⑨ 소방의 날에 즈음하여 순직소방관들께 드리는 편지

2014.11.04 08:54 입력 2014.11.24 15:08 수정
이 건 | 주한 미 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사랑하는 소방 선배님,

따뜻한 하늘나라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계신지요? 더 이상 화재도 없고 출동도 없는 천국에서의 삶을 어떻게 보내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해 노력해주시고 당신의 고귀한 생명을 아낌없이 던져 이 나라를 지켜 주셔서 감사합니다.

선배님들께서는 자신의 편안함과 안락함을 멀리하고 참으로 외롭고도 힘든 길을 걸어오셨습니다. 때로는 무서운 화마와 싸우기도 하고, 때로는 추위에 떨어가며 환자를 이송하기도 했습니다.

그 길은 많은 땀과 눈물로 채워진 시간들이었습니다. 땀이 눈물로 그리고 눈물이 다시 땀으로 바뀌도록 선배님들은 그렇게 달리고 또 달렸습니다.

일전에 선배님들을 만나보고 싶은 마음에 시간을 내어 국립대전현충원에 다녀왔습니다. 선배님들 묘비 앞에 놓인 예쁜 꽃과 환하게 웃고 계시는 선배님들의 사진도 보았고, 선배님들이 평소 즐겨 보시던 책들이 약간은 빛이 바랜 모습으로 다소곳이 놓여 있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곳에서도 여전히 선배님들은 세상에서 가장 빛나는 모습으로 대한민국의 한 모퉁이를 듬직하게 지켜주고 계시더군요.

선배님,

그동안 많은 것들이 바뀌었지만 희생과 봉사라는 119 정신은 아직도 우리 곁에 살아서 활활 타오르고 있습니다. 후배된 우리의 소임은 그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더 분발하고 노력하는 것이란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국립대전현충원 순직소방관 묘역

국립대전현충원 순직소방관 묘역

하지만 선배님,

솔직히 가끔은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이 일이 두렵습니다. 평생 할 수 있을지도 걱정됩니다. 지금 이 일을 하면서 내가 얼마나 행복한지 가끔 내 자신에게 물어보기도 합니다. 선배님들은 어떠셨습니까? 소방을 선택한 자신의 결정에 여전히 만족하시는지요? 그래서 지금도 많이 행복한지 묻고 싶습니다. 당장 답을 주시지 않아도 됩니다. 조금 더 노력해보고 다시 선배님들을 찾아와서 여쭙겠습니다.

선배님,

올 해도 어김없이 소방의 날이 다가옵니다. 올 해로 벌써 52주년이 된다고 합니다. 매년 그랬던 것처럼 이번 소방의 날에도 여전히 많은 행사들이 펼쳐질 것이고 국민들에게는 불조심을 당부하는 메시지를 전달하겠지요. 조금 아쉬운 것은 이번 소방의 날에는 선배님들께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기가 조금 힘들 것 같습니다. 우리 소방 조직만 보면, 앞으로 많은 변화가 있을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지키려 했던 소방은 또 그렇게 풍랑 속으로 빠져 들겠지요. 그래서 더더욱 대한민국의 안전이 걱정되는 요즈음입니다.

[이건의 소방이야기]⑨ 소방의 날에 즈음하여 순직소방관들께 드리는 편지

그렇지만 선배님,

선배님들의 땀과 눈물로 지켜온 소중한 가치들이 무너지지 않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쉽지는 않겠지만 대한민국에서 소방의 위상이 바로 설 수 있도록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11월에 즈음하니 마음과 몸을 깨워주는 차가운 바람이 불어옵니다. 옷깃을 여미며 올 한해도 아무런 사고 없이 잘 마무리 할 수 있도록 마음도 다잡고 있습니다.

앞서 가신 그 길이 의미 있을 수 있도록 대한민국 4만여 소방관들이 열심히 노력하고 있으니 너무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선배님,

마지막으로 한 가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이젠 더 이상 출동벨 소리에 잠을 깨지 않으셔도 됩니다. 다만, 대한민국의 소방 후배들이 더 이상 다치지 않도록 우리의 손을 꼭 잡아 주시고 등을 토닥이며 응원해 주세요.

선배님. 사랑하고 존경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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