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칼럼

‘국가개조’ 소방관 국가직 전환으로 시작하라

2014.07.18 11:28 입력 2014.07.19 07:32 수정
김창영 기자

“세월호 참사로 실종된 경기 단원고 학생을 수색하기 위해 전남 진도해상을 수색하고 복귀하는 길에 소방헬기가 광주에서 추락했습니다. 그것도 강원도 소속 소방관이 말입니다. 국회의원들이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일원화 하자고 하는데 안전행정부가 반대하고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강원도의 지방소방관이 수색업무를 해서 지방사무입니까.”

광주 도심에서 5명의 소방관이 순직한 17일 일선 소방관들이 통곡과 울분이 담긴 메일을 보내왔다. 기자가 세월호 참사 후 국가안전처 신설 과정에서 소방방재청 해체에 따른 문제점, 국민이 평등한 소방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소방관의 국가직 일원화가 시급하다’는 일관된 논조의 집중보도를 한 이후 가장 많은 메일을 받은 날이었다.

순직한 이은교 소방관(31)과 ‘절친’이라는 소방관은 “국민안전을 위해 공무원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1인 시위를 한 것을 두고 우리(소방관)의 조직이기주의로 매도한 안전행정부에 분노를 느낄 수 밖에 없다”며 “결혼을 앞둔 (이)은교는 세월호 참사 후 소방관 국가직화에 대한 확고한 신념을 가지게 됐고, 활발하게 SNS 활동을 해 왔다”고 말했다. 이은교 소방관이 임무를 완수하고 광주비행장에서 이륙하기 전 중원대 김택교수가 경향신문에 기고(7월17일자 29면)한 ‘소방관들의 정당한 외침’을 SNS에 공유한 것도 그런 이유다.

김창영 | 전국사회부 차장(안전행정부 및 소방방재청 출입)

김창영 | 전국사회부 차장(안전행정부 및 소방방재청 출입)

또 다른 소방공무원은 이런 메일을 보냈다. “세월호에 119구조대원이 투입됐다면 세월호 탑승자 전원이 구조됐다던 방송오보처럼 모두 구조했을 겁니다. 그러나 소방관도 50명 이상은 순직했을 겁니다.”

그는 “소방관들은 공직에 입문할 때부터 ‘무조건 구조’라는 단어밖에는 생각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명이 위험해) 세월호 안으로 들어가기를 망설인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면서 “그런 ‘구조 DNA’를 가진 조직이 소방인데, 현행법(재난관리법)에는 ‘바다에서 발생하는 사고는 해경이 책임지고, 소방관은 들어갈 수 없도록한 것 자체가 문제였다”고 말했다. 직업 DNA 구조가 다른 해경이 목숨을 담보로 구조를 한 다는 것 자체가 웃기는 일이다. 세월호 참사는 정부부처간의 이기주의가 만들어낸 전형적인 인재였다.

그렇기에 4만명의 소방관들은 세월호 참사로 수장된 294명에게 ‘마음의 빚’을 지고 있다. 해경이 구조했다는 172명은 엄격하게 말하면 구조한 것이 아니라, 그냥 걸어 나온 사람들이다.

승객을 두고 먼저 탈출한 세월호 선장과는 달리 소방헬기 조종사(소방관)를 보면 ‘다른 DNA’를 가진 것을 엿볼 수 있다. 조종사 정성철 소방경·박인돈 소방위는 소방조직에서도 알아주는 배테랑이었다. 전문가들은 이륙한지 4분만에 주택가의 ‘이상한 항로’를 선택한 것으로 볼 때 조종사의 실수보다는 기체결함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있다.

급박한 상황에서 소방조종사는 아파트 밀집지역의 ‘안전지대’에 추락한 뒤 폭발했다. 탈출을 시도하지도 않았고, 끝까지 조종석을 떠나지 않았다. 소방관들은 그런 ‘희생 DNA’를 가진 공무원들이다. 소방관들이 ‘세월호 선장이나 선원’ 같은 행동을 했다면 대형참사로 이어질 뻔한 아찔한 순간이었다. 긴박한 상황에서도 소방관은 국민의 안전을 위해 목숨을 과감히 버렸다.

세월호 참사후 해체위기에 몰렸던 안전행정부는 로비 끝에 조직기능을 살려 화려하게 부활했다. 그러더니 ‘국민안전’은 외면하고 ‘지방사무’와 ‘일부 시·도지사 반대’를 운운하며 소방관과 국민을 우롱하고 있다. 겹겹이 쌓인 적폐 안전행정부인 셈이다. ‘개혁 대상’의 주체인 안전행정부가 소방방재청을 해체해 소방을 개혁을 하겠다고 나서니 웃지 못할 코미디다.

국민안전을 위해 국가개조는 소방관의 국가직 일원화로 시작해야 하는 것이 당연하다. 더 이상 미루면 소방관의 ‘업무 해태’로 국민의 안전이 위협받을 수도 있다.

한 소방관은 “동료들은 계속 사고를 당하는데 국가도 우리편이 아니고, 누구를 의지해야 하느냐”며 “국민안전을 위해 전국민이 똑같은 소방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지방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일원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소방조직은 4만명의 지방소방관과 300명의 국가소방공무원으로 이원화 돼있다. 소방방재청장과 임명권을 가지고 있는 시·도지사의 이중지휘를 받고 있다. ‘빈익빈 부익부’로 비유되는 지역별 재정편차가 심화되면서 일부지역은 폐차기한을 넘긴 구급차가 운영되는가 하면 소방관이 자비로 소방장갑 등 장비를 구입하는 일도 허다하다. 소방헬기와 구급차 배정편차도 심해 지역별로 긴급 구조시간인 ‘골든타임’도 제각각이다. 똑같은 세금을 내고도 국민이 어느 지역에서 재난이나 사고를 당하느냐에 따라 서로 다른 소방서비스를 받게 된다.

고인이 된 이은교 소방관은 지난 3일 페이스북에 이런 글을 올렸다.

“저는 다만 묻고 싶습니다. 안전하시냐고요. 별 차별 없이 살고 계시느냐고요. 소방국가직이 남의 일이라고 외면해도 문제 없으신가, 혹시 ‘정치적 무관심’이란 자기합리화 뒤로 물러나 계신 건 아닌지 여쭐 뿐입니다. 만일 소방지방직으로 국민이 평등하게 안전하지 못하다면 소리쳐 외치지 않을 수 없을 겁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묻고 싶습니다. 모두 안전들 하십니까.”

<이은교 소방관이 순직전 SNS에 공유한 중원대 경찰행정학과 김택 교수의 경향신문 기고 ‘소방관들의 정당한 외침’>
2001년 9월11일 미국의 뉴욕과 워싱턴에서 발생한 테러는 세계인들을 경악시켰다. 당시 필자는 워싱턴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는데, 오전 11시께 한국대사관 근처 매사추세츠 애비뉴에서 자동차로 피난하려는 시민들의 불안한 모습을 본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워싱턴에 있는 미 국방부(펜타곤)도 무너져 검은 연기로 뒤덮였다. 같은 해 11월에 방문한 뉴욕의 무역센터는 잿더미가 되어 흔적조차 사라졌다. 그래도 아비규환의 재난과 슬픔 속에서도 위안을 주고 안심케 한 것은 소방관들의 필사적인 구조구난이었다.

특히 인상적인 모습은 소방서장이 모든 구조활동을 총지휘했다는 것이다. 당시 부시 대통령도 소방관들과 어깨동무를 하며 그들을 칭찬하는 모습이 TV에 방영됐다. 뉴욕 소방관들의 헌신적인 구조에 미국민들은 찬사를 보냈고 그들을 신뢰했다. 미국의 재난 구조는 각 지역 소방서장의 권한 아래 일사불란하게 이뤄지며 연방재난관리청과 국토안보부의 지원을 받는다.

소방서장은 주 공무원, 주 경찰, 주 방위군도 통솔하게 되어 있다. 최근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소방공무원들의 1인 릴레이 침묵시위가 이어졌다. 그 목적은 소방직의 국가직 전환이다. 현재 전국의 소방공무원이 4만명가량인데, 이들 중 260여명만 국가직이고 나머지 소방관들은 지방직이어서 신분상의 사기 문제가 심각하다는 것이다. 지자체 중 서울 같은 경우 재정이 괜찮아 소방관들이 쓰는 장갑이나 방화복들이 양질의 제품이지만, 재정여건이 열악한 자치단체는 노후된 장비를 쓰는 것은 물론 사비로 장갑을 구입해야 할 정도라고 한다. 결국 지방에 살고 있는 주민은 재난구조 서비스도 차별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다.

세월호 참사를 계기로 정부는 재난 컨트롤타워로 국가안전처를 신설하겠다고 한다. 과거 소방인들이 독립 소방청을 만들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가. 그런데 갑자기 소방청을 없애고 안전처를 만든다고 해결될 것인지 의문이다. 현재 소방청장의 직급은 소방총감인데, 국가안전처가 생기면 정무직이 독식하게 돼 청장 자리도 없어질 운명에 놓여 있다. 시·도지사 등 자치단체장이 소방공무원의 인사권을 가지고 있다. 그러니 지방공무원 신분인 소방공무원은 시·도지사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이런 상황인데 소방서장이 군과 경찰, 자치단체의 공무원을 지휘할 힘이 생기겠는가.

결국 국가예산 문제다. 이 문제도 최근의 안전 문제 중요도에 비추어 대승적 차원에서 해결해야 한다. 화재현장이나 재난현장에서 헌신적으로 일하는 그들에게 국가직 하나 만들지 못해 사기를 꺾어버리면 되겠는가. 물론 중요한 것은 소방공무원의 현장대응과 응급구조 능력을 강화해 모든 재난에 소방인을 즉각 투입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를 위해 소방공무원의 증원과 함께 소방직의 국가직화가 필요하다. 이와 함께 재난구조 장비의 현대화를 강화해야 한다. 지자체의 재정능력에 따라 장비의 품질이 달라서야 되겠는가. 국민은 재난구호의 신속한 수혜를 받을 권리가 있다. 이를 국가가 외면한다면 누가 국가를 따르고 믿겠는가. 전국의 4만여 소방공무원들에게 사기를 북돋워 주어야 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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