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소방관 국가직 전환, 더 미루면 당신 생명도 위험” … ‘소방관의 절규’

2014.06.02 01:19 입력 2014.06.02 09:37 수정
김창영 기자

<경향신문>이 지난달 29일부터 단독으로 연속보도한 ‘소방방재청 해체’와 관련한 다음 아고라 청원이 전국민으로 확대되고 있다.

‘불혼불작’이 시작한 청원은 소방관은 물론 대한민국으로 확대되고 있다. 소방관들은 국민의 안전조차 차별대우를 받게 해 왔던 ‘뿌리깊은 적폐’를 뽑아 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국가직 전환’을 요구하고 있다.

2일 새롭게 청원의 글을 올린 현장소방관 ‘불꾼’은 현재같은 이원화(국가공무원·지방공무원) 체계로 소방관을 유지할 경우 ‘당신의 생명도 위협 받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우리는 인력이 부족해요. 장비가 모자라요. 지금 들어가면 우리도 죽어요, 비굴한 모습으로 꼬리말고 도망치고 싶지 않다”고 호소했다.

<‘불꾼’이 다음 아고라 이슈 청원에 올린 원문을 그대로 옮긴다>

이대로라면 당신의 생명도 위험합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자식을 잃고 장성 요양원에서 부모를 잃고. 그래도 나는 아니라며 외면했던 당신에게 차례가 돌아왔습니다. 더 이상 무슨 변명으로 도망칠 수 있을까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고양 버스터미널에서 화재가 났을 때, 50명의 소방관과 13대의 소방차가 모여 20분 만에 불을 끄고 수많은 인명을 구조했습니다. 8명의 사상자가 나왔지만 약 700명을 대피시킬 수 있었던 행운이였습니다.

반면 장성 요양병원에서 화재가 났을 때, 처음 도착한 소방관은 달랑 3명. 거동도 불편한 35 명의 환자들을 옮기기에는 역부족이였고 그렇게 우리들의 어머니, 아버지 21분이 독한 연기에 질식해 돌아가셨습니다. 같은 대한민국 국민임에도 수도권이냐 지방이냐, 부촌이냐 빈촌이냐에 따라 재난 발생 시 살아남을 확률이 달라집니다.

왜냐구요? 각 지방자치단체가 소속된 소방서에 배분하는 예산이 다르니까요. 잘사는 동네는 인력도 장비도 충분하고 그에 따라 구조능력도 높습니다. 못사는 동네는 티 안나는 안전 분야에 돈 안씁니다. 당연히 사고가 나도 처리할 능력이 부족합니다. (자비로 장비구입하는 소방관 뉴스 못보셨습니까)

왜 같은 세금을 내면서 지역이 다르다는 이유로 차별받고 계십니까. 왜 외면하고 모른체하여 자신의 생명을 헐값에 넘기십니까.

어제밤에도 네 건의 화재출동에서 다섯명의 시민을 불길속에서 꺼냈습니다. 육층 빌딩을 열 댓번이나 오르내리며 25㎏의 장비 무게와 칠흑같은 연기, 불길을 이기고 다섯 생명을 구했습니다. 무릎이 꺾어지는 고통과 몸의 모든 구멍마다 뚫고 들어오는 검은 연기에 만신창이가 되어도 세상 가장 소중한 ‘생명’을 구했다는 자부심에 힘든 줄을 모릅니다.

안타까운 건 부족한 장비와 인력 때문에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놓쳤을 때입니다. 위의 사고들처럼 많은 인명 피해가 났을 때 현장에 출동했던 소방관들의 트라우마는 상상을 초월합니다. 전체 소방관 중 30%가 우울증 환자입니다.

월급이 적거나 일이 힘들다는 탓은 안합니다. 조금만 더 빨리 구조했다면 살릴 수 있었던 사람. 장비가 부족해서 들어가지 못했던 그 불구덩이 속에 남아있던 사람. 지난 소방관 생활 중 미처 구하지 못한 그 사람들의 얼굴과 검은 형체가 밤마다 꿈속을 떠돕니다.

정말 안타까운 건 대다수의 국민들이 자신의 처지를 모르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고가 터지면 국가가 구조해준다는 막연한 기대로 살고들 계십니다. 세월호 사건으로 실상이 일부분 공개되었지만, 더 많은 진실들이 감추어 있습니다. 구조 능력이 없으면서도 밥그릇 싸움으로 해상 구조 파트를 뺏어간 해경은 수백의 국민을 죽게 버려두었지요.

수십 개의 지자체별로 쪼개진 소방은 통일된 지휘체계를 갖지도 못하고 지역마다 불평등한 구조 능력을 가질 수 밖에 없습니다. 사고가 발생하면 우리를 믿고 기대하는 눈빛을 마주합니다.

그 때에 “119가 왔습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자신감있게 말할 수 있는 우리가 되고 싶습니다. 그 눈빛에 대고 ‘우리는 인력이 부족해요. 장비가 모자라요. 지금 들어가면 우리도 죽어요’

비굴한 모습으로 꼬리말고 도망치고 싶지 않습니다.

1만명의 해경이 국가안전처에 해체 흡수 됩니다. 330명의 소방방재청도 해체 통합됩니다. 전문성 없는 안전행정부 출신이 대부분 국가안전처로 옮기게 됩니다. 죄를 지은 자가 더 많은 인원과 힘으로 국가 재난을 책임지게 됩니다. 여전히 4만명의 지방직 소방관들은 각자 처한 현실에서 제 깜냥에 맞게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세월호 참사 3차 범국민 촛불행동에 참가한 시민들이 지난달 31일 청계광장에서 서울광장까지 구호를 외치며  걸어가고 있다.<br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세월호 참사 3차 범국민 촛불행동에 참가한 시민들이 지난달 31일 청계광장에서 서울광장까지 구호를 외치며 걸어가고 있다.
| 김영민 기자 viola@kyunghyang.com

그러나, 그러나 말입니다. 스스로의 권리를 버려두지 마십시오.

모든 국민은 재난 발생시 국가의 구조를 받을 평등한 권리가 있습니다.

밥그릇 싸움에 여념없는 ‘관피아’들에게 얼마나 더 빼앗기고 싶으십니까. 수백의 인명을 잃고도 여전히 정신 못차리는 그들은 정부조직법 개편으로 또다른 변신을 꾀하고 있습니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이 발의한 소방방재청의 조직확대와 ‘소방관의 국가직화’ 법안은 아무도 모르게 사라졌습니다.

당신을 지켜줄 사람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습니다. 얼마나 더 많은 생명을 잃어야 행동하시겠습니까. 오늘 신문에 올라온 그 희생자 이름이 바로 당신 가족의 이름이 될 수 있습니다. 요즘처럼 사고가 끊이지 않는 험난한 시절에 나 혼자만 안전하다는 요행이 언제까지 이어질까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일이 없었기에 그렇게 된 것이 아닙니다. 가만히 있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았기에 할 수 없게 된 것입니다.”

다시 한 번 부탁드립니다. 마지막 경고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대한민국 유일의 구조전문조직 119 소방을 지켜주십시요. 당신의 생명을 귀하게 여기십시요.

소방의 국가직화는 당신과 가족의 미래를 위한 최소한의 보장입니다.

■경향신문은 ‘소방방재청 해체’와 ‘국가직 전환’은 물론 재난안전처 설립과 관련된 제보를 받습니다. 안전행정부와 소방방재청 취재를 담당하는 전국사회부 김창영 차장(bodang@khan.kr)로 보내 주시길 바랍니다. 경향신문은 취재원을 보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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