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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 사고후 소방이 침몰하고 있다” … 소방관 출신 前소방총수 ‘통탄’

2014.06.03 10:35
김창영 기자

‘소방관의 대부’로 불리는 이기환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가 2일 경향신문에 ‘세월호 침몰과 함께 온 소방조직의 침몰하고 있다’는 글을 보내왔다. 이 교수는 소방관 출신으로 첫 소방방재청장을 지내고 지금을 후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 교수는 <경향신문>에 보낸 글을 통해 “입법예고 된 정부조직법으로 늘 재난과 대치상태에 있는 소방관들이 심각하게 동요하고 있다”면서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소방업무가 어떤 논리로 지방사무가 돼야 하는가”라며 통탄했다.

<세월호 침몰과 함께 온 소방조직의 침몰>

- 이기환 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前 소방방재청장)

이기환 前 소방방재청장(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이기환 前 소방방재청장(경일대학교 소방방재학과 교수)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를 비롯해 서울 상왕십리 지하철역 추돌사고, 도곡역 지하철 방화사고, 경기 고양종합터미널 화재사고, 전남 장성 정신요양병원 화재사고 등은 국민을 하루도 쉬지 않고 불안케 하는 전형적인 후진성 재난이다. 발생해서도, 발생할 수도 없는 사고가 최근 들어 계속 발생하고 있다. 이러한 불안한 상황들을 또다른 시각으로 살피면 국민들에게 안전의식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계기가 아닐까하고도 생각해 본다.

‘세월호 여객선 침몰사고’를 계기로 박근혜 대통령은 재난대응에 있어 전문성과 책임성을 강화하고, 국가재난대응체계 개편의 핵심으로 흩어져 있는 안전 관련 조직을 통합해 실질적인 재난 컨트롤타워 기능을 살리기 위해 ‘국가안전처’를 신설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해경을 해체한다고 했다.

그 자리에서는 ‘소방을 해체한다’는 말은 단 한마디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조직법 일부 개정법률안’의 뚜껑을 열어본 결과, 대구지하철 방화사건 등 일련의 사건·사고의 총체적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 2004년 6월 1일 발족한 소방방재청은 그 흔적을 찾아볼 수가 없었다.

소방조직은 국가안전처 소속이 되면서 조금은 격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와해되기 시작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이러한 현상을 바라보면서 오로지 국민의 안전 마지노선을 지키기 위해 헌신해 왔던 소방공무원들의 자존심은 바닥을 치기에 이르렀다.

2014년 5월 29일 입법예고한 ‘정부조직법 일부 개정법률 안’에 의한 국가안전처 조직구성도를 살펴보면 소방조직은 지금보다 한 단계 격하된다. (소방총감에서 소방정감으로 소방의 최고직위인 총감이 없어지게 됨- 즉, 과거의 내무부, 행정자치부 시절에 중앙조직의 ‘국 단위’로 회귀하는 결과가 된 것임.)

결국 전문성이 결여된, 재난 비전문가인 행정 관료들에 의해 움직여져야 하는 조직으로 전락하게 되는 것이 명백하고, 소방기능의 강화는 그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인식이다.

그간 우리나라 소방조직은 정권이 교체될 때마다, 대형사고가 발생할 때마다 반드시 도마 위에 올려져 칼질을 당해야만 되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래도 현 박근혜 정부에서는 과거 당 대표시절 소방에 대한 애정과 관심으로 지난 1년간 무리 없이 잘 지내왔으나, (비록 소방청으로의 독립에 대하여는 할 말이 많지만) 뜻하지 않게 ‘세월호’가 침몰되면서, 박근혜 정부 역시 과거와 다름없이 소방조직을 도마 위에 올려놓게 되었다.

이에 수많은 소방인들은 지울 수 없는 자괴감에 빠져 있고, 통탄을 금치 못하는 마음을 다음(DAUM) 아고라 - 소방인 청원운동, 소방공무원들의 불만, “우리 소방이 무슨 죄가 있는가?” - 등에 표현하고 있다.

입법예고 된 정부조직법은 전문가와 소방공무원들 사이에서 거센 논란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더불어 늘 재난과 대치상태에 있는 소방관들이 심각하게 동요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지금까지 소방공무원들은 비정상적 것에 대하여 수없이 많이 표출하고 싶었지만 ‘조직이기주의’로 비춰질까봐 묵묵히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기다려 온 것이다.

도대체 무엇이 잘못된 것인가? 가만히 있었다. 과연 그것이 잘못 되었다는 것인가? 나서면 ‘조직이기주의’라고 하고, 가만히 있으면 왜 가만있느냐고 하고, 그럼 눈치껏 알아서 잘하라는 것인가?

하지만 소방관들은 안타깝게도 그런 것을 잘 못한다. 그네들이 잘 하는 것은 단 하나. 오직 재난현장에서 국민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서, 단 한사람이라도 더 구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 바쳐가면서 구조하는 것 뿐이다.

소설가 김훈은 사이렌 울리며 현장으로 달려가는 소방차를 보고 이렇게 썼다. ‘정부와 국가의 기능이 정확하고도 아름답게 작동하고 있다는 신뢰감을 느끼게 한다’ ‘그런 신뢰를 다른 곳에서도 자주 느끼고 싶다’고.

재난안전의 시작은, 다시 말해 재난사고 현장에서 국민 생명보호의 시작은, 바로 행정 편의주의, 행정 우월주의에 빠져있는 행정 관료들이 재난현장중심 소방을 재난전문조직으로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페이퍼워크(Paper work)는 현장 활동에 있어서 지장만 초래한다는 것을 인식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소방관은 그동안 국가직으로 전환해 달라고 적극적으로 요구하지 않았다. 아니 요구는 했으나 그 요구사항을 정부가 들어주지 않은 것이다. 단순히 지방사무라는 이유 하나만으로 말이다.

도대체 소방이 언제부터 지방사무인가? 이 나라 국민의 목숨을 담보로 하는 소방업무가 어떤 논리로 지방사무라는 말인가?

‘재난현장에서 인명구조를 하고 현장 대응활동을 펼침에 있어 어느 지역은 재정이 풍족하여 인력과 장비 등 자원이 보충되고, 재정이 풍족하지 못한 지역은 자원(인력 및 자원)이 부족해 인명구조를 적시에 제대로 하지 못한다’라고 한다면, 국가는 과연 이러한 어이없는 상황을 지방자치단체의 책임으로만 돌릴 것인가? 적절한 대응이 이루어지지 못한 그 지역은 말할 것도 없고, 온 국민이 가만있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정부는 과연 정말 모르는 것인가?

박근혜 대퉁령의 ‘안전’에 대한 강력한 의지는 국민 모두가 충분히 인식하고 공감하고 있다. 다만 그것을 큰 그릇에 어떻게 담느냐가 중요한 것이다. 또한 그 그릇에 들어있는 것이 재난현장에서 국민을 위한 생명보호정책이면서, 안전관리차원에서 안전을 중시하는 이즘과 그에 걸맞는 능력과 소명이식을 가지고 있는 그릇인지를 살펴봐야 한다. 행정 관료와 일부 전문가들이 탁상공론으로 만들어내는 국가안전처는 결국 ‘옥상옥’이 될 뿐이다. 지금까지 실패한 재난대처 상황들을 충분히 검토한 후 대한민국 재난컨트롤 타워 역할을 충분히 할 수 있는 제도가 무엇인지를 제대로 판단해야 할 것이다.

그릇이 크다고 해서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적재적소에 어떻게 배치하느냐가 더 중요한 것이다. 재난에 있어 행정관료가 주가 되어 움직이는 조직은 결코 성공하지 못한다. 지금과 같은 똑같은 우를 범하지 않는 것이 국민을 위하는 길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안전처’라는 그릇은 재난이 발생하였을 때, 또는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어떻게 시스템적으로 잘 활용하고 운용되어 나가야 하는가가 중요한 포인트가 되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그 그릇은 바로 ‘소방’이 되어야 한다. 왜 그렇게 해야 되느냐고 반문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만약 그렇다면 그들에게 지금까지 우리나라 재난현장에서 소방관이 어떻게 목숨을 걸고, 어떻게 해결해 나갔는지를 돌이켜보라고 하고 싶다. 그 암흑과도 같은 현장에 과연 누가 있었는지를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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