⑤ 명량 이순신장군과 소방 현장지휘관

2014.10.06 18:47 입력 2014.11.24 15:10 수정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 소방검열관

이순신장군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 명량의 누적관계수가 지난달 30일을 기준으로 1700만 명을 훌쩍 넘었다. 이는 우리시대가 진정한 지도자의 부재에 심한 갈증을 느끼고 있는 단면을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이순신장군은 명량해전에서 단 12척의 배로 330척 왜군의 공격에 맞서 싸워 승전한 대한민국 역사상 전무후무한 영웅으로 기록되고 있다. 죽음을 두려워하는 군사를 이끌기 위해 먼저 목숨을 걸어야 했던 지도자로서의 결단과 외로움. 그러나 그 역시도 두려움에 번민하는 한 인간이었다.

문득 이순신장군의 삶이 각종 사고현장의 선두에서 지휘하는 소방의 현장지휘관들의 삶과 많은 부분에서 닮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미국의 국가사고관리시스템(National Incident Management System)에서는 현장지휘관의 역할을 다음과 같이 제시하고 있다.

현장지휘관은 현장의 모든 활동을 총괄하고 책임지는 사람으로서 출동대원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사고현장의 우선순위를 결정하고 사고대응에 따른 목표와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또한 사고현장의 규모를 파악하여 적재적소에 필요한 인원과 장비를 배치하고 사고의 규모에 따라서 인적·물적 지원을 요청해야 한다.

물론 현장지휘관을 보좌하는 참모들의 지원이 있기는 하지만 본인의 판단에 따라서 재난대응의 승패가 결정될 수도 있으니 여간 부담되는 자리가 아닐 수 없다.

소방의 현장지휘관은 고군분투하는 소방관들을 이끌며 각종 재난현장에서 최선의 결과를 이끌어 내기 위해 자신만의 전략과 리더십을 가지고 끊임없이 고민하고 결단하는 사람이다.

따라서 현장지휘관은 단순히 계급이 높다고 아무나 할 수 있는 역할은 아니다. 아울러 현장에서의 리더십 또한 단순히 계급으로만 채워지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최선의 결과를 위해 매사에 꾸준히 자신의 삶을 통해 노력해 온 모습에 대한 동료 소방관들의 믿음과 감동이 더해질 때 비로소 가능한 것이다.

2011년 12월. 화재 현장의 인명 검색 활동을 소홀히 한 책임을 물어 분당소방서장이 직위해제 됐다. 2013년 1월에도 일산소방서장이 화재현장에서 순직사고에 대한 지휘 책임을 지고 직위해제 되었다. 물론 그 이전에도 현장 지휘책임을 물어 여러명의 직위해제가 있었다.

현장지휘관 역시 두려움과 번민에 떠는 한명의 사람일뿐이다. 유능한 현장지휘관이 되기까지 헤아릴 수 없는 고통스러운 실수의 순간들을 넘어서야만 비로소 이순신장군과 같은 지략과 결단력도 생길 것이다.

[이건의 소방이야기]⑤ 명량 이순신장군과 소방 현장지휘관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이 건 | 주한 미공군 오산기지 선임소방검열관

모든 소방서에는 현장지휘방침이나 현장표준운영절차가 존재한다. 그러한 시스템과 매뉴얼도 결국은 사람이 운영하고 유지하고 보수하는 것이 아닌가? 세월호 참사를 겪으면서 사람이 중심이 되지 않는 시스템과 매뉴얼이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뼈저리게 느끼지 않았는가?

주지하다시피, 현장지휘관은 하룻밤사이에 만들어지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물론 어느 정도 개인의 능력 차이는 있겠지만, 1년 또는 2년의 교육을 받은 정도로 현장을 지휘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그것이다. 잦은 순환보직 또한 현장의 감각을 떨어뜨리므로 인사 발령시 충분히 고려돼야 한다. 현장에서의 잘못된 판단과 실수는 곧바로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지며, 자칫하면 동료 소방관들의 생명을 위협할 수도 있다.

대한민국 소방이 각종 재난현장에서 대한민국 최고의 대응조직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순신장군과 같이 현장에 능통한 지휘관들이 많이 필요하다. 대한민국 소방을 믿어주는 시민들을 위해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는 그런 사람들 말이다.

유능한 현장지휘관을 육성하기 위해 정부에서는 충분한 예산과 교육을 지원해야 한다. 아울러 현장지휘의 책임을 물어 일벌백계하겠다는 방침 또한 재고돼야 한다. 왜냐하면 현장에서 만족스럽지 못한 결과가 있었다면 징계이전에 현장지휘관이 이미 충분히 고통 받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할 일은 그들을 질책하고 징계하기 보다는 현장지휘관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인내심을 가지고 현장지휘관에 대한 믿음과 격려를 그리고 지원을 아끼지 말아야 하는 것이다.

안전한 대한민국을 위해 기꺼이 봉사하겠다는 소방관들과 현장에 강한 지휘관들과의 콜라보레이션(collaboration). 그 협업이 재난에 강한 대한민국을 보장해 준다. 명량 이순신장군의 삶과 소방 현장지휘관의 삶은 분명 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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