새롭게 정립해야 한다” … 소방서장 릴레이 제언 <1>

2014.08.03 20:35 입력 2014.08.05 18:35 수정
김창영 기자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재난 현장 컨트롤 타워의 기능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습니다. 현장 컨트롤 타워는 현장지휘관인 소방서장을 말합니다. 국민이 차별없는 ‘평등한 소방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소방공무원을 국가직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것이 현장과 학계의 공통된 목소리입니다.
하지만 여야 의원이 공동발의한 ‘소방공무원법 개정법률안’은 국회 안전행정위원회에서 심의조차 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새누리당 20명, 새정치민주연합 25명 등 여야 45명 의원이 서명했지만 안전행정부와 일부 시·도지사의 반대로 사장될 위기에 놓여 있습니다.
<경향신문>은 재난현장에서 ‘골든타임’ 확보를 위해 일선 소방서장의 생생한 목소리를 담은 ‘릴레이 기고’를 시작합니다. 첫번째 순서로 윤상기 강원도 소방본부 철원소방서장이 보내온 글을 전제합니다. 현장지휘관의 목소리는 이메일(bodang@khan.kr)로 받습니다. ※ 편집자 주

[경향마당] 윤상기 강원도 철원소방서장

최근 세월호 사고를 계기로 국가직과 지방직으로 이원화된 소방공무원 신분체계를 일원화해달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고 각종 언론매체, 학계, 국회에서도 공론화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소방사무는 지역주민과 밀접한 사무라는 이유로, 지방분권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반대의 주장도 있지만 소방사무가 국가사무냐 지방사무냐하는 절대기준은 없다. 이론적 주장이나 제도가 국민에게 더 이롭고 국가입장에서 효율적이라면 그 제도를 반영하는 것이 국가의 책무가 아닌가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소방사무의 발전과정, 다른 나라와의 비교, 지방분권과의 관계 등을 짚어보고자 한다.

윤상기 철원소방서장

윤상기 철원소방서장

먼저, 소방사무의 발전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근대 소방의 출발은 마을 단위에서 발생하는 화재를 주민 스스로 진압하기 위한 자위개념에 시작하여 화재예방과 진압 중심의 행정을 수행해왔다. 8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교통수단이 발달되지 않아 사람의 이동이 제한되고 소방사무 대상은 대부분 해당 지역의 건축물과 사람에 한정되었고 산업규모도 작아 발전소, 산업단지 등 국가 주요시설은 일부 지역만 설치되어 안전에 대한 국가의 행정력이 미치지 못했다. 이때만 하더라도 재난에 대한 개념도 정립되지 않았다.

하지만 급속한 경제성장과 더불어 국민의 삶의 질 향상, 특히 안전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재산보호 측면보다는 인명보호 중심으로 인식이 전환되면서 90년대부터 소방에서도 구조,구급업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다. 삼풍백화점 붕괴사고 등 각종 대형사고를 겪으면서 소방은 국가사무 성격이 강한 구조, 구급, 특수사고, 응급의료 등 기능이 확대되는 등 많은 변화를 거듭해왔다.

지금은 전체 소방활동에서 화재가 차지하는 비율은 10%에 불과하다. 대부분 구조구급활동이다. 특히, 교통수단의 발달로 주요 관광·휴양지, 도로 등에서 구조·구급 수혜자의 상당수는 외지인들이다. 더구나 응급환자 중 중중환자는 서울 등 대도시 권역으로 이송하는 등 이미 시·도 경계를 초월한 소방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최근 강원도 소방헬기가 세월호 사고 수색업무 중 추락하여 순직사고가 발생한 사례는 소방사무가 단순히 지역사무가 아님을 보여준다.

또한 국가차원의 관리가 필요한 국가기반시설, 산업단지, 유해화학물질·가스·방사능·테러 등 특수사고에서는 초기대응에서부터 국가의 역할이 확대되고, 시·도의 능력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대형재난 발생 시 대응자원을 보유한 소방조직 주도의 현장지휘 개념을 도입한 재난관리법도 제정되어 시행중이다.

아울러 소방산업의 급속한 확대로 약 8000여개의 소방산업체가 운영 중이고 대학에 소방관련 학과도 현재 80여개가 있을 정도로 소방 인프라가 확대되고 있다. 또한 소방은 정부부처 중 최대 물량(건축물 등 약 150만개소)의 규제대상을 다중이용업소 안전관리법 등 6개 법률로 안전관리 업무를 수행하고 있다

이에따라 소방사무도 1991년 36.5%에 불과하던 국가사무 및 공동사무 비율이 2013년 80.7%로 증가하는 등 국가사무 비중이 확대되었고, 2011년 7월 15일 지방자치법 개정으로 국가차원의 계획 수립 및 소방사무에 대한 국가차원의 재정지원 등 소방사무에 대한 국가책임이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직관련 부처에서는 지방자치법상 소방사무가 지방사무라는 이유와 지방분권에 역행한다는 이유로 소방공무원 국가직 전환을 반대하고 있다. 소방사무가 지방사무냐 국가사무냐를 논하기 이전에 국민의 입장에서 어떠한 시스템이 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다 나은 양질의 소방서비스를 제대로 제공 받을 수 있는가 부터 고민해야 한다. 가령 서울특별시에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 시민이 여행 중에 불의의 사고로 재정자립도가 낮은 타시도의 소방서비스를 받는 시스템이라면 이는 불합리하고 형평성에도 맞지 않다

일반적으로 효율을 중시하는 기업에서는 기존에 운영하던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면 언제든지 기업의 이익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기존의 틀을 과감히 개선해서 새로운 시스템을 도입한다. 정부조직 또한 대승적 관점에서 부처간의 칸막이를 걷어내고 국민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서는 무엇이 선이고 효율적인가를 항상 고민하고 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대한민국 정부 또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현재까지 수십 차례 조직법이 정비되고 재편되었다. 이처럼 법은 현재의 사회질서를 반영하는 것이다. 따라서 국가는 국민의 욕구와 기대를 반영하는 그 시대의 패러다임에 부응할 수 있는 새로운 기준을 제시하여야 한다.

나라마다 소방사무를 보는 시각은 그 나라의 사회제도와 문화, 지리적 환경,공공기관의 발전형태 등에 따라 다르게 인식하고 있다. 현재 우리나라에서는 지방자치법에 소방사무를 지방사무로 정하고 있지만 이탈리아, 폴란드, 대만, 뉴질랜드, 중국 등에서는 국가사무로 정하거나 재정의 대부분을 국가에서 부담하고 있다. 최근 카르멜 대형 산불(2012)을 겪은 이스라엘은 소방업무를 국가소방으로 전환하기도 하였다. 다만 정부조직 운영에 있어 모델로 삼는 미국은 소방사무가 지방사무로 운영하고 있는데 이는 미국은 연방제 국가로 하나의 주가 우리나라보다 더 크고, 자원의 활용 측면에서도 지방사무가 합리적일 수 있으나 전 국토가 1일 생활권 안에 드는 인구밀도가 높은 우리나라와 같은 여건에서 소방사무의 성격을 직접 비교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또한 일본, 영국 등 유럽국가는 봉건제나 영주제도를 거치면서 발전해 하나의 나라로 발전한 경우로 우리나라와는 국가의 생성부터가 다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 나라도 소방업무가 기초자치단체에서 광역자치단체 또는 국가로 확대 변화하고 있다는 것은 과거의 소방행정체제로는 현대사회에서는 감당할 수 없고 효율성도 떨어지고 있다는 것을 반증하는 결과다.

일각에서는 소방사무의 국가사무화가 지방분권 시대와 맞지 않는다는 말을 하는데 이러한 논리는 가치가 전도된 심각한 오류라고 생각한다. 지방분권이란 결국 국민 전체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일종의 시스템(수단)에 불과하며 지방분권 그 자체가 목적이 되어서는 아니된다. 지방분권으로 복지의 사각이 발생하거나 국민의 안녕과 질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면 그러한 분야는 조정하는 것이 지방분권의 명분도 살릴 수 있지 않겠는가.

1992년 지방자치제가 도입되면서 지방여건에 맞게 지방행정이 발전한 것도 사실이지만 안전서비스의 지역간 차이는 심각하게 받아들여야하고 반드시 시정해야 할 사항이다. 하지만 현 체제에서는 제도·재정상 한계에 막혀있고 그마저도 지방자치단체장 의지에 따라 결정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소방의 국가직화는 자치경찰, 자치교육 도입 추세에 역행한다고 자주 비교되지만 여기에도 많은 문제를 안고 있다. 자치경찰제 도입은 정부수립때부터 지금까지 논의되어왔던 사안이지만 아직까지도 요원하다. 제주도에서 자치경찰을 도입하고 있으나 기존 자치단체에서 담당하던 환경, 산림, 교통단속 등 특별사법업무 중심의 기능으로 본래 추진하고자 하던 자치경찰과는 괴리가 있다. 자치교육의 경우도 지방직인 행정직과 국가직인 교사로 이원화 되어있다. 이러한 것을 볼때 유독 소방에만 자치논리가 적용되는 것은 아닌가?

이번 기회에 지방자치법 제정 당시 소방환경과 현재의 소방환경, 국가 전체 측면에서 행정비용의 효율성, 지역간 서비스 격차 해소, 재난지휘체계 등을 고려해 정부와 국회에서 소방사무를 새롭게 재정립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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