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함, 작은 죄의식이라도 있다면 이제 사후약방문(死後藥方文)은 제대로 쓰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실종자 가족, 유가족, 희생자들에게 송구스러운 일이지만 ‘만약’이라는 가정법으로 구조상황을 재구성하면 ‘제2의 참사’를 방지할 해법이 있다.
119 소방관이 구조를 했다면 어떤 결과가 나왔을까. 언론이 초대형 오보를 낸 것처럼 ‘전원구조’를 했을 것으로 확신한다. 단, 소방관도 최소한 50명 이상은 순직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왜, 해양경찰이 단 한명도 구조하지 못한 일이 소방관은 가능했다는 것일까. (정확하게 말하면 생존자들은 ‘셀프구조’이거나 스스로 탈출했다) 소방관과 해양경찰은 공무원이다. 하지만 출생부터 ‘DNA(유전자)’가 다르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소방관은 공직에 입문할 때부터 ‘인명구조’라는 단어에 반응한다. 그렇게 ‘닥치고 구조’에 나섰던 소방관 순직자는 매년 평균 7명에 달한다.
해경은 수사기관, ‘바다의 갑(甲)’이다. 중국어선에 맞서 ‘해양주권’을 지켜낸 공로를 폄훼하고자 함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경이 과거에 해양사고 과정에서 구조를 게을리했다는 것도 아니다. 재난대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유일한 공무원이 소방관이라는 의미다. 공무원 중에서 가장 청렴하고 신뢰도가 높은 것이 ‘119’라는 것은 이미 여론조사를 통해 알려진 사실이다.
소방관은 왜 (세월호에 들어가) 구조를 하지 못했을까. 재난 및 안전관리 기본법을 보면 소방관은 ‘민물’과 육지에서만 활동하도록 규정돼 있다. 소위 ‘짠물(바다)’ 사고는 해경이 관할하는 ‘치외법권’ 지역이다. 법에 바다에 들어갈 수도 없으니, 구조를 못하는 것은 당연하다. ‘참극’의 원죄가 어른(관료)에게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다.
대한민국이 세월호 이전과 이후로 재편되고 있는데도 정부는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다. 세월호와 더불어 해체
위기에 몰렸다가 구사일생한 안전행정부의 처방전은 황당할 정도다. 소방호스나 공기통 조차 메어보지 못한 행정관료. 그들이 ‘구조 DNA’를 모르면서 전형적인 탁상행정을 답습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적폐’라고 지목한 안행부가 청와대를 농락하더니 이제 민의를 대변하는 국회까지 우롱하고 있다. 참사 이후 대통령의 말 한마디에 국가안전처를 신설하면서 토론회 한번 열지 않고 ‘소방방재청을 해체’하는 법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다.
전국 어디에서나 똑같은 ‘안전서비스’를 받기 위해서는 지방공무원(3만9197명)과 국가공무원(260명)으로 이원화된 소방조직을 국가직으로 일원화해야 한다는 명제는 학계에서도 검증이 끝난 상황이다. 논란의 여지가 없다고 할 수 있다.
국민은 ‘평등한 소방서비스’를 원한다. 강원도 산골이든, 고층빌딩이든 ‘똑같은 시간’에 119가 출동해 주기를 바란다. 생명을 구하는 ‘골든타임’을 지켜주기를 원하고 있다. 재정자립도가 높은 ‘부자동네’ 서울시민은 재난현장에서 살아남을 가능성이 높고, ‘시골동네’에서는 그렇지 않기 때문이다. (서울시민이 해변이나 계곡으로 여행을 가지 않을 경우에만 해당한다.)
‘평등한 소방서비스’를 위해 소방관, 시민단체, 심지어 학생까지 소방관의 국가직 일원화를 요구하는 시위를 벌이고 있지만, 국민안전은 안중에도 없는 ‘소방 4적’이 있다. 법안을 만든 안전행정부는 ‘지방사무’를 주장하고 있다. 기획재정부는 ‘예산부족’을 이유로 난색이다. 지방분권을 외치면서 안행부를 ‘대변’하는 일부 시·도지사도 있다. 입법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은 소방공무원법 개정을 발의하고도 안행부의 눈치를 보고 있다.
안행부의 ‘지방사무론’은 학계와 시민단체의 연구를 통해 무용론으로 귀결되고 있는 상태다. 안행부는 공감 가는 논리도 없이 무조건 ‘지방사무=반대’를 주장하고 있다. 안행부는 법안을 만들면서 관행적으로 해오던 설명회조차 하지 않았다. 법조문 하나 고쳐도 설명회를 열고 ‘여론반영, 문턱을 낮춘 행정’을 운운하며 요란을 떨더니, 소리 소문도 없이 법안을 제출했다.
이런 부서가 정작 정부조직개편안을 만들 때는 불통이다. 하루아침에 법을 만들고 국회에서 통과되면 공유·소통하겠다는 태도다. ‘정부 3.0’ 업무를 주관하는 부서가 정반대의 정책을 하고 있는 셈이다. 여론은 소방관의 국가직 일원화를 원하고 있지만 ‘조직의 쓴맛을 보여 주겠다’며 ‘소방방재청 해체’라는 오기를 부리고 있다. 국회와 시민단체가 아무리 떠들어도, 우리가 알 바 아니다라는 식이다.
안행부가 주장하는 ‘지방사무이기에 소방관 국가직 전환 불가’ 이유는 따로 있다. ‘불편한 진실’의 첫번째다.
광역지방자치단체에 소속된 지방직 소방공무원은 3만9197명. 광역지방자치단체 공무원이 8만6712명인 것을 감안할 때, 지방직 소방공무원은 무려 45%에 달한다. 이들이 국가직으로 전환된다고 가정해보자. 그렇기에 안행부 위상 격하는 불보듯 뻔하다. 조직업무를 인사혁신처에 내주는 것만큼 뼈 아프다. ‘안행부 출신 관료가 중앙정부로부터 예산확보가 용이하다’는 빌미로 시·도 부단체장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낼 명분도 사라지게 된다. 번호표를 받고 기다리며 금의환향을 준비하는 동료 공무원들에게 죄인이 되는 것이다.
4만명에 달하는 지방직 공무원이 국가직으로 전환되면 무소불위의 내무부 저력은 이빨 빠진 호랑이가 된다. ‘힘있은 부처’인 기획재정부와의 균형도 깨지고 파워게임에도 밀리게 된다. 안행부 행정관료들의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부분이다.
수자원공사는 4대강 공사로 15년간 연간 5000억원의 혈세로 빚을 갚아야 한다. 이미 파산한 것이나 다름없다. 30조원의 빚을 지고 있는 LH공사는 어떤가. 진주 혁신도시에 빚을 내서 초호화 청사를 짓고 있다. ‘관피아’ 원조이자 ‘모피아’로 불리는 기재부가 깐깐하게 현미경 예산을 짜고 집행했다면 국가재정이 거덜날 리가 없었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영혼을 팔아 자리를 보전하고 혈세를 짜내고 있는 곳이 바로 기재부다.
한국 최고 엘리트 관료라는 기재부가 예산 항목조정으로 ‘국민안전예산’을 편성하는 것은 식은 죽 먹기보다도 쉽다. 그렇게 하지 못하는 또다른 ‘불편한 진실’은 안행부(내무부+총무처)와의 은밀한 거래와 담합을 깨는 것이 쉽지 않기 때문이다. 안행부는 기재부의 조직을 공룡처럼 키워줬다. 안행부는 또 공직자윤리위원회를 통해 모피아의 금융기관 낙하산 인사를 방조해 왔다. 기재부는 안행부에 지방정부를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예산을 내줬다. 조직이기주의를 위해 관료들과 거래를 벌여왔던 안행부도 지방정부 통제를 명분 삼아 시·도 부단체장·기획실장을 낙하산으로 내려 보내는 호가호위(狐假虎威)를 해 온 것이 사실이다.
예산이 없는 것이 아니라 안행부와의 ‘원만한 관계’를 유지해 오던 틀을 깨고 싶지 않은 것이다. 그렇기에 안행부가 무너지면 ‘원톱’, 생존하면 그대로 ‘투톱’이기에 손해 볼 일이 없는 꽃놀이패다. 책임을 안행부에 떠밀며 ‘강 건너 불구경’일 수밖에 없는 이유다.
우선 지방교부세는 용도가 지정돼 있지 않다. 소방차를 구입하고, 소방관 야간수당을 주라고 적시돼 있지 않다는 점이다. 그렇기에 시·도지사들은 재난이나 안전보다는 ‘표를 의식한 곳’에 예산을 편성해 왔다. 폐차기간이 지난 소방차와 구급차 구입에 예산을 편성하기보다는 경로당을 세우거나, 지방도를 확장하고 기념사진을 찍는 일이 더 급하다.
소방관이 국가직으로 전환되면 어떻게 될까. 교부세 규모가 소방관의 인원만큼 줄어 더 급한 ‘표’를 위한 예산편성이 불가능해진다. 단편적인 사례로 의전용으로 쓰던 소방헬기도 사용하지 못한다. 각종 행사에 소방관을 동원, 의자를 닦게 하는 일도 불가능하다. 벌써 제복문화에 취한 단체장도 있다. 모 단체장은 ‘충성을 의미하는 경례 소리가 좋다’면서 교대근무를 마치고 파김치가 된 소방관에게 수십차례 경례를 시켜 물의를 빚기까지 했다.
자신에게 충성을 맹세한다고 믿는 시·도지사가 45%의 수족이 국가직으로 전환돼 잘려 나간다는 끔찍한 상상을 하고 싶지 않은 것이다. 선거 때는 국민안전을 외치다가 당선 후에 권력의 맛을 보게 된 것이다. (지방직 소방공무원을 정확히 말하면 광역단체인 시·도청 공무원이다.)
반면 재정자립도가 높은 시·도는 하루빨리 국가직으로 전환되기를 바라고 있다. 쥐꼬리 같은 교부세 때문에 쌈짓돈을 쓰고 있는 상황에서 포괄적인 안전예산을 국가에서 지원한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다.
법안 발의까지는 국회가 민심을 제대로 읽었다. 이들 법안은 안행위 전문위원실에서 검토보고까지 마쳤지만, 낮잠을 자고 있다. 법안을 발의한 의원들은 1년이 넘도록 심의를 하지 않고 있다. 속내를 들여다보면 여기에도 ‘불편한 진실’이 숨어 있다. 안행부 고위 관계자는 “안행위 소속 의원들에게 ‘지역구에 경로당 설립예산이 들어 와 있는데 어떻게 할까요’라고 문의하면 간단하게 해결된다”고 말했다. 의원들도 지역구의 ‘표’가 더 급한 것이다.
벌써 소방장비 확충예산을 두고 안행부와 기재부가 싸우고 있다는 소리가 들린다. (실제로는 싸우는 것이 아니고 그렇게 보일 뿐이다.) 안행부는 국고보조 50%와 지방비+특별교부세 50% 지원을 주장하는 반면 기재부는 특수장비는 지원이 가능하지만 소방차량 교체는 지방사무이기 때문에 국비지원은 불가하다는 논리를 펴고 있다. 소방관 국가직화는 외면하고 벌써 탁상공론을 벌이고 있는 모양새다. 국가직 전환이 무산되고 인력증원과 장비확충으로 결론이 난다면 여야협상 과정에서 ‘빅딜조건으로 야당을 설득하려 하는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다.
이런 빅딜은 과거에도 있었다. 2001년 홍제동 화재사고 시 김대중 정부는 5년간 5000명의 현장인력 증원 계획을 발표했다. 초기 1~2년간 인력증원은 추진된 듯했지만, 노무현 정부가 들어서면서 흐지부지됐다. 소방관을 국가직으로 일원화하는 전제조건이 없이는 모든 것이 미봉책에 불과하다.
공통점은 사망자 모두가 그 지역 사람이 아닌 타지역 출신이고 소방서비스가 열악한 지방이라는 점이다. 그리고 사고현장에는 ‘지방사무’를 본다는 타지역 소방관들이 있었다. 최근에는 강원도 소방헬기가 세월호 실종자 수색작업을 벌이고 돌아오는 길에 광주도심에서 추락해 5명이 순직했다.
세월호 선장은 먼저 탈출했지만, 베테랑 소방헬기 조종사는 끝까지 조종석을 떠나지 않고 시민들이 없는 곳을 골라 추락했다. 소방관과 해경의 DNA가 다르기 때문이었다.
한국 박스 오피스 사상 최다인 1500만명을 불러들인 영화 <명량>에서 이순신 장군은 “아직도 내게는 12척의 배가 있습니다”라는 명대사를 남겼다. 12척으로 목숨을 건 배수진을 치고 국민의 생명을 지킨 수군과 어쩌면 소방관은 닮아 있다.
소방관은 자신들의 생명을 구걸하기 위해 처우개선을 요구하지 않는다. 인원과 장비를 증원해달라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완벽한 현장 컨트롤 타워 구축의 선행조건이 ‘국가직 일원화’라고 외치고 있다.
박근혜 정부는 국가개조와 적폐 청산을 소방관의 국가직 전환으로 시작해야 한다. 인권과 안전선진국으로 가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